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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파편에서 통찰로, 인간의 예술로

강수미

나의 박사 논문(8)
강수미 / 동덕여대 회화과 미술이론 교수

「테크놀로지시대의 예술 - 발터 벤야민 사유에서 유물론적 미학 연구」, 2008




벤야민, 1911-1939년에 출간된 저작 목록 원고 중 일부(쥬어캄프
출판사 벤야민 전집 71, pp. 477-519), 벤야민 아카이브 Ms 1834


벌써 십여 년이 훌쩍 지나버렸는데, 2002년 가을 밤마다 잠들지 못한 채 나에 대해서, 내 삶에 대해서, 또 무엇보다 내 욕망에 대해서 낱낱이 쪼개 본 후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결론 내린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나는 전시 기획을 두세 번 했고, 몇 편의 평론을 썼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금을 받아 국내 미술계에서는 첫 시도라 평가받은 ‘도시 서울’을 주제로 한 책과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2003년 문화연구서 『서울생활의 발견』(기획, 공저)과 내 첫 미술비평서 『서울생활의 재발견』으로 완성됐다. 또한 기획전 ‘서울생활의 발견 : 삶의 사각지대를 보라’(쌈지스페이스, 대안공간루프)로 실현됐다. 하지만 이는 2002년 가을 시점에는 불투명한 미래의 일이었다. 그즈음 나는 내 어설픈 지식과 얕은 경험과 척박한 현실에 화가 나 있었고, 때문에 스스로를 어떻게든 깨고 넘어서야 했다. 홍익대 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심리적 배경이 이와 같았다. 

그럼 학부와 석사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듯이 ‘미학이 곧 미술’은 아니라는 정도는 알되 미학에 관해 그 이상도 이하의 지식도 없던 나는 어떻게 미학과를 향해 갔을까. 그 문턱 앞에 서는 데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결정적이었다. 그 독일 현대 철학자이자 미학자의 학문 전체가 아니라, 미완성으로 끝난 그의 모더니티 연구 자료 모음집에 대한 파편적 이해가 나를 미학으로 이끌었다는 말이다. 고민의 밤 시간 동안 마른 눈으로 그 책의 독일어본과 영어번역본을 읽으며 수용한 벤야민의 문장력, 비평관, 그리고 특히 예술에 관한 통찰적인 사유 방법론이 미학이라는 거대한 고원 앞에 나를 세웠다. 당시로서는 그리스어로 ‘감각적 지각에 관한 학(aisthesis)’이라는 뜻을 가진 그 학문의 고원이 얼마나 높고 깊은지, 얼마나 풍요롭고 종합적인지, 하지만 그래서 얼마나 연구자의 피를 말리는지 짐작도 못한 채 말이다. 
   
예술이론에 대한 인간학적 통찰
박사과정 첫 학기부터 벤야민으로 학위논문을 쓰겠다고 방향을 잡았지만 나는 플라톤부터 루카치까지, 영미철학에서 유럽대륙미학까지, 예술 모방론에서 시작해 매체미학과 인지과학에 이르기까지 박사는 물론 석사과정에 개설된 다수의 강의에 참여했다. 간혹 주변 후배 중에는 왜 철지난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야 하냐며 미학과에 실망을 표하기도 했지만 내게는 그 같은 커리큘럼이 지적 성장의 에너지원이 됐다. 예컨대 현대미술을 비평하면서 당당히 진리를 따졌고, 유물론적 예술이론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오늘의 미술에 사회적 기능을 요구할 수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 주관적인 단견 대신 체계적이고 정합적인 사유의 글쓰기를 훈련할 수 있었다.

학위과정 3년, 논문 쓰기만 2년. 이렇게 도합 5년 동안 내가 벤야민을 놓아본 적은 없다. 독일 주어캄프출판사가 발행한 벤야민 전집 총 7권(권수로는 14권)에 내 손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단어 하나로 8시간 동안을 헤매던 날 귀갓길은 참담했고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그런 나와 내 논문을 지탱했던 것은 바로 ‘벤야민 사유 전체의 구조와 방법론을 명확하게 해명하고 그 예술이론의 역사철학적 통찰과 인간학적 차원을 현재화’한다는 테제였다. 그 테제는 국내외 벤야민에 관한 선행 연구들에는 미흡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도전할 가치가 매우 컸다. 또한 미래의 미학자로서, 현재의 미술비평가로서 나 자신을 위해 온전히 내 힘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성장 단계였다. 

학위논문 「테크놀로지시대의 예술 - 발터 벤야민 사유에서 유물론적 미학 연구」를 통해 나는 그 테제를 풀었다. 그리고 특히 논문의 마지막 장에서 벤야민의 예술이론과 비평이 갖는 현재적 의미가 ‘인간의 현존과 공동체 역사에 대해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통찰한 사유’임을 밝히면서 나 자신의 학문적 지향과 비평적 지평을 가늠했다. 그것은 박사학위를 받은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행해야 할 일로 남아있다. 요컨대 예술작품 속에서 인간, 역사, 사회, 기술, 마음, 인식, 감각을 통합적으로 서술한다(synoptic representation)는 과제가 그것이다. 굳이 미술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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