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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최순우 고택

최열

최순우라는 이름은 나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위해 살아간 사람이란 뜻으로 남아있다. 송도고보를 졸업하고 곧바로 고유섭을 스승으로 우러르며 조선고적에 탐닉한 그는 해방 뒤 국립박물관에 몸담은 이래 생애를 오직 한 길로 내몰았다. 유물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글을 쓰고 전시를 꾸며 대중으로 하여금 마음껏 누리도록 하는 일이 박물관 학예사의 일이라면 최순우는 곧 학예사였다. 임무의 하나로 학예사 최순우는 국보급 유물을 들고 서구 곳곳을 뛰어다니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홍보해 나갔다. 그 힘겨운 행군으로 말미암아 동북아시아 문명국가는 중국, 일본만이 존재한다고 여기던 서구인들로 하여금 한국이란 이름을 아로새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향기는 그의 맛깔스러운 글이 아닌가 한다. 육신은 저승으로 떠나갔으되 그의 글은 여전히 숱한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거니와 ‘고요와 익살의 아름다움’이라는 한 마디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정의하였던 일은 여전히 커다란 울림을 지니고 있다. 그가 조선시대의 특색을 백자가 지닌 ‘부드럽고 구수하고 의젓하며 어리무던한 맛과 모죽임에서 느끼는 착실하고 탐탁스러운 직선의 힘’ 이라고 묘사하여 일본의 작위, 중국의 거만과 빗대었던 것은 최순우의 눈부신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우가 살던 성북동 집은 1976년에 터를 잡고서 세운 건물인데 그 생김생김이 조선의 아름다움 그대로다. 이곳에서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으나 집안 구석구석 손길 닿지 않은 데 없고 그래서일까 떠나신지 스무 해가 훨씬 지났어도 선비의 기운을 여전히 그윽하다.





우리가 그 기운 누릴 수 있음은 내셔널트러스트의 노고 때문이니 시민들이 나서서 보존하는 가운데 가꾸고 다듬어 가고자 하는 뜻 또한 ‘한국의 아름다움’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다. 지키고 싶었던 아름다움이었을 텐데 뜻을 지닌 시민의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그게 남아있었을까,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일 일이다.

日雲미술연구소







최순우(崔淳雨1916-1984)는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고적연구회 활동에 참여하고 또한 고적명승 천연기념물을 가꾸는 직책을 맡아 생활하던 중 1943년 개성부립박물관에 입사하였다. 이 때부터 박물관 사람으로 기나긴 생애를 시작하는데 해방 직후 서울의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와 보급과장 및 학예관으로 헌신하였다.
보존, 연구, 전시, 교육 사업을 누구보다도 빼어나게 수행하였으며 1974년부터 관장으로 재직하며 보존기술실을 설치하였으며 세상을 떠난 뒤 『최순우전집』 다섯 권이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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