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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진규 작업실

최열

흔히 미아리고개라 이르는 곳, 동선동 언덕 배기에 권진규 작업실이 자리잡고 있다. 곁에 사는 성신여대 사람들조차 모르는 데 멀리 사는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아니 아예 권진규란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없을 터이다. 미술을 전공으로 삼는 미대생에게 물어보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고개를 갸웃거린다. 권진규가 누군가요라고. 나로선 만성이 되어 그러려니 하지만 이탈리아 미대생의 경우 마리노마리니를 모르는 경우가 있겠는가 싶은데 이르면 속이 상한다.

권진규는 1946년 겨울 월남하는 가족을 따라 성북구 정릉으로 이사를 왔고 194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무사시노(武藏野) 미술학교에 입학해 졸업하고 조각가로 성장했다. 1959년에 귀국하여 곧바로 동선동에 터를 잡고 작업실을 손수 설계하고 집을 지었다. 여기서 숱한 명작을 탄생시키며 1973년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열 네 해를 살았다. 작업장 안쪽에 샘물이 흐르고 곁에 가마를 설치해 진흙을 짓이겨 그 때까지 한국 조각사상 볼 수 없었던 음울한 인간상을 쏟아냈거니와 그 테라코타 작업은 물론이고 사라져버린 건칠(乾漆) 기법으로 몽환에 가득 찬 인간을 형상화하였다. 전후 한국사회가 겪어야 했던 온갖 질곡이 빚어낸 정신의 비참함을 저 아득한 미래의 어떤 영혼으로 구원하고자 했던 권진규의 작품들은 20세기 후반 한국인의 초상이다. 어느 날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매 세상을 떠난 뒤 막내 누이동생은 작업장을 폐쇄하고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누이는 이 작업장을 내셔널트러스트에 시민문화유산으로 기증하였고 지금은 깔끔하게 단장하여 이제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숨쉴 준비를 마쳤다. 조만간 문을 열면 비운의 생애를 살다간 이 위대한 조각가가 우리 곁으로 올 것이니 우리는 함께 그를 역사에 대한 외경심으로 그렇게 맞이해야 할 것이다. 권진규 작업실은 추후 개방 예정이다.

日雲미술연구소







권진규(權鎭圭1922-1973)는 함경도 함흥시에서 태어나 춘천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징용을 당한 뒤 귀향했고 다시 해방 뒤 서울로 남하하고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시즈미 다카시와 긴바라 세이고로부터 기술과 미학을 수업했다. 귀국하여 권력쟁탈로 날을 새우는 미술계와 담을 쌓은 채 사라진 전통인 테라코타와 건칠기법으로 전후 황폐한 시대정신을 아로새긴 결정체로서 보석 같은 작품을 토해냈다. 그러나 끝없는 외면과 좌절 속에 병마까지 겹쳐 스스로 이승의 삶을 마감했다. 누이동생 권경숙 여사는 오빠의 작품을 어루만지며 권진규미술관을 성립시키는 가운데 작업장 또한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 놓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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