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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이대원(李大源1921-2005) 고택

최열

멋진 차림새만큼이나 빼어난 품성을 지닌 화가들이 머물렀던 곳이 혜화동이다. 이대원은 열 다섯 살 때인 1935년에 이곳 혜화동으로 옮겨왔다. 그로부터 2005년까지 무려 75년을 머물렀는데 1945년 6월 성균관에서 이현금 여사와 결혼하고 1947년에 또 한 채의 건물을 지었으니 참으로 이곳 혜화동은 이대원의 생애와 예술이 그대로 숨쉬는 곳이라 하겠다. 이곳은 그 무렵 한적한 변두리 주택가였지만 어느덧 번화해지기 시작했으니 1973년에 파주의 고향에 화실을 마련하고 주말마다 건너가곤 했던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였다.

이대원이 살고 있고 부인이 경영하는 의원이 있는 이 집 앞을 지나면 혜화초등학교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고개를 넘어서면 간송미술관이 나온다. 나는 1982년 무렵 겉만 보고 지나쳤었는데 미대가 아닌 법대를 나온데다가 1950년대에 반도화랑을 경영했다는 특이한 이력 탓에 재미있는 화가가 아닌가 싶었을 따름이다. 워낙 화려하고 눈부신 화풍을 구사하고 또 항상 비슷한 소재를 반복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보기엔 심미주의 범주에 머무르는 대부분의 미술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다만 추상과 실험의 열풍과 무관하고 또한 점묘와도 같은 특이한 기법으로 자기만의 화풍을 일궈낸 독보라는 사실은 몹시 돋보였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을 떠난 지금은 경매에서도 제법 평가를 받고 있으니 역시 독보의 세계야말로 가치 있는 예술이라는 느낌이다. 지난 봄 어느 날 한가로운 발걸음으로 그 집 앞을 지나노라니 생애의 끝 무렵 스치듯 만나 뵌 기억이 어느덧 추억처럼 아롱거린다. 자칫 회고전을 진행할 뻔했던 인연까지 떠올라 사람의 만남이 이렇구나 싶어 그리움 따로 없음을 되뇌이는 것이다.

- 日雲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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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李大源1921-2005)은 경기도 파주의 어느 과수원 일대를 뛰놀다가 일곱 살 때 서울로 왔다. 초등, 중등학교 시절 그림 재능이 뛰어났지만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법학사가 되어 한 때 기업을 경영했다. 꾸준히 개인전을 열면서 반도화랑을 10여 년 경영하는 가운데 1965년부터 홍익대와 인연으로 뒷날 총장에 이르렀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도 지냈다. 지금 혜화동 고택은 이대원의 모든 것인데 1988년에 <혜화동 50년>(열화당)이란 산문집을 내면서 ‘오십 년이라는 세월이 내 그림의 밑거름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으니 내생각에 이 집 또한 근대문화재로 지정하여 길이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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