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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천도교 중앙대교당, 카프 본부

최열

김복진(金復鎭)은 1925년 8월 창립한 카프(KAPF)의 주도자였다. 카프는 좌익 문예운동기관으로 당대 제일의 임화, 박영희, 김기진과 같은 논객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들은 1920년대 문학 비평과 이론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또한 김복진은 안석주와 더불어 미술 비평과 이론을 이끌고 있었다.

창립당시 카프 사무실 위치는 알 수 없지만 경운동 천도교기념관, 청년회관에서 문예강연회 및 총회를 개최하였고 1927년 9월 임시총회는 카프회관에서 개최하였다고 하는데 그 장소가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 뒷날 한설야가 회고하기를‘견지동 시천교당 안에 사무실 두칸을 얻었다’고 하였으므로 카프회관은 시천교당 다시 말해 천도교기념관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프는 1928년 1월 본부사무소를 계동 73번지 6호로 이전하였고 2월에는 이곳 계동회관에서 중앙위원회를 개최하였다. 5월에는 계동 5번지, 그리고 다시 공평동 121번지로 옮겨 다녀야 했다. 카프가 이처럼 숨가쁘게 본부를 옮겨 다녀야 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일제경찰의 협박을 이기지 못한 건물주의 비명 탓이었을 것이다.
<한설야의 증언에 따르면 그 카프회관에서 김복진과 함께 거주하면서 나란히 집필생활까지 하였다고 한다. 이런 생활도 1928년 8월 25일 김복진이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 투옥당하면서 막을 내리지만 그 뒤에도 천도교기념관은 카프의 활동무대였다. 오늘날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는 천도교기념관 다시 말해 천도교중앙대교당은 당시 카프 활동의 무대이자 산실인데 이 건물은 천도교 교주 손병희 주도로 1921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이 건물이 한국미술사를 일변시킨 김복진의 흔적이 남아있는 카프회관임을 알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가끔 이곳에서 전적골동(典籍骨董) 경매가 이뤄지고 있으니 문예의 숨결이 숨쉬는 곳임을 추억할 따름이다

※ 김복진(金復鎭1901-1940)은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숱한 제자와 후배를 양성하였으며 이론 및 비평으로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20세기 미술의 참된 스승이었다. 특히 카프 내의 유일한 조선공산당 당원으로서 학생 및 문예 부문 조직담당자로써 카프 중앙위원 서열 1위에 올라 당대 문예운동을 이끌었다. 그 댓가로 검거당해 무려 5년 6개월을 투옥당해야 했지만 출옥 한 뒤 1940년 8월 별세할 때까지 변화한 시대조건에 조응하여 새로운 단계의 창작과 비평활동을 눈부시게 전개해 나갔다.
- 日雲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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