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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오윤 전돌벽화

최열

종로를 지나치며 마주칠 때마다 아련한 추억이 뭉게구름처럼 떠오르는 곳이 있다. 우리은행 동대문지점이다. 그 앞에 서면 오래전 세상 떠난 오윤(吳潤)이 살아 있어 곁에 속삭이는 듯 해서인지 그렇게 오래 서 있을 수는 없는 곳이다. 종로 4가 네거리 한쪽 모서리를 가로질러 부조벽화가 황토빛을 뿜고 있으니 오윤의 솜씨다. 전돌 수백개를 촘촘히 붙여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 두었는데 구름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하다. 어느샌가 숨결 흘러 들어오는데 언제나 가쁘다. 예전엔 길거리에 그저 가로수 몇 그루 서 있었을 뿐인데 요즘엔 노점상이 벽화 전체를 가리고 있어 작품감상은 아예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어쩌랴. 틈새로 드러난 자태를 훔쳐보며 오윤을 만난 것처럼 속삭이면 그뿐이다.





얼마 전 학위논문 심사하러 갔더니만 오윤을 다룬 것이어서 까다롭게 대했다. 오윤은 나에겐 지금도 여전히 형인데 그의 생애 마지막 무렵 ‘윤이형’이라고 불렀던 때문이다. 허름한 술자리에 앉아 있노라면 그 가락 구슬프고 일어서면 하늘을 나르는듯 텅빈 세상같았다. 문득 마주칠때면 그게 누구건 다정스레 말걸고 손잡으니 어찌 우리들 형님이 아닐겐가. 1974년에 동료들과 어울려 만든 전돌벽화는 선이 굵고 두툼하며 덩어리진 곡선에 전돌의 질감이 무척이나 곱다. 겉으로야 부드럽지만 안으로는 너무도 강렬한 것이 꼭 오윤의 사람됨과도 같다. 이 작품은 20세기 한국사회를 표상하는 장엄한 벽화로써 역사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상징주의 수법으로 이룩한 최대 걸작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았고 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는 이름을 붙여줄 작정인데 <세상>이면 어떨까 싶다. 아마 윤이형이 지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오윤(吳潤 1946-1986)은 20세기 후반 미술사상 가장 독특한 조형예술 세계를 열어놓은 작가이다. 판화가로 잘 알려져 있으되 회화건 판화건 오윤이 조형은 전에 없는 형식을 개척하였고 거기 민중의 꿈과 희망을 내용으로 새겨 누구도 다가설 수 없는 오윤양식을 개창했던 것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에 참가했지만 그 운동세력과는 질을 달리하는 품성과 자질로 후배세대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 양식에 매료당한 애호가를 확보하였다. 종로 4가 우리은행 벽화는 오윤이 전돌공장을 운영하며 습득한 기술로 직접 제작하여 손길의 그대로 뭍어있는 걸작인데 가끔 건물을 철거하면서 파괴당하지나 않을지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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