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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미술의 상황과 전망 ⑫-3

이영철


말레이시아의 현대미술
 
 
1.

말레이시아에서의 현대 미술 활동은 20세기에 일어난 현대성의 진보 개념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문화적 모더니즘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진행 과정 중 우리가 흡수하는 그 무엇인가였다. 처음부터 현대 미술은 우리에게 일종의 식민지 교육 정책의 일환으로 강요되었고, 1957년의 말레이시아의 독립과 함께 미술은 우리에게 새로이 출현하는 다문화적 국가의 통일성과 다양성 모두를 상징화하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 현대 미술 작가의 급증은 자생적 전통, 형태, 그리고 이슈적 개념 내에서의 국제적 트렌드를 표명하였다. 정부는 현대 미술을 후원했으며 이러한 현대 미술은 우리의 국가 건립의 필수 전략 구성 요소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오늘날, 말레이시아 작가들은 갑작스런 미술 호황을 야기시킨 미술 내용과 중산층의 섬세한 미술품 수집에 귀착한 작업을 하고 있다. 연이은 경제 성장은 말레이시아 미술 시장의 상업 갤러리에서 매매되는 작품 가격의 폭등과 수많은 젊은 작가들의 급속한 증가로 눈여겨 볼 수 있다. 국외의 영향과 우리 미술의 자생적 모습 사이에서 보여지는 명백한 투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그 내용에 있어서 이전보다 더욱 절박한 민족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20세기에 근접해 가는 이 시점에서 지구촌 문화를 향한 국제적인 모더니즘의 세계적 향방이 변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동양에서는 민족주의에 힘입어 전통으로의 복귀가 일어난 반면, 서양에서는 청교도적 미학, 미적 표명, 그리고 다양한 혁명적인 미술 활동들은 더 이상 도덕적으로 중성적인 문화적 생산의 진로 내에서 전유와 교배의 특성으로 변하게 되었다. 미술과 미학에 관한 밀레니엄적인 개념들(millennial notions)은 사회, 경제, 정치적 개념 아래 당위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또한 인간사에 대한 더 넓은 시각 내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구 소련의 몰락에 대한 글을 쓴 이후 역사의 종말을 제안했으며, 이것은 헤겔이 시간 안에서의 영혼의 발전이라고 묘사한 종말을 환기시킨 것이었다. 헤겔에게 있어 역사는 자연 내 신의 의지를 자각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후쿠야마는 마르크스가 헤겔이 영혼의 역사에 대해 세속화시킨 것에 대한 글을 쓴 이후, 헤겔과 마르크스 모두가 인간의 진보가 인류가 가장 심오하고 근본적인 열망을 충족하는 사회 형태를 획득했을 때 종말 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Fukuyama가 역사의 종말을 통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사회주의를 극복한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가 인류의 이념적 발전에 있어서 정점이라는 것을 표현했던 것이다. 물론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는 세계의 자본주의의 출현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25년 전 국제 고정 통화 협정이 종결된 이후, 국제 자본의 유동에 있어 급속한 규제 철폐가 일어났다. 구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의 방향 전환이 일어난 후, 이러한 유동성은 전 세계 모든 국가로 확장되었다. 전 세계에는 세계 경제의 통합을 기본 개념으로 하는 미국 주도권의 새로운 세계적 규범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자국의 경제가 제한하던 기업과 은행 활동들에서 이제는 세계 전체가 그 규제 활동의 장이 되었다. 심지어 이제는 노동자들조차도 이주 노동자들의 형태로 세계 전체에 널리 퍼져있다. 사실 말레이시아는 전세계 경제에 관여하는 것에 소극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물품들을 생산하기 위해 국제 통화와 노동력을 활용해 왔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통합은 세계화된 첨단 기술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컴퓨터를 통한 네트워크 시설의 급증은 커뮤니케이션과 위성 기반 뉴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방송 출현을 조정하고 중재했으며 이는 세계 정보의 흐름을 통합시키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전세계 문화의 통합을 초래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발전 항목 중 하나로 국가의 Vision 2020은 기존의 산업 생산에서 세계를 인식한 경제(global knowledge economy)로의 도약에서 기획되었다. 사실 우리는 Multimedia Super Corridor를 개발하고 있으며, 싹트고 있는 지구촌 정보 경제의 주요 지역 중심지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화 시대의 제도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지만, 급증하는 국제 자본의 유동은 갑작스런 경제 불안의 원인이 되었다. 컴퓨터가 중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사용에 힘입어, 세계 경제에서의 모든 경제적 변수들은 현재 영향력 있는 국제 투자가들에 의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자유 금융 시장의 불안정함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된 어떠한 금융 소생 협약(financial instruments)들도 이들 방법들 자체가 이 체제를 지배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의 새로운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Beams, 1998). 결과적으로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세계의 질서 극단적으로 격변하는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20세기말을 향한 가장 중요한 지구촌 발전은 금융 시장에서의 이러한 위기이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1998년 10월 초) 발생한 금융시장 붕괴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인물들간의 패권 싸움이 일어남과 동시에 말레이시아의 경제 침체와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 시켰다. 국내 시각에서 검토되었을 때, 이러한 분쟁은 편파 싸움, 성적 위법 행위의 진술, 그리고 Internal Security Act에 집중해 있었고, 이러한 분쟁에 논쟁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던 법령은 세계 경제의 운명이었다 (Symonds, 1998). 손상 입은 국내 경제를 소생시키기 위해, Mahathir Mohamad 수상은 IMF의 요구와 그의 현 폐위 찬탈에 반대하여 국제 금융 유동 방법에 교환 조정 방책을 사용하였다. 힘있는 세계 금융 기관들의 지배권을 공격하는 유사 국가적 금융 반응들의 세계적 활동을 자극하기 위한 말레이시아의 중재적 위협은 자본주의 자유 경제 시장 원칙의 근본에 대해 필연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게 한다. Fukuyama는 그것을 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만약 자본주의 기관들이 과격한 투기 경향을 제지하는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계는 국가주의 부활의 시대로 편입하게 될 것이다. 지구촌 자유주의 규정에 대해 보편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는 사실 불만과 파편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벼랑 끝에 있으며, 역사는 여느 때처럼 단지 시작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의 말레이시아 미술이 이루어낸 발전들은 국가적 위기의 우리의 현 상태를 예시한 기술, 문화, 사회, 그리고 심지어 정신적 세계화를 모두 반영한다. 1997년 국립 미술관의 제1회 전자 미술 쇼는 역사적 리뷰 뿐 아니라 영상, 영상 설치, 컴퓨터 프린트, 컴퓨터 애니메이션, CD-ROM 프로젝트, 인터넷 작품, Smart board/VRML 회화, 그리고 리얼타임 컴퓨터 애니메이션/퍼포먼스 등을 포함하는 전자 매체의 현 사용을 총람하였다. 이전까지의 영상 작업과 컴퓨터 미술 관련 전시는 소위 유럽 모더니즘의 교화에서 역사적인 서술로 구성된 작품 경향에 모두 산재해 있었다. 제1회 전자 미술 쇼 (Jamal Saidon & Rajah. 1997)는 말레이시아 미술에서 전자 매체의 역사적 기반을 세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광범위한 시간상에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추출하고 정리하고자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전시가 성장하고 있는 이러한 새로운 매체의 미적 사용에 중심적이고 촉매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Faizal Zulkifli 같은 작가들은 말레이시아 미술의 완성도와 자기 만족성을 반영하며 지역과 지구촌 컨텍스트 모두를 포괄하는 새로운 멀티미디어 테크놀러지를 사용하였다. 1990년 후반에는 해외 미술 기관들이 주도한 강력한 국제 무대가 출현하였다. 말레이시아 현대 미술의 주요 인물들은 토착(자생적) 미술 담론의 개념에 따른 우리의 국내 기관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유럽, 일본, 호주 딜러들과 큐레이터들의 결정들은 말레이시아와 심지어 국립 미술 갤러리에서 열리는 증가하는 국제적 경향인 말레이시아 미술 현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경향의 매년 개최되는 젊은 세대 작가전을 조정한다.
 

2.

1990년대의 경제호황은 말레이시아를 급속히 현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나, 종교적․전통적 관습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삶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에 대한 의무와 현대 도시 생활의 현실로 인한 끊임없는 전통의 파괴 사이에서 야기되는 긴장감이 공존한다. 말레이시아 인들은 인종과 다종교에 관해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다문화 국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말레이시아적인 비판력과 의식의 발전을 형성하는데 주요 지침이 되고 있다. 1990년대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현대미술 활동들은 ‘역사의 무게‘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다양한 장르와 문제점들을 다루며 전개해왔다. 이러한 다원주의적 정황 속에서 몇몇 작가들은 서구 모더니스트들의 영향을 지양하는 오히려 그러한 영향들을 파괴적으로 분석하는 언어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후기 식민지 경험에서 얻은 이러한 깨달음은 전 세계에 걸친 탈-모더니즘적인 현실 속에서 반영되고 있다. 이들 예술가들은 유럽과 미국에 있는 그들의 대응물들(counterparts)과 동시대성을 손쉽게 공유한다. 결국 ‘차이‘점을 결정하도록 남는 것은 그들의 지역적 문화 배경의 특수성이다. 말레이시아 현대미술 작가의 최고 관심사는 말레이시아인의 본질과 동양적 관점을 찾고 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예술가들은 말레이시아의 후기 식민주의적 정체성에 대한 평가와 재평가의 필요성에 대한 적절한 의문점들과 이슈들을 그들에 작업에 불어넣으며, 참여 즉, 사물들에 대한 세계적 설계 내에서의 현존을 요구한다. 비록 이것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개념적 발전이지만, 이에 대한 시초는 1970년대 중반과 Sulaiman Esa와 Redza Piyadasa라는 영향력 있는 작가들의 첫 설치 작업들에서 규명될 수 있다. Piyadasa의 작업은 다민족적인 현대 말레이시아 사회 내의 종교, 민족성, 그리고 국가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이슈들은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본질과 말레이시아 현대미술의 향방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말레이시아 현대미술 경향에서 나타나는 연속성의 수많은 예들 중 하나를 Nur Hanim Mohamed Khairuddin이라는 젊은 작가의 최근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종교적 이슈를 다루고 있으며, 가끔은 말레이시아 대중 문화의 더욱 미신적이고 물활론적인 내용 면에 비-도상적인 이슬람교를 위치시키고 병치시킨다. 민감한 이슈들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그녀 작업의 장점은 이슬람교의 이상주의와 공공의 믿음과 실천 사이의 놀라운 모순들에 대한 미묘한 차이들을 폭로하고 있으며, 이것은 말레이시아 문화의 양상에 대한 엄격한 연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1990년대 미술 시장은 호황이었다. 건실한 경제 사정과 수요에 힘입어, 예술 진흥을 위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에 대한 기업의 후원과 참여가 매우 활발해졌다. 그러나 이들 후원이 지역 작가들의 작업을 많이 노출시킨 반면, 또한 기업 소비를 위한 작품들을 급증시킨 결과를 내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정책으로 인한 결정적인 문화 진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술에 대한 기업 후원에서 오는 장점은 매년 열리는 국내 경쟁 대회와 시상식과 같은 활동들이었다. Maybank와 Petronas 같은 기업들 또한 과거와 현재의 말레이시아 미술을 분석하고, 문서화시키고, 비평적으로 평가하는 의도의 기획전들을 주최할 수 있는 미술관들의 설립을 통해 시각 예술에 대한 활발한 장려를 시도하였다. 경쟁 대회들을 통해 국내 재능있는 많은 작가들이 발굴되었으며, 이는 시각예술에 있어 발전들을 도표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Phillip Morris Art Award(필립 모리스 예술상)와 쿠알라룸프 소재 국립미술관이 주최한 the Young Contemporaries Award(청년 미술상)가 그 예이다.
 
이들 미술상으로 인해 논증적으로 더욱 개념적인 작업 경향의 Tan Chin Kuan, Hasnul Jamal Saidon, Noor Azizan Rahman Paiman 등 상업 갤러리에서 판매가 매우 ‘힘든‘ 상품으로 간주되는 작업경향을 갖는 수많은 작가들이 대중과 미술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소비자 중심주의가 강조되는 75년간의 풍토 속에서, 상업 화랑들은 번창했고 중견 작가들과 신진 작가들 모두의 작품들을 위해 가능성있는 구매자들을 찾아냈다. 이들 작가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표상적이고 추상적인 작업을 하였으나 미학적이고 지적인 도전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Valentine Willie Fine Art, Pelita Hati와 같은 소수 갤러리들은 흥미롭지만 상업적으로 덜 실용적인 작품들을 전시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젊은 세대 작가들이 덜 상업적인 작업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전통적인 캔버스 틀의 거부와 같은 더 넓은 범위의 예술적 표현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조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발전적 전개 속에서 표상적 표현은 접근 가능한 좌절, 소원, 공격의 메시지 창조를 위한 양도체로 식별되기 보다는, Ahmad Zakii Anwar와 Matahati 그룹 멤버들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건전한 소생으로 여겨졌다. 이와 동시에, 이슬람 서법과 기하학을 토대로 하는 미술은 순수한 장식 분야에서 뿐 아니라 개념적 분야에서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서양에서 유래된 미니멀 기형학적 추상을 이슬람교의 우주관으로 재배치하는 최근 졸업생들의 작업은 흥미로운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들은 비-도상적인 이슬람교의 이념과 상징 사이에서 지각되는 딜레마들에 대한 담론을 더하게 될 것이다. Tan Chin Kuan, Kungyu Liew, Hanafia Waiman, Wong Hoy Cheong과 같은 작가들은 항상 제한된 재료의 한계를 넘어선 표현의 범위 내에서 작업한다. 그러므로 이들 작가들은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왔다. 지난 몇 년 간, the Malaysian Video Awards(말레이시아 영상 시상식)의 실험 비디오 분야의 응모가 꾸준히 늘고 있다. 또 다른 두드러진 발전은 정보 기술 분야에 있다. Niranjan Rajah와 Hasnul Jamal Saidon이라는 두 명의 개념 작가들은 최근 국립미술관에서 최초로 개최된 전자 미술 전시에서 멀티미디어 프로젝트 작업에 함께 참여했다. 또한 최근의 정치적 사건들과 경제 불안은 필연적으로 말레이시아 현대 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the Phillip Morris 1998 ASEAN Art 시상식의 대상 수상자는 Kow Leong Kiang이라는 젊은 말레이시아 작가이다. 그는 Mr Foreign Speculators, stop damaging our country! 라는 작품으로 수상했다. 정치적, 사회적 의식은 1998년 전시에서 제시된 APA(Artists Pro-Active) 그룹의 다수 말레이시아 작가들의 전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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