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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두 / 지구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회에 대한 온도 측정

이영철

왕두는 생김새에서부터 이질적인 두 대륙을 연결하는 인디언처럼 강인하며 야생적인 인상을 풍긴다. 그의 작업은 표현•개념•노동•힘•전략이 교차하여 기묘하고도 강렬한 안정성을 느끼게 한다. 서구 보편주의 미학의 붕괴와 함께 작품의 가치와 질에 대한 판정 기준이 더욱 상대화되었지만 그것은 아시아 출신 작가들의 목소리를 언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가시켰다.
현대 중국 작가들이 아방가르드 게릴라처럼 ‘포장’해서 소개되었던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시관에서 왕두 작품이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중국이라는 대륙의 역사와 문화가 선입견으로 작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은 바이블인 반면 한국과 일본은 보통의 책”이라는 하랄드 제만의 말은 위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을 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성서가 아니다. 그것은 거리에 홍수처럼 범람하는 쓰레기 정보들이다. 그 안에 시대 변화의 맥박이 뛰고 있다. 왕두는 키스하는 연인, 생 빅트와르 산, 정치적 사건을 미술 이미지로 가공해내는 방법과 내용의 정확도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신문•잡지•인공위성이 쏟아내는 정보에서 권력의 기하학을 발견한 뒤 자신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공간적 다이어그램을 발전시킨다. 그는 정치•전쟁•상품•동물, 자연의 이미지가 미디어에 의해 선별, 조작, 변조되는 방식을 재차용한다.

왕두는 우리가 신뢰하고 즐기고 기대하는 세상은 일회용 현실이 그때 그때 만들어내는 연극적인 가설 무대라는 점을 시원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드러낸다. 제시 방식에 있어서도 그는 대중 사회의 일회용 이미지들을 모아 정치적 작가인 양, 비판을 과시하지 않으며 일회용 속에서 좀더 견고한 것을 붙잡으려고 고민하지도 않는다. 현대 사회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텍스트 사본들을 이용하여 지도를 어떻게 만들것이냐? 중앙 통제적 자동장치에서 사회를 구제하는 것은 결국 지도이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오브제를 지향하는 작품이 아니라 아날로그적 물질성을 잃지 않으면서 사본들을 퍼포머티의 기능을 갖게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감상자가 아니라 일종의 게임에 끼여든 참여자의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가 정치•경제•사회•스포츠•레저•패션 등에서 선택한 정보들은 현대에 속한 부서지고 변질되기 쉬운 임시 소재들이다. 그 소재들은 천안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 구금된 경력이 있다고 해서 단지 사회 정치적 비판의 목적으로 중심화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배치는 미디어 권력이 조장하는 욕망 생산과 내적인 좌절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외부적이고 생산적인 발아 위해서 서식한다. 화상 통신으로 자신의 몸을 파는 여성, 유방을 절단한 나디아의 과장된 자신감, 장쩌민과 시락 대통령이 만나는 장면, 세계 도시들을 장악한 통통한 햄버거, 인도네시아에서의 권력의 탄압 장면은 등질적이며 결국 유한한 삶의 순간 지속이 주는 아름다움에 차등 없이 기부된다.





왕두는 조각으로 보이는 이미지 덩어리들의 배열•무게•높낮이•온도•혼잡함의 정도•빛의 양•내부와 바깥의 삼투 관계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면서 둔중한 재료를 다시 비물질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잡지와 신문, 광고는 문화적인 까닭에 필연적으로 사본이다. 그것은 이미 자기 자신의 사본이며 아무리 차이가 나더라도 다른 것들의 사본이며 공인된 개념과 단어와 이미지들의 끝없는 전사이며 현재•과거•미래에 대한 전사이다. 사본의 구조화가 아니라 횡적 운동을 통해 반문화적 지도를 그리고자 하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중국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인 망각’, 역사보다는 생성에의 헌신이며 그 힘은 현재형으로서 대중 분석에 바쳐진다. 관객들이 사본의 건초 위를 밟고 지나가며 보게되는 것은 허공에 매단 일회용 현실이다.

2001년 리용 비엔날레의 개인전에서는 두 개의 터진 방에 온갖 사본들의 쓰레기 더미를 길게 쌓아 올렸고 그 안에서 우연히 선택된 몇 개의 이미지를 그대로 자신의 손으로 직접 베끼고 인쇄하여 구겨진 덩어리로 바닥에 내던져 놓았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정보의 현대식 전쟁 속도를 더 가속화하거나 더 늦추는 작업들을 한다. 왕두는 ‘느림’을 가시화하는 작가로 보인다. 느림의 감각은 가장 대중적 형식으로 살덩어리의 무기적인 고형물로 보여지고 있으나 그것은 온도가 있는 살’이다. 현 시대에 대한 무의식적 구제 행위들은 오늘날 살을 드러내는 작업들의 전지구적 확산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살을 통해 우리는 지구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회에 대한 온도를 측정해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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