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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병을 누가 호위하는가?”

이영철

“호위병을 누가 호위하는가?”
- 한국의 국제비엔날레와 큐레이팅의 어려움에 대한 소견




이 글은 월간 아트(2006, 12)에 기고한 것을 보완, 수정한 것이다.


(1)
질문들: 비엔날레를 둘러싸고 말들, 말들이 무성하다. 이 전시는 지적, 정신적 활력(vitality)을 주는 가, 아니면 재미 없이 관객을 축 처지게 만드는가? 어디서나 보게되는 흔한 분위기의 전시인가? 정신적 긴장과 감각적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전시인가? 네포티즘(정실주의)의 전시인가? ‘비평성’을 보여주고 있는가? 너무 많은 작품들이 그저 빈 자리를 메우고 있지는 않은가? 다양한 매체들을 처리하는 능력이 있는가? 어둠과 밝음, 좁고 넓음, 이동과 멈춤의 호흡을 만들 줄 아는가? 작품들의 배치 가운데에서 큐레이터 자신의 새로운 발견이 깃들어져 있는가? 전시 장소의 디테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가? 그것이 그저 배경으로 보일 뿐인가? 비엔날레 전시 가운데 어느 부분이 좋았는가? 누구의 전시가 그래도 좋았는가? 따로 노는가? 모자이크 전시인가? 공존, 공감, 상생, 시너지의 분위가 느껴지는가? 광주적, 한국적, 아시아 정체성이 있는가? 그런 말들엔 다소 속임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전시가 만들어지는 구조와 전시 사이에 어떤 문제점들이 발생했거나 경험했을 까? 그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는가? 왜곡하거나 감추려드는가? 세미나와 전시 사이에 어떤 상보적인 연관이 있는가? 전시는 오감에다가 육감이 깃들어진 감각적 다양체이다. 그것을 해내는 것은 어렵다. 인간은 의미의 존재이긴 하지만 의미들로 감각을 짓누르지 않으면서 응집된 감각의 확산을 통해 사방으로 작은 길들이 나고 그것들이 거미줄 처럼 서로 연관되어 어떤 매력적인 순간 풍경이 만들어지도록 큐레이터가 혼신하지 않는다면 미술 전시는 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볼거리가 너무 많아진 자본주의의 스펙터클한 풍경 속에서 미술 전시에서 감동받기가 아주 어려워지고 있다. 보는 것과 만드는 것, 말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천양지차다. 큐레이터는 작가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들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만일 작가의 작업량이 너무 적고, 그것 조차 남에게 일을 맡겨 하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사실 그 사람의 경험과 기억에 대해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게 마련이다. 개념적 작업의 경우라 해도 그것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살아있는 과정은 그의 것이다. 전시라고 해서 다른 것은 아니다. 전시의 필요조건에 대해 너무 많은 말들을 하지 말고, 전시의 충분조건을 스스로 조성할 능력을 갖추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작가들의 경우 창작의 필요 조건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것 처럼. 한국에서 비엔날레 전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지만 전시만들기는 늘 핵심 주변을 걷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큐레이터는 어원이 이름, 지위,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중세의 어원 대로 흩어진 시체와 유품들을 수습하여 짜맞추는 숙련된 ‘장인’을 말한다. 따라서 직접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을 큐레이터라 인정하기는 어렵다. 말 잘하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 사람 잘 끌어모으는 사람, 외국에 전시를 잘 돌리는 사람, 여러 부류가 있지만 전시만들기는 말 그대로 만들기를 잘 하도록 전심하는 것이 일단 <기본>이다. 기본이 안된 사람을 구분해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해 정직한 평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오늘날은 복잡하고 늘 새롭게 변하는 현대적 지식과 이론과 감각적 경험을 큐레이터에게 요구하고, 지역간 구분도 모호하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전문성은 적절치가 않다. 많은 다른 분야의 것을 알고 경험하고 깊이 사고하고 죽도록 연습을 해야 조금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명함에 찍힌 예술(총)감독, 큐레이터라는 단어로 목에 힘주는 바보스런 권위 의식일랑 접어두고 명실공히 <전시제작자(Exhibition Maker)>로서의 “큐레이터-되기”를 전력해서 실험해야 한다. 트랜스 컬처 시대 문화전도사로서의 이름 뿐인 큐레이터들, 그들은 콰시큐레이터, 슈도큐레이터, 혹은 큐레이터 선망자라고 하는 편이 차라리 올바르다. “큐레이터-되기”를 독려으로 실험하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한국미술계의 감추어진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좀더 직업 의식에 있어 정직하고 자중하자. 자중.... 예술가의 창작은 중요하되, 전시제작의 창의성은 무시되며, 심한 경우 경쟁, 협상, 전투의 지형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준과 원칙을 멋대로 바꾸면서 큐레이터쉽의 중요성을 큐레이터 자신이 짓밟는 일도 마구 생겨난다. 공모와 협잡의 분위기에 편승하거나 조장하는 큐레이터들, 그들을 구분해내는 기준은 세상이 주는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일까?


(2)
하나의 전시를 보면 기획자 혹은 그 예술가의 감추어진 관심이나 욕망 그리고 정신의 어떤 상태를 읽어낼 수 있다. 전시장 안에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감각의 문턱이 달라진다. 이 문턱들은 서로 다른 풍경을 형성하기도 하며, 비정형의 어떤 얼굴을 만들어 낸다. 전시는 넓은 비정형의 판 위에 입구멍과 심연으로 통하는 검은 눈을 갖고 있다. 입 구멍과 눈 구멍을 구성하는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 빈약한 정신 상태, 지식에 대한 강박증, 표절의 흔적들, 세속적인 계산들, 우연한 일치와 새로운 발견들, 그리고 관객의 개입으로 이뤄지는 공간의 울림 등 그 모든 것이다. 이것에 대해 우리는 아직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 반면 비엔날레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는 어디서나 거의 동일하다. 큐레이터는 감각의 문턱에서 변하는 여러 가지 풍경들로서 공간을 드로잉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안에 그 자신이 좋아하는 비전과 철학, 그리고 전시의 개념을 새겨넣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우연성을 고려하는 경우에 조차 걷기와 그에 따른 심리적 반응을 측정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내용과 표현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전시의 성패는 관객의 심리적 메카니즘을 연동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다. 영화는 90분 이상을 어둠 속에서 차분히 앉아 바라보는 관중들의 날카로운 눈을 피할 수 없으므로 영화 감독은 초 단위로 관객의 심리 상태를 잰다. 비엔날레에서 관객은 한 작품을 평균 20초 이상 보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 속에서 변하는 풍경을 배치하는 큐레이터를 볼 수 없다. 그저 전시를 하는 것이지 전시를 ‘제작하는’ 큐레이터는 아닌 것이다. 좋은 전시, 좋은 비엔날레는 무엇인가? 과연 그런 것이 있는가? 누가 옳은가? 무엇이 아름다운가? 무엇이 공정한가? 무엇이 진실인가? 에 대해 우리는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를 지탱해주는 열정은 최초의 질문과 그로 인한 에너지. 질문들의 반복과 무수한 후렴구 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작고한 예술철학자 조요한 교수의 말 처럼, 진정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3)
아름다움이 어려운 이유; 나(너)는 이름을 원한다. 지위와 신분을 욕망한다. 나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다. 이와 반대로 상품화되어서는 안될 토지, 신용, 노동, 문화가 상품화되는 현실에 대해 솔직한 심정으로 저항하고 비평성(criticality;한때는 은총, 한때는 현전으로 여겨졌으나 극단적으로 세속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정치적 사회적 미학적 총합의 어느 한 순간)을 연마하는 기술과 태도를 갖추는 일에는 몹시 게으르고, 경쟁을 위해 저질 수단과 교묘한 방법들을 다 동원한다. 공모와 협잡에 앞서는 인간들이 결국 제도를 장악해 간다. 여기에 아름다움은 존재 하지 않는다. 이념 조차 상품 기호가 된 상황에서 세상은 꾸며진 아름다움들로 뒤덮혔다. 온갖 문화적 성형과 포장술, 홍보술, 상술, 속임수의 방법들이 고도화되어 간다. 관객의 <이동>과 멈춤 사이, 생각, 호흡, 걸음, 빛, 피로, 호기심, 흥분, 놀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느낄 수 있는 통로를 개설하는 일은 전시의 최대 관건이다. 이것은 전시가 창작물이 되는 뚜렷한 이유다. 자본주의 생산 기계 속에 내장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이분법적인 물음. 끊임없이 선택과 대치를 강요하는 이항 기계 속으로 우리 자신이 노예 처럼 길들여지는 것을 어떻게 거부, 저항, 도주할 것이냐? 이항기계는 권력 기구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너는 누구편이냐? 너는 내 작가다. 혹은 “나는 객관적인 인간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말의 조정-권력의 위치에 대해 미술 전시는 마구 흔들어대는 척 하지만, 전시 조차 어찌나 많은 이분법들 위에 기초해 있는 것인지 모든 인간들, 모든 관객들, 모든 작가들이 다 벽에 핀으로 고정되어 구멍 속으로 침몰할 지경이다. 흔히 한국과 외국의 국제비엔날레 오프닝 현장에서 공공연히 귀속말로 주고 받는 말은 <집단 학살>이라는 무서운 말이다. 큐레이터들이 작가, 작품을 죽여버린다. 그렇다고 미술사가들이 그 대안은 결코 아니다. 전문적인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태도’가 문제다. 68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한 전시에서 큐레이터와 작가들이 사람들에게 던진 말; 네 의지대로 살아라. (Live in your Head). 배반자의 행위 의지는 왜 중요한 것일까. 들뢰즈는 [디알로그]에서 현대 세계를 작동시키는 인간의 세 종류로서 공모자, 협잡꾼, 배반자를 들었다. 여기서 배반자는 비겁하게 뒤통수를 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제도와 반제도의 경계를 관통하는 비자아적 인간(포스트-휴먼)을 지칭한다. 자아를 지닌 인격체를 주장하는 인간에게 있어 공모와 협잡의 경계는 사실상 종종 불투명하다. 그 차이를 끝까지 고뇌하는 실천가의 작업 속에 강렬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비엔날레를 가능케 하는 요소와 변수들 안에는 이 세 유형들의 복잡한 뒤섞임 속에서 낡은 혹은 새로운 무언가가 얽혀서 반복, 생산된다. 점점 더 조작된 아름다움의 세상 공기 속에서 진정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은 상실한 채. 세상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채. 우리는 화려한 껍데기로 채워지는 미술에 자신의 욕망, 이름, 문신을 새겨 넣으려고 앞을 다툰다. 늙은 이들은 빨리 사라지고 아이들은 날로 사악해져 간다.


(4)
창설 12년이 된 지금에도 광주비엔날레는 야심에 찬 순진한 시골 청년 같이 '광주->한국->아시아->세계로' 라는 나이브한 선전 문귀를 치장하는 온갖 수사적 언어들로 도록의 서문을 장식하고, 비엔날레관에는 태극기가 마치 걸레 처럼 펄럭인다. 외국의 비엔날레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 민족 내셔널리즘의 내면화된 폭력성과 정서적 합의의 풍경을 미술인 누구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 대신 누구라도 비엔날레 작가, 비엔날레 큐레이터, 비엔날레 참여 시민이 되는 싸구려 북새통 비엔날레가 되고 말았다. 거의 민족주의적 집단 심리에 가까운 한국 좌파(우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좌우 사이에 세 개의 꼭지점을 만들어 오각형으로 가자! 단단한 유대) 내부의 후진성 담론에는 늘 아시아 정체성이라는 용어가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닌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2년간 자명하고 순수한 명령어 처럼, 혹은 보수건 진보건 비엔날레 권력을 지키거나 쟁취하려는 전문가들에게 아시아 정체성은 수사용 어휘로 활용되어 왔다. 태평양 전쟁 당시 '아시아는 하나다'라는 아시아 공영권 이데올로기 제창의 일환으로 탄생한 이 용어는 일본 군군주의의 산물이면서 서구로 부터의 정신적 저항, 자립, 자존을 뜻했다. 이제는 글로벌 자본의 흐름 속에서 국가자본주의의 문화이데올로기 용어로 사용되면서, 서구에 대해 방어/공격의 둔한 망치로, 혹은 서구와의 혼혈로 성장한 자본주의 상품의 기호로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복잡한 협잡의 상술 속에서 어떤 기준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할까? 배반의 길을 닦기 위해 훨씬 자유분방하게 또한 엄밀하게 실험이 필요하다.


(5)
<말과 사물>에서 미셀 푸코는 ‘인간’은 담론적 배치의 산물이라 고 말했다. 따라서 시대의 담론이 달라지면 근대의 인간(한갇 이미지에 불과)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시대 인간은 우리와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텅빈 캔버스 조차 ‘이미’ 담론을 갖고 있는 것이며, 작품이 전혀 걸려 있지 않은 전시 공간도 ‘이미’ 담론적 공간인 것이다. 폴록의 텅 빈 캔버스 천은 담론적이다. 역사적 선험으로서의 기존의 미술 담론에 대한 개입과 반격으로서의 폴록의 <행위>가 있다. 사랑에 대한 담론 위에서 인간들은 행복해하거나 슬퍼한다. 마찬가지로 전시의 최소한의 실재적 단위는 푸코적 관점에서 볼 때, 이미 상존하고 있는 담론이다. 장소-특정성이라는 말은 장소를 중립적인 것, 텅빈 것으로 전제하므로 잘못 규정된 것이다. 대신에 담론-특정성이라고 해야 정확하며, 따라서 기 뒤보르 같은 상황주의자들의 관점이 정교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상황주의자의 정신 속에서 들뢰즈는 담론이라는 푸코 용어 대신에 배치(앗상블라주)라는 말을 새로운 용법으로서 발명해냈다. 이미 있는 것이므로 담론은 역사적으로 선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담론은 여전히 인간에게 국한된 것이므로 비자아적, 비인칭적 인간을 고려했던 들뢰즈는 담론 대신에 적절하게 배치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배치의 측면에서 보자면 동물들도 예술적 행위를 한다. 호주에 사는 세노포이에테스라는 새는 노래를 하기 전에 땅에 떨어진 나뭇잎의 면이 똑같은 색이 되도록 뒤집어 정리한 후에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습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즉 무대를 펼쳐놓고 노래를 하는 것이다. 전시는 큐레이터가 작가, 작품을 정해서 배열하기(새의 노래에 해당) 전에 이미 담론으로서(푸코의 경우) 혹은 배치로서(들뢰즈의 경우) 선재해 있는 것(나뭇잎을 정돈하는 새의 행위)을 성심으로 파악한 후에 이뤄져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미 상존하고 있는 배치(앗상블라주) 위에 작가, 작품, 자아, 개념, 기표 등이 마치 강 속에 뛰어들어 원무를 그리듯이 어떤 풍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을 헤엄칠 줄 모르면서, 전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면서 선수인 것 처럼 말하는 자를 우리는 수영을 이제 막 시작한 자, 어린 아이 혹은 거짓말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앗상블라주 위에 자신의 앗상블라주를 겹치게 하는 행위가 곧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미세하고 특정한 흐름의 상황 속에서 이뤄지는 공동 작동, 공감, 공생의 지각 풍경을 만드는 행위를 큐레이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작가(author)로서의 예술가주의, 큐레이터주의, 신분, 지위, 인간 자아 부터 부서져 나가 그 성분들로 흥미로운 놀이판이 벌어지는 배치물이 될 때, 관객은 리얼한 상태의 해방감에 젖어들며 보다 순수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공감은 존경이나 정신적 공유가 아니라 이성적 판단이 전제되지 않은 몸체들 간의 노력, 침투, 사랑 혹은 증오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혼합물이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대안, 새로운 인간, 새로운 민중이 그 안에서 실험된다. 큐레이터는 누군가를 위하거나 그를 대신해서 세계를 창조하는 자가 아니다. 창조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세계란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무엇과(누군가와) 함께 말을 하고, 무엇과(누군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와중에 있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자이다. 가장 지독한 미움에서부터 가장 열정적인 사랑에 이르기까지 헤어릴 수 없이 많은 영혼의 미묘한 공감들. 그 선들이 만들어내는 크리스털한 풍경, 역사-대지-우주에 속해 있는 앗상블라주 구축물. 상품화의 거대한 바다 속에서 저항과 도주의 선들이 만들어내는 다각형! 그것이 흥미로운 전시의 충분조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시는 그것이 어떤 주제, 어떤 개념을 갖던 역사적 아 프리오리를 구성하는 거대한 사회적, 자연적, 다성적, 우주적 배치 위에 ‘자신의 고유한’ 영토=시간적인들의 각: 수정(水晶;물/흐름 속의 빛의 각/멀티플 태양)=살들(작품들)의 긴밀한 혹은 느슨한 상호지탱=다양한 힘들의 전투의 장을 일시적으로 펼쳐보이는 격렬한 산 노동의 집약체다. 전투 과정에서 한 구석이 부서져 있어도 그것은 아름답다. 열정의 삶이 새겨져 있는 까닭에.




(6)
광주비엔날레 전시는 두개의 장으로 이뤄진 한권의 아시아 현대미술 교과서로 보인다. 하나는 도상학적 사고에 기초한 박물관적인 전시. 아시아성이라는 허구적 실체를 도상으로 설명하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뿌리(root)-책, 그것에 연결되어 있는 4개 주제군들로 이뤄진 수염 뿌리 체계,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분절된 마디로 이뤄진 경로(route)-책. 여기서 Root-route의 연결은 사고방식이 나무 체계다. 기원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뻗어 나가는 나무 줄기들 처럼. 이런 사고에는 이분법들의 반복적 세밀화가 있다. 모범생의 학습 방식. 하지만 어떤 생성도 리좀도 발생하지 않는 도서관적 구성이다. 자신의, 그리고 초대된 것들의 속성들이 변해가며 물리적 상황 공간 속에서 새롭게 작동되어 가는 다양체는 차단되어 있다. 변주는 예기치 않은 열풍이 아니라 뻣뻣한 도식이다. 마지막 부분의 전시는 연구와 탐색의 지적인 열정으로 공이 든, 비록 주제는 다르지만 접근 방식에 있어 연구-기반적 아트 프로젝트의 특징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던 4회 광주비엔날레의 장면을 떠올린다. 이 전시는 낡은 교과서형 전시에 클립 처럼 끼워져 잠시 빛을 발한다. 김홍희-우홍의 파트는 작가, 작품 선정에 문제가 있기 보다는(각자 자신의 취향, 생각, 기질, 수준을 갖고 산다) 오히려 작품들 안에서 속성들을 밖으로 끌어내 절속(articulation)시키는 방식 - 그것이 창작으로서의 전시이다!- 을 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시 이전에 역사적 선험으로서의 ‘배치’에 대한 충분한 명상과 분석, 그 속으로 뛰어들어 거슬러 올라가는 열정을 느낄 수 없으므로 전시는 현재형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떤 상황주의적 긴장도 전달되지 않는다. 구작들을 초대한 것은 구작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상황 속에서 볼 때, 자신없는 혹은 빈약한 사고(질문에 확신이 없는!)의 안전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비춰진다. 구작들은 자아의 그림자들, 예정된 이슈들의 표지들, 정체성의 흔적들로 호명되었다. 자유와 저항으로 이뤄진 시간적인 것들의 다각형이 아니라 주제(역사, 시간, 의미의 공간화)를 의식한 시각적 모범 답안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거대한 일러스트레이션이 되고 만다. 오늘날 민족 국가를 넘어 확장일로에 있는 글로벌 자본 제국에 대응하는 <자율(아우또노미아)>이 어째서 지리정치적 차원에서 집약된 실험으로서, 보다 활력적인 방식으로 역사적 소재와 이야기들을 역사-자연의 성좌 처럼 배치하는 능동적인 미술로 실험되지 않았을까? 인간의 뇌를 통과하는 화살로서 동아시아적 정신의 핵분열은 무엇인가? 그것은 동서양의 문화적 진화와 현재의 조잡한 문화자본주의 상황 속에서 어떤 ‘정신적 항체’로 작동될 수 있을까? 현대 전시는 곧 상존하는 배치에 자신들의 배치가 겹쳐 그려지는 입체로서의 미궁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우주, 사회적 건축기하학이며 예기치 못한 질문던지기를 본질로 한다. 큐레이팅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던져진 질문은 그 자체로 무기가 된다. 그것은 강렬하게 가설, 모델, 그리고 시나리오를 창안하는 일이고, 문제들에 대해 병행할만한 상황들을 제작하는 일이다. 질문들은 창안되는 것일 뿐, 창조나 실험을 위해 우리를 기다리는 세계 같은 것이 아니다.


(7)
부산 비엔날레에서 가장 볼만했던 전시는 카페 2이다. 카페1(부산시립미술관)은 내용적 짜임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비록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어도 그것들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두 도시 이야기: 서울-부산, 부산-서울> 제목은 비엔날레 전시들을 관통하는 것도 아니고 묶어주는 것도 아닌 깃발 같아 보인다. 카페 2는 현재까지의 국내 큐레이팅 수준에서 거의 보기 드둘게 내용과 표현의 일치를 보여준 잘 짜여진 전시였다. 작품들의 감도를 최상으로 고양시키면서 공간의 자유도를 한껏 느끼게 한 탁월한 전시였다. 하지만 이 전시가 젊은 큐레이터 9명이나 필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해운대 바닷가에 SK 기업의 후원으로 임시 파빌리온을 짓고 그 안에서 전시된 리빙 퍼니처 전시는 큐레이터에 의해 모든 작품이 컨셉을 갖고 있는 디자인 제품으로 변형된 것 같다. 비예술, 반예술의 개념이 소비 자본의 일상 속에서 의심 없어진 상태, 모든 것이 너무 투명해진 것은 아닌가. 부산비엔날레 전체 맥락 안에서 이 전시는 어떤 의미 위상을 가져야 하는가? 부산비엔날레를 구성하는 예술감독들, 큐레이터들 사이에 대화도 협동도 이뤄지지 않는 이상한 한국식 경쟁 풍토는 지나치리만치 유아적이다. 오프닝 무대에는 큐레이터들은 초청되지 않았고, 한국 관료주의의 지극히 촌스런 풍경과 억지스런 공연만이 있었다. 부산비엔날레는 각각의 전시들이 고립된 섬들으로 이뤄진 군도를 형성했지만 각자의 섬을 떠나 서로 연결되며 가치와 이상을 공유하려는 어떤 노력도 보기 어려웠다. 사실상 부산비엔날레의 첫 출발이라 할 2000년 부산국제아트 페스티발 현대미술전에서 '고도(孤島)을 떠나며'를 기치로 했지만 이런 정신은 한국에서 항상 난파한다. 차라리 그것이 될 때까지 주제가 없이 동일한 제목을 시리즈로 하는 릴레이 전시는 어떻까. 그러나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새로운 장소의 확장과 신선한 활력, 야외 조각 전시에서 탈피를 시도한 바다미술제의 새로운 모색은 큰 성장이었고, 그 에너지는 광주를 능가했다. 또한 큐레이터들이 밖에서 부지런히 예산을 구하는 노력은 인정되어야 한다. 카페2를 제외하고 부산과 광주비엔날레의 전시에서 전시 공간은 칸트적 아프리오리, 즉 내용없이 텅빈 컨네이너 혹은 빈 캔버스 처럼 사용되었다. 특히 광주의 경우에는 공간은 주제와 작품을 위한 정돈된 수납 공간으로 처리되고 있다. 똑똑한 답(개념적 준거)을 전제한 후, 온기가 있는 작품들을 쿨하게 보이려고 한 전시. 두 파트 중에서 유일하게 볼만했던 것은 완결성을 보인 백지숙의 전시였지만, 글이 더 좋았다. 글 속에서 떠오르는 풍경과 이미지들이 전시 보다 더 풍부했으니까. 글 자체는 공간에 걸 수 없다. '말과 사물 사이의 심연과 긴장'을 살로 빚어내는 큐레이팅, 그 사이를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들어오는 말의 무리 처럼 큐레이터는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기에 전심해야 한다. 광주는 모든 것이 역전되어 있었다. 97년 무렵부터 국제적으로 실험되었던 공동큐레이터 시스템에서 피해야 할 것은 메두사의 머리를 닮은 모자이크 전시라는 말이 있었다. 부산, 광주 모두 그런 모자이크 비엔날레가 되었다. 아직 우리는 배움 속에 있다. 그러나 스승은 존재하지 않는다. 호위병들의 멋대로의 행진. 로마인들 사이에 이런 경고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퀴스 쿠스도디에트 입소스 쿠스토데스(호위병을 누가 호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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