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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파르헤지아(진실의 용기)’– 박이소의 예술

이영철

창작과 ‘파르헤지아(진실의 용기)’– 박이소의 예술
치우금속공예관 초청 심포지움 강연(2006.6.10,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


이영철(계원조형예술대학 매체예술과 부교수)

이 자리는 아마도 예술 창작을 함에 있어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다루어지리라 기대를 하고 오신 분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 공예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조형예술대학의 교수이긴 하나 ‘조형’에 대해 특별히 별다른 흥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교환가치와 시장에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그 결과물에 대해 무관심하며, 발상이나 전개 과정, 그리고 그것이 전시 공간에서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중요하지요. 가난하게 살며 작품을 지속하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내야 하겠지요. 아마도 진보적인 예술가라면 소극적 차원에서의 노동 거부를 예술 노동으로 대체하는 자가 되겠지만, 이런 의식을 갖고 사는 예술가는 보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도 모릅니다. 제가 보기에 요즘은 미술의 생산은 적지 않은 반면 지적인 자극이나 감동을 유발시키는 작품은 적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예 미술, 공예품이란 말이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가장 먼 단어로 여겨지는 것은 다행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 불행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인 측면은 생활에 밀착되어 진화를 해왔기 때문에 전문화된 미술 영역 안에서 보다는 일상 생활에 더욱 넓게 자리하고 있다는 면이고, 불행인 점은 지식의 한 분야로서 전문화되어 버린 미술 안에서 공예가 주변부에 위치함으로써 현대적 삶의 내용을 구성함에 있어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게토화된 영역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공예건, 회화건, 조각이건 혹은 설치건 현대미술 안에서 어떤 특정 장르에 대해 말하는 전문가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E. Said가 지적했듯이 오늘날 직업적 전문가주의는 상업주의 보다 더 경계해야 할 적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을 갉아먹고, 넘을 수 없는 많은 장벽을 세웁니다. 지성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직업적 전문가주의가 근시안을 강요하며, 비판의식과 창조성이 결여된 똑똑한 바보들을 생산해내지요. 오래 전에 바네트 뉴먼 이란 미국 예술가는 “조각이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뒷걸음치다가 부딪히는 어떤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조각과 회화, 조각과 이미 확고하게 정해진 매체 간에 무언가 의도적인 연관성을 맺는 문제가 아니라 조각은 <비조각>의 문맥 없이는 실제로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마치 공예는 <비공예>의 맥락 없이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공예의 정체성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더우기 공예가 조각과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 나아가 설치미술과 구분이 어렵다는 식의 표현 – 그에 대한 긍정, 부정의 논의- 은 매체라는 것을 상호 관계를 위해 주어진 단위, 수단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난 40년 간의 조각의 진화 방식을 보면, 조각은 조각이 아닌 것의 반대항으로 가득찬 조건을 끌어안는 순수 부정적인 형식으로 변모해 왔습니다. 조각은 건축이 아닌 것, 풍경이 아닌 것이 파생시키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범주가 된 것이지요. 공예가 조각, 혹은 설치미술과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의 긍정, 부정은 무의미합니다. 공예에서는 조각을 이미 낡은 조각 개념으로 바라 보기 때문이고, 설치미술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날 미술은 더이상 사물(물건)을 지향하는 작업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이 개입되는 유동적인 작업, 즉 명사에서 동사로 전환했습니다. 동사라 해도 존재가 아닌 생성으로, 역사가 아닌 지리로 중심축이 이동한 것입니다. 현대적 사유의 모델 자체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매체 간의 퓨전과 정체성 논의에 자신의 발상을 묶어놓는 것은 안타까운 교육 현실, 그것이 직업적 전문가주의가 퍼뜨리는 악성 바이러스입니다.

현대적 삶의 매체는 그것이 회화이건 테크놀로지이건 어떤 고정 실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사회적 관계항으로 보아야 합니다. 작품에 대해 사고하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사회가 있고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이 있는 것이지요. 매체를 점, 고정된 영역이 아니라 과정이나 선으로 파악할 경우에 비로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선이지요. 그것들은 단순히 기술적, 혹은 기법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를 포함하고 또한 나타내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의 창작 활동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실험하는 것이고, 때로는 위험한 행위라 봅니다. 그것에는 진실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푸코는 콜레주 드 프랑스를 떠나기 마지막 두 해의 강의(1983-84) 제목을 ‘파르헤지아’라고 붙혔습니다. 파르헤지아(parrhesia)란 그리스어로 ‘진실의 용기’라는 뜻입니다. 진실을 ‘향한’ 용기라기 보다는 스스로 진실하므로 용감한 상태를 말합니다.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의견들(doxa)은 많지만, 그것들이 진실한가에 대해 자기 자신도, 남도 믿지 않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와 상대주의 시대를 삽니다. 푸코의 그 강의는 비극 작가에서 부터 시작해 정치철학자들을 경유하여 견유학파 철학자에 이르는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파르헤지아 개념에 관한 역사적 연구였습니다. ‘파르헤지아’는 민주주의의 토대로서 정직한 말을 사용하며, 타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민의 고유한 의무이자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의회에서 듣기 거북한 진실들이 폭로되고, 온갖 계책과 음모들이 개입하면서 진실말하기는 죽음을 무릅쓰는 행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파르헤지아는 ‘아무 것이나 말하기’, 모든 것과 그 반대의 것을 말하기’로 변질되고 만 것입니다. 과도한 소통과 정보의 홍수 사회인 오늘날이 그런 사회입니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에서 파르헤지아스트는 진실을 말할 때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자를 가르킵니다. 따라서 진실을 말하는 행위 속에서 보이는 것은 그의 용기가 되겠지요. 고전적 사례로서 소크라테스는 견해, 주장이 아니라 문답법과 진실의 용기라는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한 정의(justice)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상대방을 동요시키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말의 진실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선언한 원칙 보다는 그가 감수하는 위험을 중심으로 주체와 연루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파르헤지아가 용기있는 말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때로 투박하고 신랄하고 선동적인 ‘정직성’을 갖습니다. 허름한 외투를 걸치고 수염은 덥수룩한 채로 가난하고 종종 기행(奇行)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삶과 진실의 관계는 긴밀하고 동시에 분쟁적인 것입니다. 하나의 담론에 따라 자신의 생을 규칙화하거나, 정의의 관념을 옹호하면서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나라한 진실의 현란하고 야생적인 현존을 직접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 둘 사이에는 파르헤지아스트를 공모자/협잡꾼들로부터 구분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공모자와 협잡꾼들은 기성 질서를 유지하거나 그것을 보수하여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현실적 이유와 변명이 많고, 합리성, 객관성이란 단어들을 좋아하며,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미래에 대해 상투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매사에 지연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반면에 자신의 목적이 손상된다 싶을 때 야수로 돌변합니다. 왜 진실과 삶의 결합은 종종 선동의 형태를 취하는 것일까요, 왜 항시 진실된 삶은 동시에 스캔들을 일으키는 삶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진실에 대해 푸코가 한 말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 진실은 감추어지거나 음험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가시적인 것이다. 둘째, 진실은 변질되거나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것이다. 세째, 진실은 합당하고 곧은 것이다. 네째, 진실은 부동하고 썩지 않으며 자기동일적인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이 진실을 이데아로 간주했던 생각입니다. 그런데, 푸코는 그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의 힘을 갖기 위해 어떻게 진실의 의미가 급진적이고 심지어 충격적인 형태로 생에 적용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성의 가치를 위반하는 것이 문제지만, 그것은 진실이 갖는 의미들을 과장하고 풍자하는 내적인 운동에 입각해서입니다. 숨김없는 생은 노출의 원칙을 개입시키게 합니다.

첫째,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견유학파의 철인인 디오게네스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자위행위를 했지요. 크라테스는 대중 한가운데서 성교를 했습니다. 비토 아콘치는 갤러리의 계단 밑에서 자위 행위를 하며 전시 공간에서는 스키커를 통해 오직 신음소리만 들을 수가 있게 했습니다. 예술가는 이상적인 실존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고, 뻔뻔스런 삶으로 실현되기도 하지요. 백남준이 벌거벗은 첼리스트와 성적인 뉘앙스의 작업을 했다고 해서 경찰서에 붙잡혀 간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무 자극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이것은 외설이나 선정성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한 방식의 문제인 것이지요. 둘째, 그것은 가난의 의미를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순수한 삶입니다. 적극적으로 가난을 자청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물질적 재산에서 벗어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발적으로 그것들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욕과 구걸의 용인과 추함과 심지어 불결함의 찬양에까지 이를 때, 예술가의 실존은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변형됩니다.

세째, 곧은 삶은 자연과의 부합을 강조합니다. 동물의 삶이 그들의 모델이라는 자연법에 따라 실존이 구조화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어떤 구속도 자기 자신에만 의존하므로 그는 왕 중의 왕보다 저 지고한 유일한 왕이 됩니다. 진정한 삶은 개의 삶이 되는 것이지요. 스위스의 조각가 자코메티는 자신의 실존을 바싹 마른 개에 일치시켰습니다. 개는 야외에서 실존을 영위하며(비은닉),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짖으며(순수함), 낯선 사람과 친숙한 사람을 구분하고(곧음), 그의 각성 상태가 절대적인 평온을 확보해주는 것(확고부동)입니다.

한국의 박이소는 자신의 20년에 걸친 예술가로서의 생애를 통해 ‘파르헤지아’의 전범을 보여준 아주 드문 작가입니다. 그가 남긴 기록들을 보면, 그의 예술이 파르헤지아의 몸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는 기묘한 일치인데, 그는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를 머물던 마지막 두 해에 걸쳐 강의했던 바로 그 시기(1983-84)에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진실의 용기’라는 테마와 아주 유사한 실천적 사고와 행위를 통해 예술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진실의 용기라는 테마는 푸코 자신이 (1)윤리의 장(자기와의 관계를 구조화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 즉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 修身)을 따로 떼어내 규정하려고 시도한 후에, (2)정치의 장(타자의 행위의 구조화에 관련된 문제, 즉 타자를 다루는 방법)을 다시 통과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윤리의 장에서 박모는 부모가 만들어준 이름을 스스로 버리고(박철호박모), 이어서 11월 말의 추수감사절 때, 사흘간의 단식 행위를 통한 공복 속에서 작품(밥솥)을 만들어 밧줄에 이어 목에 매단 채, 단식 마지막 날 빈 속으로 정오에 집을 나서 강을 잇는 부르클린교를 건너갑니다. 20대 말의 나이에 이것을 결행했다는 것은 결코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는 미술에서의 퍼포먼스가 1차적인 목적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관객도 없었고 단지 친구가 있었지요. 당시 가까이 지냈던 강익중이 사진을 남겼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정치의 장을 통과하는 행위로서 북부 부르클린의 한 창고를 빌려서 [마이너 인저리]라고 하는 대안 공간을 열고, 스스로 ‘마이너리티-되기’를 실행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맥락은 국내에서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으므로 논의 조차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삶은 내재적인 동시에 강렬한 일관성을 보여줍니다. 솔직하게 말하기, 진실되게 말하기의 예로서 85년도 석사 논문과 95년 ‘오각형의 자백’ 그리고 21권의 작업 다이어리,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공적인(public) 책임과 자신의 역할에 대해 그는 다양한 부류의 작업을 통해서건 인터뷰를 통해서건 중요한 흔적들을 남기고 갔습니다. 숨김없는 삶은 노출의 원칙을 개입시킨다고 했는데,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은 때로는 냉소적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것은 유머와 위트였습니다.

박이소 특유의 유머와 스타일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유작전의 도록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은, “너는 누구냐? 가 아니라 “너의 ‘실존’을 무엇으로 만들어갈 것이냐?”였지요. 재확인해야 하는 숨겨진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행동 규칙을 통해 형태를 부여해야 할 질료로 여기기 때문에 삶은 그 자체가 구축해야 할 작품이 된 것이지요. 따라서 그의 삶은 그의 미술과 전혀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공예, 회화, 설치 같은 것을 놓고 매체 자체의 정체성을 말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작업 방식을 붙들어매는 것은 쓸데없는 신경증이고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심지어 작은 죄입니다. 예술가에 있어 자기 배려의 미학적 차원은 실존의 규칙화된 형식화(가시화)에 있습니다. 예술가의 자기 테크놀로지들(의식점검, 실존의 지도, 영적인 집중 등)은 자신을 인식 대상으로 구축하는 대상화의 테크닉이 아니라 인간의 외부 세계에 영적인 원칙들을 가시화하는 윤리적 활성화의 테크닉인 것이지요. 이는 달리 말해 우리의 자아가 비가시적이고 심리적 내면으로 후퇴하는 진실과 관련 맺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정치적 외부성과 결부된 그런 진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선을 추구하고 악을 피해가는 도덕을 기초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따르고 거짓을 고발하는 윤리를 요청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이는 오늘을 사는 지식인 예술가에게 필요한 윤리적 요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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