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상황과 전망 ②

이영철

1장: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의문

(1) ‘지리’(geography)의 뜻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용어로서 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러시아를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을 의미한다. 이는 서아시아(소위 중동 지역에 자리잡은 터키, 아랍국가, 이스라엘, 이란,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구소련의 아시아 공화국과 몽고), 남아시아(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네팔, 티벳, 부탄) 동남아시아(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자, 브룬디,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동아시아(중국, 남북한, 일본)를 포함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1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로 축소하여 생각한다면 그 가운데 거의 600명에 달하는 인구가 아시아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유럽은 고작해야 80명에 불과하다. 유럽이나 다른 어떤 대륙에 비해 가장 복잡한 인종 구성, 언어, 문화, 종교의 다양함, 국가 체제의 상이성, 자본주의 근대화의 불균등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금세기 초 이래 “아시아는 하나다.”라는 환상이 있어 왔다. 이러한 환상은 그것이 환상임에도 불구하고 근대 세계에 들어와 아시아 국가들에 강한 물리적, 정서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대동아 공영권 같은 아시아니즘의 환상을 주조해낸 것은 일본이다. 이러한 환상은 근대 서구와 똑같은 헤게모니의 길을 따라가려고 했던 일본의 지배욕과 정신분열적 기대의 표현이다. 아시아가 하나라는 생각은 두말할 필요 없이 모순된 것이다. 아시아는 셀 수 없이 많다.

진보가 늦었던 아시아는 일본만 유일하게 먼저 문명 세계의 길을 따라왔고 일본은 불운한 아시아의 동지들과 덩달아 퇴보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기치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는, “아시아를 떠나 서구와 결합하기 Leaving Asia and joining the West”라는 기치는 아시아 국가들 안에서 일본을 고립시켜왔고, 일본을 서구 중심의 헤게모니 구도 안에서 헤게모니를 따라 잡기 보다는 헤게모니에 끌려 다니는 사회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20세기 초 “아시아는 하나”라는 일국적 차원의 아시아 협동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서 고려해볼 수 있는 시각이 가능한가 라는 문제의식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대개 많은 저자들은 아시아라는 단어를 아시아의 일부를 지칭하는 데 사용해 왔다. 불필요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시아 내부에 어떠한 집중성을 피하기 위해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형성 과정과 아시아 지역과의 관계를 검토하는 경우 흔히 ‘아시아’는 일본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근대 이후 거의 습관적으로 사용해온 지역은 영토적으로 닫힌 영역이라는 의미를 갖는 반면에 지대zone는 정치, 경제, 행정적 경계에 의해 울타리처 지지 않는 항구 도시, 섬, 바다, 육지의 일부를 연결하는 연결 지대를 의미한다. 아시아 지역이라 말하는 경우에도 그것을 연결 지대로서의 아시아를 고려한다면 지역에 속에 있으면서 지역을 넘어서는 관계 위에서 검토하는 일이 된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지리라는 단어의 본래의 뜻을 되새기게 한다.

하늘과 대지(땅) 사이에 살고 있는 인간은 자신의 활동성을 통해 대지에 무언가를 새겨넣는 행위를 한다. 그러므로 지리(geograghy)를 정태적, 물리적 양상이 아니라 인간 활동을 중심으로 파악해보면 지리란 인간 활동의 출발점이 아니라 산물로 드러나며, 이는 지리라는 말의 본래 어원학적 의미인, ‘대지 위에 쓰기(earth inscription)’를 되살리는 일이기도 한다. 2) 예술은 대지(geo)에 무언가를 새기는(graphy) 행위이다. 근대화 이전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대지(땅)은 평평하고 하늘은 지붕 처럼 둥글다고 여겼으며, 그것을 거북이의 형태에 비교하곤 했다. 한자의 기원인 갑골 문자는 대지를 상징하는 거북이의 단단하고 납작한 배에 글자를 새겨넣은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모든 예술은, 질 들뢰즈의 사유를 근거로 해서 존 라이크먼이 표현한 ‘지리 예술’(geo-art)이 된다.3) 아시아는 이 지역의 물리적 윤곽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구체적인 듯이 보이지만 그것을 인간 활동의 측면에서 볼 때는 추상적 개념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의 용어는 추상적 개념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아시아의 주민들은 근대에 들어와 서양 사람들이 위치를 정하고 명명하기 전에 자신이 아시아에 산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들은 유럽에서 온 지도를 통해 스스로를 보기 전까지 아시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시아’라는 단어는 17세기 예수회 수사들에 의해 중국인에게 소개되지만 중국과 동아시아 전체를 냉혹하게 편입시키고 있었던 새로운 세계 체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박하게 요구되던 시기인 19세기가 될 때까지는 이 용어가 중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는 표시가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유럽이라는 개념 역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유럽과 북미, 또는 미 대륙 전반을 모두 포함하는 ‘서구’라 불리는 통일적인 존재는 말할 것도 없다. 지리학은 근대의 출현 이후 제국주의적 이해를 대변하는 영토 개념으로서 대항 세력 간의 거리와 경계를 뜻하는 것이었다. 국가 건설과 민족 해방을 위한 이념과 자금 등을 찾아 아시아를 돌아다녔던 급진적인 민족주의자들은 그들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들 사회의 공통된 곤경 - 그리고 자신들의 ‘아시아성’ - 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시아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급진적인 논쟁을 만들어내게 된다. 유럽의 급진적인 지식인들에게 19세기 말 런던이라는 도시가 수행했던 역할과 비교될만하게 세기말 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던 동경은 인도에서 베트남․중국․한국․필리핀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을 추구하는 아시아의 지식인들을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았다. 1920년대 광주는 아시아에서 급진주의의 수도(1920년대 “아시아의 파리 코뮌”으로 알려짐)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27년에 일어난 광주 의거에서는 베트남․한국․일본의 급진주의자들이 아시아의 혁명적 변혁을 위해서 나란히 싸웠다. 1920년대와 1930년대 터키의 케멀 아타투르크와 인도의 모한다스 간디의 사상과 행동은 중국과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만큼이나 급진주의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30년대 일본의 제국주의는 ‘서구’ 제국주의 - 부르조아라든지 공산주의든지 간에 - 에 대항하여 아시아를 수호한다는 주장으로 많은 아시아인들 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추구는 오늘날 미 유럽의 지배에 대항하여 ‘아시아적’ 또는 ‘동아시아적’ 가치를 호소하는 모습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명백한 사례로서 1995년 1980년 광주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창설된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에서 가장 최대의 국제적 비엔날레로서 이후 타이페이 비엔날레, 샹하이 비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등이 생겨나게 되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생겨나고 있는 많은 비엔날레들은 공통적으로 ‘아시아성’을 강조하는 보편화된 요구들에 노출되어 있다. ‘아시아적인 것’의 강조는, 문화적 동일성을 전제하는 아시아의 국제비엔날레가 ‘아시아다움Asia-ness’을 본질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혹은 가져야만 서구와 동등한 수준에서 만난다는 식의 타자성(여기서는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를 지칭)의 자기 내면화를 서구에 대한 대항 혹은 대안 담론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시아가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갖는다고 여기는 상상은 동아시아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연대해 낼 수 있다는 탈역사적인 규범성과 상관이 없다. 동아시아가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인 실제적인 단위가 되어본 적이 없고, 또한 동아시아의 문화는 정치 권력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종교 문화나 자본주의 경제의 세계성을 확보한 적도 없다. 동아시아는 단지 민족 단위의 국가 형태로 각기 다른 경로로 발전되어 왔지만, 문명의 기원으로서 공통된 기원을 갖는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 상상적 공동체를 형성할 따름이다. 20세기 후반 들어와서 경제 발전을 토대로 상호 의존성과 세계 질서의 변동으로 인해 통합에의 전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통합이 무엇에 기반을 둔 어떠한 통합인가 설명되어야 상상적 공동체에 기반하여 형성되는 문화의 ‘작용’이 설명된다. 즉, 20세기 후반의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시장이 만들어내는 상호 의존성과 경제의 블록화로 인한 지역간 통합이 동아시아에 동질적인 문화가 있다는 신념 체계와 어떠한 성격의 통합을 “누가 이루어낸다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문화가 무엇인지 설명되고, 문화에 대한 신비화가 벗겨진다. 즉 문화의 동질성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어떠한 과거 혹은 전통을 복원하는 것이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는 삶의 양식이고 일상의 실천 양식이다. 따라서 어떠한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과 문화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의 공통된 문화가 ‘유교 문화’ 혹은 ‘도교 문화’라고 보면서 마치 그러한 문화가 아시아의 일상에서 실천되는 양 말하는 것은 사실 무근이며 오류가 된다. 초월적 기의로서 (동)아시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적인 공동체로 존재하는 동양․아시아의 담론이 어떤 의미를 생산․구성해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2) 국가주의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은 국가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집합적 정체성이 부인되면서 개인성, 합리적 사고,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국가적 자본과 개인들의 유목적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매개하지 않은 개인의 정체성 구성은 여전히 쉽지 않다. 아시아와의 만남에서 국가를 매개하지 않은 관계지음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국가를 매개로 하는 아시아 정체성이 당연하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매개하는 아시아 정체성이라는 것이 국민 국가 내의 다양한 집단들의 이해와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가 질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국가는 근대화의 주체이고, 국가에 의해서 설정된 보편적 개인, 즉 전체주의적 주체인 국민을 만들었던 권력이다. 이슈는 글로벌 해지는데 아직도 국민 국가의 영역 내에 있고 현재의 상태는 국제 간의 모든 타협의 대상과 주체가 국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아시아는 국가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고, 동아시아가 우리의 일상적 담론 속으로 들어오는 맥락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시 되어야한다. 따라서 동아시아 정체성을 논하기 위해 먼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차라리 국민 국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문제 제기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방기했을 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동아시아 담론은 우리 내부의 ‘차이들의 정치학’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규범적이고 추상적이며 관념적이고 탈역사적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왜냐하면 구체적이고 맥락적인 질문이 없이 탈식민화․냉전, 동아시아가 민족주의․반공, 유교 문화라는 식으로 대응되는 거대 논리화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문화 지형도의 구성, 지역의 재편, 지역 내 연대의 경험 등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의 삶을 비가시화시키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동아시아인들이 있다”는 담론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현실과 유리된 지식 만들기 그리고 그 위에 현실 쌓기라는 동아시아의 근대적․서구 중심적 인식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구에 의한 동아시아․동양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어떻게 내면화되어 있는지가 질문되어야 한다. 동아시아 담론의 전개와 본질은 동아시아가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담론을 말하고 있는 ‘우리’라든가, 우리 사회 내의 집단에 대한 분석이 더욱더 중요해야 하는데 왜 동아시아 담론은 내부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가? 동아시아 담론의 논자들은 아시아성 혹은 ‘우리 고유성’이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우리의 고유성’이라는 것을 분석의 대상에서 유배시켜 많은 문제들을 규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지점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서구인들에게 자신의 것이 아닌 ‘동양’의 사상, 즉 타자의 사상이 그들로 하여금 현재를 다르게 보고 현재에서 탈출케 하는 하나의 대안이라는 역사성과, 타자인 동양이라는 혹은 동아시아성이라는 타자성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 서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동양적’인 것이 있다고, ‘동양인 우리가 먼저 서양이 가고자 하는 그 미래의 고지에 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와 정치학의 개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민족 중심주의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아니라 서구를 관객으로 하는 무대를 꾸미는 일이 라고 해야 한다. 서구는 ‘아시아’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불가분의 요소다. 서구는 더 이상 아시아와 아시아인에게 외부적인 존재가 아니며 아시아인이 자신을 의식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내면화되어 있다.

아시아는 지리적이지 문화적인 개념이 아니다. 비록 지난 150년 간 많은 아시아인들이 자신들의 대륙을 문화적으로 규정하려 하였지만 이러한 규정들은 서구의 식민주의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반응이 낳은 인위적인 것이지 더 큰 규모의 문화적 유사성을 추구한 결과가 아니었다…… 아시아에 대한 문화적 정의는 한때 위대했으나 지금은 부패하고 노쇠해버린 고대 문명 등이 존재하던 곳으로서의 아시아 대륙이라는 내면화된 제국의 환상에 대한 심리적 방어였다.(인도의 사상가 아싯 난다)

이제 문제가 명확해지는 지점은 아시아와 동아시아에 공통의 문화적 영역들이 존재하는가 아닌가의 여부 이전에, 이들 지역들이 지역간 상호 작용과 문화 형성에 내재한 역사 논리에서가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현실적 이해 관계와 그들의 인식에 의해 규정되었다는 데에 있다. 동, 북동, 남동 아시아들간의 차이점, 이들 지역들간의 명확한 구별, 그리고 이들과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는 무엇보다도 적어도 근대 이후 미국과 유럽의 힘과 사상이라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3) 오리엔탈리즘
이 경우, ‘아시아’는 가장 고질적인 미 유럽의 오리엔탈리스트의 편견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 즉 유럽의 ‘타자’로서의 위치인 것이다. ‘타자성’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른 종류의 어휘에 의존하지만 아시아성을 향한 대부분의 호소력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은 아시아의 물화다. 이러한 현상은 오리엔탈리즘과 거의 구별될 수 없는 옥시덴탈리즘이 종종 수반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20 세기의 전반부에서 이러한 입장을 대변했던 사람이 인도의 시인이며 사상가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다. 그는 물질적 서구에 대한 정신적 아시아라는 이념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유럽 오리엔탈리즘에서 상정해온 차별화에 의존하고 있었다. 타고르의 사상은 1920년대 중국에서 서양의 ‘물질적’ 문화와 동양의 ‘정신적’ 문화를 대조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다시 살아난다. 이러한 구별은 오늘날 ‘유교적’ 또는 ‘이슬람적’ 아시아 문명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성공을 보이면서도 자신들의 정신성은 명백히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 속에 계속 존재한다. 자신들의 ‘정신적’ 유산을 가진 아시아인들은 ‘서양’의 학살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상당히 오리엔탈리스트적인 양식으로 아시아에 역사를 부여하지 않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근대성의 인종적․성적․계급적 경험 속에 있는 거대한 차이점을 가릴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상상의 ‘서구’에 대비되는 아시아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들과 마주쳤을 때 그것은 자신만의 억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민족적 열망과 대륙에의 구속이 혼합된 결과 나온 범아시아주의 속에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즉, 대륙적 특성을 민족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동시에 민족적 특성을 대륙에 투사하는 문제점이다. 이 개념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20세기를 통해서 이들이 정반대로 사용되어져 왔다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의 속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유럽 중심주의를 거부하는 주장에서조차 영리한 방식으로 지속되는 유럽 중심주의다. 지난 이십 년 동안 계속된 유교의 부활에 있어서, 또한 유럽 중심주의의 헤게모니에 대항하여 자율적 가치를 만들어 가려 했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동아시아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추구는 세계를 유럽 중심적으로 개념화하는데 수반되었던 시간성과 공간성에 그대로 의존하고 있다. 이 현상은 발전주의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적 요구와 일치하도록 유교적 또는 아시아적 가치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점은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에서 제기되어 있지 조차 않다. 사실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비판가들은 최근 자본주의를 유럽과 미국의 근대성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해왔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아시아 사회의 천부적인 자질로 설명함으로써 유럽과 미국이 근대성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는 데에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최근 아시아 사회가 근대 유럽과 같은 발전의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성공적으로 증명한 것에 대해 찬사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수정주의는, 사람들에게 덜 인식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유럽과 미국 자본주의의 근대성을 모델로 하여 세계사를 재기록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자본주의를 지구적인 인류의 문명으로 만듦으로써 다른 역사 전통에서 발견될 수 있는 유럽과 미국 자본주의의 근대성에 대한 대안을 소멸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는 문자 그대로 유럽 중심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럽 중심주의의 유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조차도 유럽 중심주의는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 않은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유럽 중심주의는 출구가 없는 역사적 감옥인가? 유럽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럽과 미국 사회가 수행한 역사적 역할을 거부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상 이전의 유럽 중심주의는 타자가 유럽의 발전에서 한 역할을 부인함으로써 번성하였다. ‘아시아적 가치’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아시아적 발전 모델을 주장하려는 노력에도 비슷한 문제가 따라다닌다. 그러한 견해들은 근대 자본주의의 목적론을 당연시할 뿐만 아니라 이전의 유럽 중심주의가 역사를 거부한 것을 똑같이 반복한다. 이번에는 ‘서구’를 역사의 그림에서 빼버림으로써 말이다.


(4) ‘지적인 실험’으로서의 아시아
연세대 백영서 교수는 최근의 한 논문에서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를 ‘지적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아시아에 대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당연히 거기에 있는 ‘장소’로 간주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시아를 생산을 위한 출발점으로 여길 때조차도 아시아는 우리가 생산해낸 존재로서, 진실로 우리가 상상해낸 산물이다.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를 자신들의 대상을 생산하는 담론으로서 말한다면 수긍이 갈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아무 근거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에 기존과 다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나 동아시아는 우리에게 연구와 정치를 위한 안전한 대상을 제공하는 단순한 지리적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미 유럽의 근대성에 대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실현되어야 할 계획이다. 유산으로서와 계획으로서의 동아시아를 혼동하는 것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오늘날의 논의 - 과거의 유산을 대부분 문화적 변혁에 대한 보수적인 반응으로 해석하는 논의 - 에 있어서 많은 잘못된 해석을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아시아와 동아시아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재생산하려는 문화적 주장들과 매일 일어나는 문화적 변혁들의 증거 사이에는 명백한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창립된 이래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온 이슈이기도 하다. 유산으로서의 동아시아는 그 지역의 주민들을 상상된 문화 속에 가두어 버린다. 동아시아를 계획(또는 ‘지적 실험’이나 담론)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시아를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려는 정치적 안건을 구별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변하지 않는 문화적 통일체가 아니라 역사적 존재로서 규정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이러한 계획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의 문제 일반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이 점에서 특별히 기억해두어야 하는 것은 지역적 또는 민족적 분류의 임의성 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사회적 분열과 복잡성이다.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세계성이라는 오늘의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과거’와 ‘서구’ 모두의 산물인 오늘의 현실을 출발점으로 하는 경제적․정치적 정의의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계획으로서의 동아시아는 과거를 다시 쓸 것을 요구한다. 민족주의 역사학에 의해 다시 씌어진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민족적이고 국제적인 조직의 현재적 기준에 대한 대안을 통하여 동아시아인의 문화와 정치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드러내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하면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에 대해서 단순히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이는 ‘서양’이 이미 뗄 수 없는 동아시아의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러한 주장들이 새로운 문화적 가면 아래에서 사회적 불의와 억압을 계속 연장하는 데 도움을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 대한 급진적인 시각은 초월되어야 할 근대성이 더 이상 ‘서양적’인 것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권력의 이해에 맞추어 위로부터 정의된 지역을 거부하는 것이다. 단순히 미 유럽의 세력만이 아니라 그 지역 내부의 민족적․사회적 세력의 구조에서 오는 권력을 의미한다. 변화를 가져다주는 힘으로서 동아시아라는 개념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지역 형성이라는 의미를 다시 재개념화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때의 지역 형성은 오리엔탈리즘적이고 민족주의적 시각하에서 만든 세계 지도 속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궤도를 보여주고 있는 매일의 필요와 상호 작용에 맞추어서 아래로부터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근대성의 역사학은 과거를 조직하는 데 있어 상상의 문화 영역이나 문명 또는 민족국가를 그 중심으로 하였다(이러한 요소들은 자세한 검토에 의해서 사실상 일정한 권력의 특권적 산물임이 판명되었다).

생존과 의미를 위한 매일의 투쟁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초지방적․초국가적인 동맹 속에서 지역이 만들어졌던 것 같이 우리는 이제 이들 지역들을 그들의 역사성 안에서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이러한 지역 형성이 비록 식민주의 지리학이나 그것의 지방화된 표현인 강압적인 민족주의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역 문화를 주장(아시아건 동아시아건 상관없이)하는 것은 종종 이미 가정된 민족적 특성을 아시아의 여러 지역과 대륙에 투사하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열망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 모순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롭게도 그 반대의 주장 역시 성립이 가능하다. 이것은 유럽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유럽 연합(EU)이 형성되었을 때, 민족 국가에 대비되는 지방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주장이 급증하였다. 카탈로니아의 정체성 요구, 또는 코르시카가 프랑스에게 언어 독립을 요구하자 이에 대해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인터뷰에서 이를 프랑스의 ‘발칸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지역적 시각은 민족주의의 동질화에 대비되는 지방의 문화적 차이점을 표현하는 데 힘을 줄 수 있다. 마치 전지적 규모로 진행되는 세계화가 ‘잊어버린’전통이 ‘회귀’하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듯이 말이다. 민족 국가가 아닌 다른 형태의 신원 증명(그리고 정당성)을 제공할 “동-동남아시아 연합”이 생긴다면 비슷한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