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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진- '기억술’의 카토그라피

이영철


장화진의 개인전은 한국 현대 미술에서 드물게, 연구를 기반으로 한 작업(research-based work)의 모범적인 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는 미술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활 속에서 그 나름의 연구를 수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공 영역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 또한 그 변화에 어떤 구체적이고 개입적인 역할을 이미지 생산자가 해낼 수 있느냐? 묻는 것이다. 이것은 1990년대가 다 흘러간 지금, 복합 매체의 다양한 표현 안에서 시각 예술의 새로운 전망으로 거론되고 있다. 베르그송 이래 이미지는 실재(세상)의 재현, 모방, 변형이 아니라 프레임(frame)과 영역(territory), 그리고 ‘질적’ 시간을 파지(把持)하는, 기억 행위에 수반된 또 다른 실재가 되었다. 그로 인해 영상 시대의 개념을 통해 시각 예술의 방향을 전망하는 상황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시각예술은 이미지의 공간적 해석(감각-운동)에서 벗어나 질적, 직접적 감응이라는 시간 차원으로 이동 중에 있다. 장화진의 작업은 기계를 통한 동영상을 다루지 않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기억 행위의 시간적 의미를 공공성 문제와 결합해 탐구한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 ‘기억술’은 너무도 중요하다. 아시아건 유럽이건 고대의 기억술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공공 장소에서 기원했다. 그 원리는 시간(天)-인간(人)-장소(地)의 세가지 이미지들의 계열과 공간 배치의 문제였다. 생각 속의 공간은 가능한 한 분명한 자리 표시를 하면서 많은 기억의 유입을 수용하고, 다시 인출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글자 발명, 바둑판, 정전법, 그리고 성경의 이미지 배치법은 기억 행위 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장화진은 한 사례 연구로서 지난 96년 중앙청 건물의 철거라는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보다 심리적이고 내적인 문화 의식의 차원에서 접근한다. 기억의 고고학. 그의 이러한 관심은 미술가들을 자기 참조적인(self-referential) 미술의 주인으로 간주해온 근대의 일반적 견해와 보편주의 미학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97년 이후 포스트모던 교차 문화의 시각적 현상들이 표면적 참여를 유발할 뿐 일상적 삶의 영역 안에서 공공성과 기억의 관계를 지극히 소홀히 다뤄 왔음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점점 과거를 모르게 되고 앞으로의 세대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건축물은(철거에 관한) 찬, 반론의 결과나, 흑백 논리가 될 수 없고, 개인적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하게 문화적 의미를 함축하는 담론의 대상으로 남아야 한다.' 중앙청 건물의 부재가 남긴 잔상의 이미지 자체를 사람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망각하게 될 것이다. 도처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져 왔고,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전지구적 두뇌-도시라고 하는 거대한 기억 장치를 만들어 기억을 정보와 기술에 맡겨버림으로써 백치와 같은 뇌를 양산하는 세상을 우리는 산다. 그로 인해 저장 기억(아카이브 지식)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기술 관료적 지식인들과 달리 창조적 두뇌를 가진 사상가, 예술가, 교육자의 존재가 보다 중요해진다. <우리가 미술관 건물을 투시적 안목으로 내려다 본다면, 3개 층의 이미지들을 각기 계열을 이루고 각 층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시간(天) - 인간(人) - 장소(地)가 합성된 내재적 평면, 즉 정신의 지형도(cartography)를 이룬다. 그 내부에 공간적 배치와 체계화가 엿보이며 동선을 따라 기억 풍경이 열린다. 작가의 이러한 안목은 매우 기능성이 탁월하고, 역사적 사건의 문화 의식적 의미를 눈으로 판독할 수 있는 거대한 기억 복안을 조성해낸 것이다.

1층: 많은 일상의 문들로 이뤄진 일종의 상징화된 궁(宮). 2층: 광화문-총독부-기마병의 이미지. 말발굽에 짓밟힌 궁과 지배와 통치의 역사. 역사는 모두에게 속하지만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역사는 보편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기억 장소의 아우라. 망자에 대한 기억, 빛으로 그들을 불러냄. 가상 실재의 유령 효과. 3층: 중앙청 건물의 부재를 넘어 관객 자신의 기억에 충격을 부여함으로써, 시간 이미지의 크리스털적 씨앗을 만들어냄. 살색 벽에 플라스마 형광빛을 발하는 원(原)도면들의 재현, 납으로 봉인된 40개 백색 미니어처 건물들. 이 전시는 시나리오가 잘 짜여진 한편의 영화다. 그래서 각 층의 중앙은 비워져 있다. 의자가 없는 관객석이다. 문화적 기억의 위기를 자신의 과제로 설정해온 장화진의 깊은 ‘강박’ 속에서 질문은 다시 부메랑 처럼 되돌아온다. 나갈 수 없는 문들 안에서 우리는 어디로 나가야 하는가? (1층) 무엇이 우리를 지배하는가? (2층) 우리 머릿 속의 이미지는 어디를 떠도는가? (3층)

- 월간미술 20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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