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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공동체의 구축을 향한 새 시도- 대만 미술전

이영철


최근의 대만 현대 미술을 보여주는 기획전이 평창동의 토탈미술관에서 열렸다. 젊은 세대의 미술가들이 서울에서 시장과 거리를 활보하며 사진을 찍고 재료를 구해 작업했다. 짧은 일정의 가볍고 유쾌한 만남 속에서 아시아의 이 외국인들은 새로운 메시지를 간직한 싹을 조용히 던져놓고 떠났다. 이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표현적 스타일이나 작품의 수준이 아니다. 자유롭고 흩어져버릴 것 같은 가볍고 비물질적인 전시의 배경이 무엇인가? 외관상 그로벌 시대 한국 미술의 경향과 유사해 보이지만 오랜 역사적 문화적 전통의 문맥을 디지털 시대의 표현이나 도구, 새로운 표현 수단과 연관시키려는 다차원적 시도들이 주목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2001년 5월 개관한 이 전시의 기획에 새겨져 있는 타이페이 현대미술관(TMOCA)의 설립 목표와 방향성이고 그 전시가 타이페이에 이어 서울 도심에 가까우면서도 외진 평창동이라는 주택지에서 열렸다는 점이다. 이것의 의미는 미술관이 지역-주민과 맺는 특이한 상호 관계와 소통의 관점에서 서울과 타이페이 간에 모종의 우연의 일치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미시적인 경험의 씨앗이 먼 곳에 떨어져 그곳에서 새로운 미시적 관계의 싹을 트고 그 씨앗이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 싹을 트는 과정의 위대함. '가벼움을 추구하는 여행을 삶의 육중함과 겨루게 하라'는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표현에 착안하고 있는 이 전시는 <비물질적인 것의 중력>이라는 멋진 제목을 갖고 있다.

한때 현대 미술의 왕성한 실험실이던 토탈미술관이 평창동 산 언덕에 세워진 후 그 동네는 서울의 한 지역에 문화 생태적 차원의 공간을 열었다. 10년 사이에 가나아트 센터, 세줄 갤러리, 그리고 개인 미술관이 자리잡고 국내 화단에서 성공한 미술가들이 모여 살면서 작은 미술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평창동이 지나치게 상업적 계산과 고급 문화 취향으로 흘러가 버리긴 했으나 문화적 생태의 장소로 자리잡은 것은 일단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는 작은 기반일 수 있다. 이런 배경이 역시 주택가와 학교에 인접해 있는 타이페이 현대미술관의 신중한 설립 배경과 유사성을 갖고 있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이 신설 현대미술관은 대만 안에서 1983년에 설립된 타이페이 파인 아트 미술관(TFAM)과 비교하여 차별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두 미술관이 위치한 장소 자체가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TFAM은 세계 미술 상황을 대만 미술계에 소개하는 일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으나 현재의 글로벌한 문화 상황에서 경쟁력을 갖는데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타이페이 시첸(실천) 대학 부교수이자 새 미술관의 보드 멤버인 빅토리아 루는 TFAM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 '외국 미술관 소장품 전시를 유치하거나 외국 큐레이터의 초청에 비용을 들인다고 해서 대만 미술이 국제미술계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관들이 자신들의 기획 능력을 키우고, 컬렉션 수준을 높이고, 교육적 기능을 확실히 수행해야만 비로소 외국에 내보일 수 있는 전시가 큐레이팅될 수 있다. 그동안 대만 미술관은 미술관의 스태프들이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보다 외국의 큐레이터들에 의존해 왔고, 외국의 큐레이터들을 위한 문화 번역자 역활을 해왔을 뿐이다.' 루 교수의 말은 타이완이 국내 큐레이터를 외국 무대에서 소외시켜왔고 이제는 실질적인 협동 작업이 절실하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제 아시아 나라들의 미술 조직체들은 국내에서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성찰(혹은 비판적 거리)을 견지하며 자본주의 프레임웍 안에서 국제적 상호 교환과 이해가능성을 실험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미술관이 지역 주민들과 형식적이지 않은 소통과 국제적 교환과 네트웍을 하나의 통합된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술관은 안정된 재정적 기반을 위해 재단을 구비하는 것이 좋고 재단과 운영 시스템은 프로페셔널한 미술 행정과 연구를 위한 환경을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목표를 지향하여 타이페이 현대미술관(MOCA)이 출발했다는 것은 양적으로 비대할 뿐 지속할 수 있는 방향이 없이 표류하는 한국의 미술관 현실에서는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타이페이 현대미술관은 미술 계의 제안으로 출범했고 개인미술관도 아니고 국립 미술관도 아닌 자율적 행정 조직과 목표를 갖고 있다. 작지만 성격이 분명한 미술관을 지향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정치적 권력이나 이념의 개입 없이 시민들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이 전시의 주제인 <비물질의 중력>이란 표현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세계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 개관전의 목표는 미술관 건축물의 역사와 지역 문화에 접근함에 있어 공동의 합의된 내용에 따라 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지역 주민 사이의 소통 라인을 열기 위해 독특하게 추출된 경험들을 살피고 추적하는 것이었다. 지적이고 예술적 사고를 확장시키기 위해 기획자는 작가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전시가 지역적 맥락에서의 소통의 문제, 그리고 국제교환을 목표로 한 것이지만 소통이 작가의 의도를 넘어 전개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다. 소통은 언어적 묘사, 태도의 표현, 감지 행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소통의 내용은 연인들의 끊이지 않는 잡담,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광활한 자연, 우주와의 조화 속에서도 이루어지며 풍부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루어 진다.

이런 관점에서 큐레이터는 두가지 방법에 착안하고 있다. 첫째, 이 미술관이 애초부터 미술관 용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며 일제 시기에 학교로 그후 시청 건물로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의미에서 역으로 빗겨가려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물론의 관점에서 분명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이탈로 칼비노가 리얼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환상과 비유의 방법을 통해 일상 속을 자유자재로 여행하며 표면의 진실을 드러내려고 했다는 사실을 큐레이터가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토리텔링, 즉 서사적 표현을 사용함에 있어 내용의 직접적인 진술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것을 피하고 이야기의 과정이 상황 안에서 스스로 변해가는 점들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오래된 건물이 감당할 수 있는 물리적 무게의 한계로 인해 초청된 작가들은 주어진 물리적 조건에 기대어 가볍고 비물질적 미디어를 사용했고 작업들은 정교하고 풍부하고 지적인 접근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작가들은 무게의 제한을 갖고 있는 건축물의 문제를 비디오와 인터넷 같은 하이 테크 미디어 또는 소리와 빛과 같은 로우 테크 미디어 또는 심지어 소소한 일상 물건들을 사용하여 해결했다. 현실을 통해 또는 환영에 의해서든 간에 작가들은 상반되는 의견과 분석으로 그리고 전통적인 규약들을 규정할 수 없는 느낌으로 초월해 버리든가 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관심의 메시지를 소통시키려고 했다. 눈에 금방 띄는 팝 이미지를 작품에 끌어들이는 방식은 지역 주민 공동체의 주목을 끄는데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마이클 M.H 린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시키는 침대보 무늬를 활용하여 프레스코로 작업한다. 파리에서 개관한 팔레드 도쿄 전시에서는 넓은 바닥에 대규모의 화려한 꽃 그림을 그려넣어 주목받기도 했다. 평범하고 흔한 천의 무늬가 예기치 못한 미술 작품이 되었고 민속 미술과 고급 미술의 구분, 커뮤니티와 미술관의 경계 그리고 벽과 캔바스의 경계는 와해되고 만다. 지역 공동체가 이 미술관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노력은 메이 링 창의 신뢰에 근거한 수집품작품으로 나타난다. 미술관 인근 주민들의 참여를 유발시키는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작가는 주민들을 방문하여 미술관 개관의 취지를 소개하고 전시의 중요성을 알렸다. 그리고 작업에 서 주민들 각자가 자신에게 소중하다 여기는 것들을 사진 찍고 미술관에 전시했다. 그의 작업은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치의 차이점을 담고 있으며 물질적이든 형이상학적이든 무엇이 소중한가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마빈 민토의 어디에나 있는 아이디어 역시 관객과의 공동 작업이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관객들의 머리에서 밀이 자라나는 것처럼 합성한 것이다. 활동적 성분으로서의 유기적인 삶과 그로부터 지속적으로 발육하고 퍼져나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상징한다.

지역 공동체를 향한 미술 안으로 미술관이 얼마나 개입해 들어가 관심과 에너지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변형시켜갈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일은 미술관이 지역성을 중요하게 다루어도 지역미술관으로 제한되는 수준을 넘어가는 일이다. 국제적 관심을 끌어들이는 지역성의 경계들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이슈화할 줄 아는 살아있는 미술관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문제이다. 인터넷과 매스 미디어가 소통을 위한 거대한 가능성을 창조했지만 우리는 신체적 소통의 오리지널한 촉감을 잃어가고 있으며 기술 과학의 발전 속도로 인해 아날로그 정신의 급격한 쇠퇴를 맞고 있다. 친밀한 상호작용과 지리적 역사적 맥락을 통한 깊숙한 교환을 발전시켜가는 비전을 일관성있게 구축해가는 미술관이 필요한 시대이다.

- Wednesday, December 25, 2002 6:4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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