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회화의 새로운 출구

이영철

회화의 종말이라는 연출?

회화의 종말에 대한 언명은 끝이 없다. 제리코, 앵그르, 고야의 시대에도 헤겔은 좋은 시절은 다갔다고 말하며, 예술의 죽음을 애도했고, 보들레르는 마네에 대해 예술을 죽인 화가라고 했다. 사진 발명 후 들라로슈는 회화는 죽었다고 공언했고, 1980년대에 오게되면 이브 알랭 부와는 회화에 대한 종말론적 발언의 유행에 대해 개탄하며, 자신의 죽음을 연출하며 긴장해온 현대회화의 궤적을 존중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미술계의 상황을 살피자면, 생전에 굶주렸던 반 고호의 회화 한점이 수백억에 거래되고 프랑스에는 공인된 박물관 수만 1천 여개가 된다. 그러니 회화의 재난이 아니라 도리어 기적 같은 부흥을 누리면서 죽음을 신격화하는 역설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시장이다. 돈은 죽은 것이 살아서 돌고 도는 것이라는 헤겔의 말처럼, 회화의 지속적인 부활은 돈과 물려 있다. 회화는 돈을 돌게 하므로 돈은 회화를 지켜준다. 또한 회화에 주기적으로 가치를 매기며 그 명맥을 받쳐주는 제도적 동반자들이 미술관, 매체(비평), 그리고 국제 비엔날레/아트 페어가 버티고 있다. 회화는 죽을 수 없는 운명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다시 회화의 문제인가? 회화의 내면의 역사 안에 원인이 있다. 적어도 명확해진 것은 회화는 더이상 구상, 추상, 초상, 풍경 등의 전통적인 카테고리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며, 캔바스 위의 물감이라는 매체에 대한 철학적 정의에 묶여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것들은 이제 회화의 현대적 존재론의 가족 계보를 떠올릴 따름이다. 이제 회화는 세계로 통하는 창이라는 과거의 역할을 우회하거나 창문을 활짝 열어 외부로부터 이질적인 것들이 들어 오고 회화가 외부세계와 적극적으로 만나서 스스로 다양체가 되는 길을 간다. 그동안 회화는 곧 이미지, 혹은 물성이라는 일반적 전제로 인해 회화의 많은 가능성이 차단되었고 시각적 인문주의의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그리고 회화는 미술에서의 소통과 생산 과정들의 엄청난 가속화 현상으로부터 시간성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게 된다. 회화에 내재해 있고 회화에 고유한 또다른 시간성을 발견해야 할 필요성이 크게 제기된 것이다. 회화가 기반으로 삼아온 공간이라는 것도 시각이 청각 및 촉각과 긴밀히 연관되어 가는 현 상황에서는 더이상 공간이 시각적 용기(容器)가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리정치적 미술 교류의 활성화는 국제적인 미술상황을 넓혀주었고 유럽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의 회화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게 되었다.


모노크롬 회화와 그 이후

백색 모노크롬은 세계 여러 나라(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일본, 한국, 브라질, 베네주엘라 등 )에서 10여년 이상, 길게는 30년 명맥을 유지해온 특이한 패러다임으로서 각 나라의 현대미술의 역사에 중심이라는 관념을 유포시켰다. 재료, 형태, 기법 등에 있어 가장 유사한 특성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지역적 보편주의를 앞세우며 독자성(singularity)을 강조했다. 이것의 논의를 위해서는 별도의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1920년대에 로드첸코가 모노크롬 작업을 했고, 전후에 엄청나게 많은 작가들이 색채가 희박한 회화의 영도(零度)를 실험하였다. 미국에서 미니멀 아트가 대두하기 전에 만쪼니, 이브 클라인, 스트리체민스키, 엘즈워즈 켈리, 재스퍼 존스, 부리, 멘데스, 카스텔라니, 콜롬보, 드 브리스, 우에커, 모렐레, 밀톤 다코스타, 오팔카 등이 모노크롬을 그렸다. 이브 클라인은 국제적인 클라인 블루의 저자가 되었고 일찍이 만쪼니는 '나의 목적은 전적으로 '화면의 성질에 어색한 어떤 현상이나 회화적 요소도 첨가하지 않는 전적으로 무색의 중성적인 백색 표면을 만드는 일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1920년대에 발흥했던 형태(gestalt) 지각론이 철학, 미학의 문맥으로 들어오면서 수잔 랭거,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으로 발전했는데, 무엇이 언어의 탄생을 낳고 무엇이 언어에 가능성과 필연성을 가져다 주는가를 연구했다. 백색 모노크롬의 경우 아주 미세한 차이 조차 회화가 되고 미술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메를로 퐁티가 말한 '중요한 것은 신체의 표현적 작동이다. 아주 사소한 지각으로 시작된 것도 충분히 회화가 되고 예술이 된다.'는 말이 회화적 언명이 되었을 때, 그 나머지는 각자 채우는 것이 된다. 인상파, 야수파의 모방, 반복과 마찬가지로 모노크롬이라는 전위적 패러다임 역시 어디에서나 그 자체의 역사적, 진화적 동학을 일으켰고, 그것은 큰 시차가 없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린버그는 회화의 자기몰입, 순수성 혹은 영도에의 집착이 현대 회화를 미술의 내면적 역사로 만들었다. 사회적 정치적 사안들로부터 이탈하여 순수한 형식 언어에 도달하려는 가차없는 정화(淨化)의 과정. 절대적 자기동일성 추구. 역사적, 진화적 발전이라는 패러다임은 새 것과 옛 것 간의 변증법적 투쟁 및 쇄신이 매단계마다 강해져가는 자의식이라는 헤겔식 관념론의 표명이었다. 결국 그린버그의 계율은 현대 회화를 부정 신학으로 몰아 갔다. 한 지역이 세계적이 되고 또 심판관 노릇을 하고 있는 허세와 오만함. 로잘린 크라우스는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은 그것이 자신이 보여지는 공간인 전시장의 흰벽을 인정하고 내면화한 결과라고 본다. 즉 벽 공간을 모방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그것이 20세기였던가?

1990년대에는 회화의 영도(零度)라는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모노크롬을 역사에 대한 비판적 기록으로 활용한 작업이 많았다. 글렌 리곤의 검정 모노크롬은 종교전쟁, 인종분규, 내전, 파시즘 사회 자체가 아이들을 어떻게 삼켜버리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검정 모노크롬 중의 한 작품은 아이러니칼하게 백색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바이런 킴은 모노크롬 연작을 통해 냉소적으로 색채인종학적 관계를 탐색 해 왔고 작품을 상업화랑용 쇼케이스처럼 보여준다. 나이젤 롤페는 넬슨 만델라에 대한 지지 표명을 위해 [얼굴 위의 손]을 제작했다. 프로젝션이나 작은 모니터로 보여지는 이 작품은 검정 페인트를 칠한 손이 느닷없이 미술가의 얼굴을 반복해서 때려 고통에 찬 모습을 보여준다. 말레비치의 비대상 회화를 역전시키는 그의 작업은 이미지에 의미를 부가한 것이다. 나이젤은 음성 텍스트로서 억압, 검열, 고문의 정치적 폭력을 고발하며 개인의 정체성은 물리적 조건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또한 칠도 모랄레스의 회화는 모노크롬이 본질에의 환원이라는 사실에 맞서 자본의 책략,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상징 가치와 실제 가치의 만남을 은유한다. 90년대는 비서구권 현대 화가들에 의한 지배 언어의 전복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중국 현대 화가들의 대거 등장, 무라카미 다카시, 히로시 수기토, 요시토모 나라 같은 작가들은 그들의 전통과 서구 모더니즘의 식민지적 유산 모두를 전복시킴으로서 전시대가 어떻게 기술적 자원과 이데올로기의 프로토 타입으로서 문화적 과거를 왜곡하여 미학적 정체성을 날조했는가를 드러내려고 한다.


3인의 화가들

1960년대 개념주의와 모노크롬의 위세 속에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던 3명의 작가가 있다. 그 첫 번째가 브라질 화가이자 철학자인 엘리오 오이티카(80년작고)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는 회화에 대한 정의의 문제와 공간 내에서의 물리적인 표명을 확장시켰다. 회화를 지지하는 표면을 벽에서 떼어내 일그러트리고 뭉그러뜨림으로써 그가 'non-object'라고 이름지은 조각과 회화의 과격한 이종 교배를 통해 회화에 대한 개념notion을 진전시켰다. 이 행위는 백색 큐브에 속박된 조건에 시간 차원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다른 한편, 그는 안료 자체가 부어져있는 용기들을 제시하는 행위를 통해 회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회화의 영도라는 사고를 쫒아 그림그리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개념을 확장시키는 모서리에서 회화의 급진적인 재정의를 할 수 있었고 색채, 구조, 공간, 시간 차원을 융합시켜 출구를 발견했다. 그의 시도는 텍스트의 시각화에 빠져있던 개념주의, 회화의 영도에 빠져있던 미니멀 아트의 장애물을 넘어 회화가 설치 작업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둘째는 미국 작가 폴 텍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회화의 존재론에 대해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는 신문지와 캔바스에 그림을 그려 추상표현주의의 영웅적 매너리즘을 피하고 의도적으로 소수자의 태도를 취하였다. 친밀한 사이즈의 '그림 빛'이란 작품은 벽에 낮게 걸리고 금박을 한 대나무 액자들에 전구가 달려 있다. 모더니즘 회화와 미술관의 관행적인 전시 방식을 피해 회화를 바라보는 것의 의미를 사고하게 만든다. 의도적으로 나이브한 방식, 방언적이고 반영웅적 어휘를 구사함으로써 낭만주의적 애상과 함께 유머러스한 불손함을 드러낸다. 종교 도상학, 만화 이미지, 자스퍼 존스의 숫자 시리즈, 추상미술의 조롱, 암벽화의 상형문자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역사를 차용한다. 그는 개념주의가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 시각적 아름다움과 관람의 즐거움을 강조하면서 '회화는 신학, 심리학, 철학, 예술에 관한 것이며 그 모든 것에 관한 유머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벨기에 작가 마르셀 브루테어즈는 슬라이드 설치 작업에서 회화, 사진, 영화 사이의 모호한 연관성을 탐색한다. 바닷가의 낚시배를 그린 키치 그림을 꼼꼼히 기록하고 부분들을 해부한 80장의 슬라이드에서 전통 미술의 특성의 독해-역사적 분석을 패로디했다. 작가가 파리의 골동품 상에서 구입한 대략 1900년대의 작자 미상의 바다 그림은 이 슬라이드 설치 뿐 아니라 다른 세가지 작업의 주제가 되었다. 2개의 16미리 영화 작품과 한 개의 여행 안내서 작품이다. 각 작품에서 브루테어즈는 회화를 개념적으로 해체하고 세기의 전환점에서 작업을 했던 일요 화가에게 경의로움을 표한다. 동시에 회화가 사진, 영화의 위력에 맞서 세계의 시간과 움직임 간의 긴장을 펼쳐보인다. 아마츄어의 그림을 마치 그것이 대가의 작품이라도 되는 듯이 사진기술적으로 분석하여 페인팅에 관한 물음을 개념적으로 접근했다.


1990년대의 회화 작업들

재현 회화의 전통 안에서 사진에 있는 여고생, 노인들을 변형하여 그려온 존 커린은 보티첼리의 회화로부터 인물의 포즈를 빌려오고, 명화 속에 나오는 전통적인 로코코 양식으로 하늘을 배경으로 만화적 리얼리즘에 충실한 그림을 그린다. 상업 화랑에서 인기를 누려온 그의 실물 회화 작품을 보면, 대단히 분석적인 관찰과 기계적 표현으로 독특한 감응, 센티멘탈리즘, 인간의 어리석음과 연민, 삶의 무상성 같은 느낌을 준다. 주제에 대한 냉소적 심리 묘사 보다 인간의 비루한 구석을 담담하게 묘파하는 능력이 있다. 엘리자베스 페이튼은 대중 문화적 속성과 고전적 초상을 결합하여 드로잉, 수채화, 유화를 그려오고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시집과 대중음악 잡지의 무게가 그녀의 그림에서는 동등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그녀는 팝가수, 친구, 친지, 데이빗 호크니, 나폴레옹, 루드비히 2세, 영국 황실 가족들 누구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그린다. 일단 그려진 인물들은 공적인 사람이라 해도 그의 성격과 상관없이 친밀감을 유발시키거나 정서적으로 약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컬트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그녀의 그림들에 대해 '나는 언제나 나를 그린다'라고 말한다. 영국 작가 트레이스 에민은 자신의 생활 이야기를 갖고 작업하는데, 13세에 강간을 당했던 첫 성경험에서 시작하여 1963년부터 95년까지 자신이 함께 잠잤던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텐트 작업, 그리고 [내가 만든 마지막 회화의 액막이exorcism](1997/98)는 그녀의 스튜디오를 갤러리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스케치, 회화, 텍스트, 일상물품, 사진들, 관광품들, 카세트 레코더, 옷걸이 침대와 속옷들. 오프닝 날 그녀는 벌거벗은 채 그림을 그리며 액막이 주술을 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총체적인 설치 회화들

제시카 스톨홀더는 미국의 서부 출신으로 다양한 색면 추상 회화들이 3차원 공간으로 튀쳐나와 바닥, 천정, 벽, 모서리에 배치되고 이질적인 사물들과 혼합되어 서로 조응하고 뒤섞이는 상황을 통해 전체적인 하나가 되고, 표현질로 빛나는 색채를 발산한다. 눈과 신체 감각을 즐겁게 하는 총체적 설치 회화 작업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회화의 극장이다. 또한 캘리포니아 출신의 작가 제임슨 로데스는 미서부의 빛나는 태양 광선과 광활한 대지를 배경으로 모든 것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사물들처럼, 대량 제조되어 쓰레기로 버려지는 일상 물품들을 공간에 가득 채움으로써 운동성이 강한 거대한 추상적 기계를 만들어 낸다.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추상적 기계의 각각의 구체적 배치물은 하나의 다양체이며 하나의 생성, 하나의 절편, 하나의 진동이다. 또한 추상적 기계는 전체의 절단면이다.'([천개의 고원]) 독일 태생의 작가 토비아스 레버거는 스톡홀더와 로데스와 다른 방식으로 2차원의 레이아웃을 3차원의 표면들로 번역했다. 그의 사물들은 1970년대 양식의 가구인 동시에 자율적인 조각인 동시에 거대한 입체 회화이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협동, 공간 상황에 맞는 배치, 미술/패션/디자인의 통합으로 상투적인 코드와 대중들의 기대를 즐기면서 유머러스하게 변화를 형성해간다. 1997년 베를린에 있는 한 갤러리를 위해 광고를 제작한 후 그는 광고를 뜨개질하는 사람에게 맡겨 아트 페어 기간에 전시 스태프들이 그 옷을 입게 했다. 이어 그 화랑은 광고를 브랑쿠시 전시를 위한 모델로서 이용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미술을 다르게 본다. 그래서 나는 오직 암시만 할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영국 작가 리엄 길릭은 내용과 표현에 있어 언제나 미완성을 표방하며 이야기가 다소 황당하고 난해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색채 벽 스크린은 디자이너의 가구처럼 투명하고 깨끗하다. 1810년부터 1997년이라는 긴 시간적 간격 안에 베트남 전쟁기의 국방장관 맥나마라로부터 에라스무스 다윈(찰스 다윈의 형제)을 끌어들여 허구적인 스토리를 구성하면서 그는 시적이고 정보적이고 미학적 형식을 갖춘 미완의 연극을 구상한다.


회화적 사진 작업과 점 회화

독일 작가 안드레아 거스키는 18세기말에 구상된 회화 기법인 파노라마를 사진 기술에 적절하게 응용하여 거대한 회화적 타블로 작품을 만든다. 백화점, 공원, 휴양지, 공장, 도시 풍경 들이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거대한 앵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색채가 살아 있다. 사진은 미니멀 아트의 연작 처럼 보이기도 하고 게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기억된 그림들의 미학적 구성과 작가 자신이 선택한 주제의 구체성 사이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 든다. 전능한 관찰을 목표로 한 최초의 기술적 미디어인 파노라마적 통각은 푸코의 팝옵티콘 개념으로 인해 현대 문명에 음산한 뉘앙스를 주기도 하는데, 이 총체화된 이미지의 극장 안에서 인간은 관광객이면서 동시에 수족관의 물고기가 되고 만다. 거스키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의식의 공통 언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무의식 조차 언어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이미 드러나 있다. 영국작가 데미언 허스트는 작가가 아니라 큐레이터로서 1980년대 말에 주목을 받았다. 상업 뮤직 비디오를 만들고, 레스토랑을 열고, 팝송을 불렀던 그에게 있어 회화와 조각의 주제는 생활, 질병과 죽음 사이를 맴돈다. 동물을 절단하여 냉동하는 끔찍스러워 보이는 일련의 설치 작업들로 인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점회화(spot painting)를 제작했는데, 점은 형태적으로만 점일 뿐 그 속성은 점이 아니다. 그 작업들은 설치 작업과 마찬가지로 환각제와 관련이 깊은데, 형태는 무너져서 시간과 속도를 해방시켜주고 있다. 그는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원판 위에 재료들을 섞어 돌려 소용돌이의 흔적이 새겨진 회화 레코드 판을 만들어 [치즈, 네 개의 치즈, 맵다, 피렌체, 미켈란젤로, 베니스 유리, 파플로나 회화] 등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의 회화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음향적 공간으로서의 촉지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플랑카드, 게시물를 이용해 작업하는 영국의 린 뢰벤슈타인의 회화는 메시지의 내용, 그리기와 쓰기가 그 자체로 하나가 된 현대판 서예다. 그는 반세계화, 교과서 왜곡, 신자유주의 반대, 교토의정서, 부패정권 고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다양한 이슈들을 다룬 플랭카드를 모아서 현실 공간 안에 재배치함으로써 저항영역을 표시한다. 싱가포르의 작가 그룹 플라스틱 키네틱 웜즈는 다민족, 다국가 사회에 대한 관심의 표명으로 도상적(iconic) 디자인을 한 다색 깃발을 재봉사들이 직접 제작하여 공중에 늘어놓는다. 이슬람과 서구, 아시아 사이의 문화의 상호 침투와 융합의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러시아의 AES 그룹은 회화를 건축, 그래픽 디자인의 요소와 결합하고 완성된 내부 공간을 TV 스튜디오로 활용하기도 한다.


비디오 이후의 회화

현대 회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사라져 버렸고, 보이는 재생 도구들 마저 무력해져 버렸다. 맥루한의 지적처럼 문자 발명에 따른 시각적 현상은 의심스런 것으로 판명되었다. 개념미술은 미술에 비가시성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문자(텍스트)를 시각화한 것에 불과했다. 아마 그것은 이슬람 문화의 서구적 변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적인 것을 더욱 믿을 수 없게 하는 것이 비디오이다. 비디오 문화에서 은폐는 허위 혹은 무의식의 증거가 되며 또한 관찰할 수 없는 것에 혐의가 걸린다. 가시화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디오는 일루전을 가장 완벽하게 추방해버렸다. 전달 매체가 비물질화할수록 생활 속에서 비물질적인 것들을 위한 공간이 줄어든다. 모든 것이 보일 때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빌 비올라, 더글라스 고든은 연극성을 배제한 채 아주 천천히 이미지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차이에 집중하도록 한다. 그것은 가장 정적인 비디오 회화이다. 진실은 레비 스트로스가 말하듯이 그것이 숨겨두는 것에 대한 배려에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비디오는 언제든 회화를 필요로 한다.


촉각적 가치와 화가의 손

문명의 쇠퇴기에는 원시적 본능의 억압에 대한 보상적 회귀를 고무시킨다. 재현 회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콜라주의 혁명에 이어 오토마티즘, 드리핑, 바디 아트, 그래피티, 표현주의적 제스처에 집착했다. 회화가 모든 사회적, 문화적 기호로부터 신체적 감각에 기초한 지표(index)에 대한 절망적 탐색으로 거슬러 가기도 하는 것이다. 비물질적으로 추상화되어 가는 전자 세계 속에서 지표의 신체적 쾌락은 거의 후각, 촉각, 감각적 순수함의 상류 지대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우리 신체에 감각적 평형을 되찾아준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보충인가? 신체적 보충인가? 전자 매체 시대에 손은 여전히 미술가들에게 중요한가? 세계와 깊숙이 관계를 맺게하는 것은 촉각적 직감이다. 손은 창조의 도구가 아니라 무엇보다 인식의 기관이다. 미술가는 손을 통해 원초적 경험을 항상 다시 시작하는 자이다. 포시옹은 '미술은 인간이 신에게 말하는 어휘가 아니라 천지창조의 끊임없는 부활'이라고 했다. 훌륭한 미술가들은 어린 시절의 특권인 호기심을 그 시기의 한계를 지나서 훨씬 나중까지 연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장 예민한 신체인 손이다. 우린 손으로 만들거나 촉지하면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촉각적 가치란 요철과 부피의 일루전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 하지 않으며 그것은 모든 창조의 기원이다. 시각 언어는 바로 촉각 언어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프랭크 스텔라는 미니멀 아트의 시각적 인문주의를 논증하는 화가로서 회화사를 해체하는 관념의 과잉 상태에 빠져버렸다.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여백이 없어 답답한 것이 아니라 촉각성을 시각성에 굴복시키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단색조이지만 기묘한 표정과 움직임의 촉각성을 지닌 아니시 카푸아의 오브제는 특정 장소에 놓임으로써 주변 공간에 울림을 가진 여백을 형성하는 기품이 있다.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프란츠 웨스트의 단색 오브제는 적극적으로 관객을 사용자로 초청함으로써 장소와 작품과 관객이 하나가 되는 상황주의 맥락에 다가간다. 이러한 감각은 머릿 속에 완성되어 있는 이데idee의 재현이나 조직적인 계획에서 얼마간 벗어나 있다. 어떤 것을 만들 것인지 미리 정한다고 하지만 제작 현장에서 여러 외부성이 작용함에 적절히 반응하여 최선의 경로를 택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미술가의 현장 감각은 관계성의 생물이라 할 만하다.


회화=추상의 가능성

일찍이 몬드리안은 뉴욕을 방문하고 새로운 문명의 풍경에 극도의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자신의 회화에서 수직과 수평이 각기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그러나 몬드리안의 그림이 흥미로운 이유는 맨하탄의 인위성 풍경이 그의 격자 구성의 기원이라서가 아니다. 손으로 매번 직접 그린 좌표(문)로부터 사선으로, 화면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시간의 운동 때문이다. 데미언 허스트의 점 회화가 점을 그린 것이 아니듯, 몬드리안은 단순히 선분을 그린 것이 아니라 빛과 색의 몸체(corps)를 빚어 그것으로부터 운동과 시간을 발생시킨 것이다. 게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작품에서는 신체와 외부의 관계 안에서 다져지고 응축된 표현적 질료들이 경이로운 이탈 과정을 그리며 운동과 시간을 감동적으로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설정된 힘이 아니라 탈설정된 코스모스의 되찾은 힘, 해방된 힘이다.

추상은 신체 속에 그리고 예측을 허락하지 않은 질서-혼돈 과정에 속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모든 회화, 모든 미술은 근저에서 추상이다. 따라서 정신이 바로 뇌의 정보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는 가설 같은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의 뇌가 연관 장치라고 한다면 정신은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니라 통합되지 않고 무형식적인 복수적(複數的) 세계의 복판에 던져져 있는 것이고 두뇌의 논리는 컴퓨터의 세계가 아니라 항상 형식과 무형식, 질서와 혼돈,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작동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두뇌는 신체의 연장(延長)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의심, '언어체와 회화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혹시 그 관계가 회화적인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은 이미 타당한 답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회화는 자신의 독특한 복수적(複數的) 묘사이자 스스로 말을 해가는 무한한 언어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극동아시아의 동양화나 서예 속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드럽고 유연한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쓰는 전통적 동양화(특히 서예의 경우에서 더욱 명확하다)가 특히 중요해질 수 있다. 서예는 메시지의 전달 혹은 심리학적 표현성 이전에 힘주어 붓을 누르고 획을 긋고 조종되는 손 안에서 고동치는 몸(쾌감을 수반하는 신체)에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여백의 예술]에서 이우환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미 캔버스가 내가 경영하는 식민지가 아니듯이 사람도 자연도 붓도 물감도 나의 이미지나 도구나 노예가 아니라 사이좋은 친구인 한편 미지수의 남이다.' 한편 오스트리아의 문학가 로버트 무질은 이미 1936년에 '만약 회화가 여전히 성립한다면, 화가가 여전히 성립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기대해온 곳에서 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66년이 지난 지금, 무질의 말은 이제까지 살펴본 많은 예를 통해 보듯이 타당한 진술로 여겨진다. 회화에 대한 어떤 전시, 어떤 비평도 회화의 곤경에 대한 질문에 명확하고 최종적인 답을 줄 것이라 희망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최상의 바램은 우리가 답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질문들을 유발하는 것이고 그 질문이 새로운 회화를 만들어간다. 예기치 않은 영역에서 전혀 회화라고 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회화들이 생겨나는 것이 우리가 처한 새로운 가능성이자 또한 난제인 것이다.

- Tuesday, February 18, 2003 9:27 AM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