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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을 위한 새로운 장소, 시스템의 혁명- 파리 팔레 드 도쿄의 새 출발

이영철


팔레 드 도쿄는 옥상에서 센 강과 에펠 탑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내부를 완전히 바꿔서 새 출발하는 이 멋진 장소는 현대 시각 문화, 예술의 다양한 변화 양상을 즉각적으로 담아낼 대규모 실험실이다. 이런 실험실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현재의 시각문화, 예술의 양상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다가 이미 낡아버린 채로 걸러내려는 권위적인 미술관들, 소장은 하지 않고 전시에만 몰두해도 여전히 타분야와의 접속이 소극적인 쿤스트 할레들 그리고 국제비엔날레 같이 대규모 이벤트만 존재하는 현행 미술제도에는 분명 큰 구멍이 있다. 한 예로서 프랑스적 감수성이 물씬 배어있는 모더니즘 미술의 전시 공간이자 가장 대표적인 현대미술 아카이브인 퐁피두 센터를 보자. 현대미술의 기념비인 이 관광명소에서 우리는 지난 백여년 서유럽/미국 현대미술의 궤적이 만들어낸 흰벽, 그 벽에 새겨진 주름과 표정 그리고 검은 구멍(주체화의 축: 날 똑바로 봐!)을 대번에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서구의 얼굴은 망가지고 혼란스럽게 지워지고 있다. 이는 개탄할 필요가 없는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1990년대 이후 문화적 상황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징후는 현실이 되었고, 이제 그 현실은 모든 가치를 혼란에 빠뜨렸다. 오늘의 미술은 세계 곳곳에서 사회의 내파imposion 현상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견고한 것들은 공중에서 분열하고 얼굴없는 전쟁은 시작되었다. 팔레 드 도쿄는 기존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이고 그 내용을 채워가는 새로운 방식의 개발, 대중들과 만나는 방식, 그리고 새로운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장을 펼쳐주는 일이다.


팔레 드 도쿄는 오늘날 예술. 문화의 세계화 현상을 분석하여 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결실이다. 안목, 판단, 의지, 전략의 결집은 서유럽이나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좀체 보기 어렵다. 제 3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구식 현대 미술 제도자체가 취약하다. 그런데 한국은 현대 미술의 측면에서 보자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활기차고 다양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지리적 거리, 스스로 쌓아올린 문화 장벽으로 인해 판단착오가 많다는 점, 미술 전문인들의 프로정신의 부재 그리고 문화 기구 정부 관리들의 완벽한 무능이 문제일 것이다. 팔레 드 도쿄는 단순히 미술 전시 공간이 아니다. 눈여겨 볼 것은 운영 방식의 새로운 혁신적 시도이다. 그것은 지역과 세계, 미술과 타 분야, 예술과 대중을 다면적으로 결합하면서 왕성하게 돌아가는 예술기계, 전쟁기계, 혁명기계를 지향한다. 밤 12시까지 이 공간은 오픈하며 매주 새로운 정보를 인터넷으로 전세계에 방사한다. 팔레 드 도쿄의 조직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협회Association다. 이 협회의 의장직은 누보 레알리즘 운동을 만들어낸 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맡고 있으며 상임위원들 중에는 프랑스 미술을 진보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해온 현대작가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모여있다. 피에르 레스타니는 역사적인 팔레 드 도쿄 건물이 현대미술을 위한 장소 site for contemporary arts로 전환하게 된 것에 대해 '오늘날의 미술계에서 드문 도전 중의 하나'라고 강조하며 '비록 국가에 의해 주도된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이 협회는 프로그램을 전개하는 과정, 재정의 운영, 개념적 시각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받았다'고 말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번 프로젝트가 보수적이고 고루해지기 쉬운 문화의 행정구조 프레임 속에 새로운 정신적 기치를 불어넣는 심기일전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런 과감한 포석은 전지구적 차원의 문화적 변동기가 몰고온 위기의식의 발로인 동시에 새로운 비전의 효과적인 창출을 목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프레 오픈날 작가, 예술 분야 관련자, 문화관리들 약 1500명 정도가 이 새로운 전시장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제롬 상스가 음악 DJ를 하며 밤이 깊도록 대화, 음악과 춤을 즐기는 가졌다. 이 프로젝트 진행을 총괄 지휘하는 것은 레스타니가 아니라 두명의 공동 디렉터인 니콜라 부리오와 제롬 상스이다. 이들은 각자가 이미 여럿이므로 사실상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위대한grand 문화적, 정치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이들은 떠받들어야 할 보스도 아니고 꺽어눌러야 할 경쟁 상대도 아니라 다리를 놓는 연결자, 24시간 지식인 노동자인 셈이다. 그들은 프랑스 미술계의 분파들에 맞서 싸우면서 3년 전부터 공동으로 일을 하다 프랑스 문화성이 주도하는 팔레 드 도쿄 프로젝트를 위한 디렉터쉽에 선발되었다. 이들이 선택된 배경은 프랑스와 국제적 예술 생산을 위한 대화의 정거장platform이라는 프로젝트를 구축하여 문화적 자원, 교환과 교류, 열려진 미학적 토론을 위한 공간을 끌어나갈 에너지와 기획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밤낮 없이 대중들에게 열려진 문화공간의 필요성, 쉴새없이 새로운 프로그램의 연속을 통해 프랑스와 세계의 미술 문화를 순환시키는 방법을 개발해내는 일이야말로 프랑스 미술계를 일신하는 새로운 힘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력을 살펴 보면, 니콜라 부리오(37세)는 현대 문화, 예술론에 정통한 평론가이자 큐레이터로 92년 <미술 도큐멘타>라는 저널을 창간했고 문학저널 의 공동입안자다. 자신의 비평들을 모은 저서 <상호관계의 미학>을 출간하여 유럽 미술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90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큐레이터, 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아페르토전 기획, 96년 <트래픽> 전시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제롬 상스(42세)는 96년부터 미국 위스컨신주 밀워키의 시각예술학교의 큐레이터로 일해왔고, 스티브 매퀸, 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캔덜 기어스, 술라시 쿠솔웡, 파스칼 마틴 타이유, 김수자 등의 개인전,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덴마아크관 전시(99), 타이페이 비엔날레(2000), 로댕미술관과 동경 오페라 시티 갤러리에서의 <나의 집은 너의 것, 너의 집은 나의 것>(01)전시를 후한루와 공동 큐레이팅했다. 니콜라와 제롬은 2년 반의 팔레 드 도쿄 창립 준비 기간에 이어 3년간 계약을 더 연장하여 팔레 드 도쿄의 모든 기반을 다지게 된다. 프랑스 미술계가 몹시 갈구하던 갱신의 분위기를 끌어내고 새로움을 창안해내기 위해서는 세계미술의 흐름을 읽어내고 다양한 차이와 이질화에 직면하여 가장 순발력과 유연성 있는 전문가의 선택이 긴요했다. 이들은 4명의 큐레이터를 선발했는데, 아키코 미키와 마크 산체스가 공동으로 수석큐레이터이고 이들을 보조하는 큐레이터가 두명 배치되어 있다. 미술관 조직 보다 현저하게 적은 인력인 20명으로 대규모 공간과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한다. 근대적 시스템의 발전 속도 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훨씬 넓게 외부로 의 영향을 확장해서 현재의 미술 제도 안에 충격과 쇄신의 에너지를 발생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규모 뿐 아니라 지적이고 세련된 감각은 팔레 드 도쿄의 이미지를 통일시킨 웹디자이너의 솜씨에서도 잘 나타난다. 카차 보넨팡(Katya Bonnenfant)은 요란스런 그래픽 디자인이 아니라 바이러스처럼 연쇄 반응하여 움직이는 작은 글자들과 이미지 디자인을 통해 팔레드 도쿄의 이상과 아이덴티티를 매우 새련되게 부각시키고 있다. 팔데드 도쿄가 목표로 삼는 것을 레스타니의 입을 빌어 말해보면, 팔레 드 도쿄 공간은 새로운 세대의 손을 통해 이미지, 미술, 사회의 운명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하나의 방향은 거대한 전자 기계의 무차별적인 힘에 맞서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에서 1950년대 말에 이브 클라인과 레스타니 자신이 처음 시도했고, 68년 5월에 재차 구현하려고 했던 새로운 인본주의를 향한 움직임을 끌어내는 일이다. 팔레 드 도쿄는 68년 혁명 당시에 대중들에게 무용지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폐기되기도 했었다. 이제 다시 팔레 드 도쿄는 희망, 꿈 그리고 좀더 나은 삶을 향한 갈망을 안고 대중들에게 다시 돌아온 것이다.


당초 이 설립 프로젝트는 프랑스 미술계가 볼탕스키 이후 젊고 유능한 현대 예술가를 배출해내지 못했다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뉴욕, 런던, 베를린에 상대적인 열세)에 귀기울이면서 과감한 포석으로 두가지 프로젝트가 1999년 프랑스 문화성에서 입안되었다. 한가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각 예술, 시각 문화의 최전선을 구성해낼 수 있는 젊고 싱싱한 문화 센터의 구축, 그리고 오랫동안 장 위베르 마텡이 관장으로 앉아있던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미술관을 3세계의 민속 미술품의 창고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 재활성화하는 기획이었다. 이러한 기획은 전지구적 문화의 다양한 부족들을 위한 베이스 캠프를 프랑스에 치자는 생각을 보여준다. 문화의 바티칸이 아니라 유목 시대에 걸맞는 전지구 문화의 베이스 캠프. 그 캠프는 너무도 마땅히 주민들의 삶과 밀착해야 하며 대두하는 예술, 문화의 실험실이 되야 한다. 이 실험실은 상업주의나 관습들에 순응하지 않으며, 오늘의 미술에 대해 아방가르드의 단일한 비전을 주장하지 않으며, 무리한 모험을 감행하지 않고서 우리 시대의 창조적인 활동들을 어떻게 번역해낼 것인가의 물음에 관심을 기울인다. 모든 형태의 표현들, 멀티플하고 보완적인 목소리들을 감싸는 미술 이벤트들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하나의 전면적인 프로젝트를 계속 릴레이하기 위해서는 좀더 큼직한 장소가 필요했고, 그것은 장식으로서의 전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래밍으로 꽉 차고 활성화될 수 있게 디자인되어야 했다. 이 경우의 건축 디자인은 무엇보다 창조, 기능, 소탈함이 미덕이 된다. 이는 무엇보다 오늘의 예술가들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충실하게 응답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팔레 드 도쿄 내부 디자인은 공모에서 당선한 건축가 앤 로카튼과 장 필립 바셀이 맡아 했다. 이들의 자랑은 오늘날 흔히 건축가들이 자신의 입지를 먼저 생각해 시각예술의 특성과 변화를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의 기념비적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욕심을 스스로 비운 일이다. 건물 안의 벽들은 허물어져 시야는 확 터졌고 벽면은 아주 거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천정이 높고 낡고 거친 공장 내부로 보인다. 파리 시내 한복판에 세계 문화, 예술가들을 위한 공장factory이라니. 신나는 일이다. 이제 맥박은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쉬지 않고 박동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명상적 모더니스트에게나 어울릴 일시 정지pause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탈주의 방식, 그리고 계주relay하는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니콜라와 제롬은 프로그램 선언program-manifesto을 채택했다. 이들은 몇가지 간결한 원리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유연성, (2)즉각적 반응, (3)전시 공간에 대한 제약 보다는 프로젝트에 초점, (4) 예술가들과의 지속적인 연결, (5)다른 분야와의 갱신된 결합, (6)전지구화에 대한 이해, (7) 궁극적으로 결코 한번도 쉬지 않는 생성을 단절시키지 않고 그 활동성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단지 전시주의로 드러내온 방식을 극복한다. 이런 원리를 좀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동시다발적 전시 방식의 채택, 개인전 그룹전을 가리지 않으며 두 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서로 교차하여 서로를 비옥하게 만들고, 다양한 특성들이 하나의 전체로 통합되지 않으면서 서로 인접할 수 있게 해준다. 오로지 극단적 유연성만이 팔레 드 도쿄를 살아있는 실험실로서 역할하게 할 것이다.

하나의 단일한, 하룻밤 혹은 한주간의 이벤트에서 부터 큰 벽과 살롱을 메우는 반년간의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열려진 전시장 안에서 각각의 프로젝트는 공존, 공생한다. 기본적으로 자연광 아래 주전시장은 4개월간의 전시를 하고, 방들은 2개월, 모듈 프로젝트는 1개월간 전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개별 예술가에 따라 시나리오에 따라 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전시 도중에 새로운 기회와 만남을 적용시킬 수도 있다. 이는 장소적 제약과 조직적 관행이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온 기존의 미술관 전시 프로그래밍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획을 프로그램화할 수 있는 능력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전천후로 사방을 주시하며 문화의 변동 상황에 개입하고 그 단자들을 새롭게 접합시키는 다이어그램을 삶의 공간 안에 그려넣는 것이다. 자유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활동 속에서 구현된다. 팔레 드 도쿄의 전체 공간은 예술가들, 큐레이터들의 상상력과 능력에 맡겨긴 거대한 도구 상자tool box 혹은 그들의 작업을 위한 매체medium이다.

그렇지만 외관상 번듯한 건물만 지어놓고 임시방편으로 공간을 채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정작 필요하고 어려운 일은 모든 프로젝트와 모든 전시에 합당한 시간, 합당한 장소를 발견해내는 일, 즉 건물 안에 매번 즉각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서부터 외국의 지역들에 이르기까지 적합한 시간, 공간을 연결해내는 일을 해야 한다. 이들은 도쿄라마 프로그램을 통해 이웃을 탐색하고 가상적 TV 방송국인 도쿄 TV를 이미지화하면서 벽 너머의 다양한 활동들을 보여준다. 전시장 바깥의 외국 어디에나 흩어져있는 작가들의 활동, 주장과 인터뷰 등을 상영함으로써 생산과 분배의 장소로서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또한 작가들은 단지 일회적으로 전시하는 관행을 깨고 팔레 드 도쿄는 시간을 두고 그 작가들을 프로모션하고 다양한 방식, 다양한 맥락 속에서 이들을 소개한다. 작업을 스펙터클로서 만들기 보다 대중들이 현대미술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서 전시가 작동하는 장면에 대한 스쳐보기glimpse의 방식을 부여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밍 안에서 시각예술은 디자인, 영화, 문학과 패션을 이끄는 서치 엔진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로써 오늘날의 시각예술은 다른 분야를 해독하기 위한 시각적 도구로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를 제시하게 된다. 근래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들은 회화, 비디오, 사진, 퍼포먼스, 혹은 다른 매체들로 자신의 생각과 기대를 표현한다. 그것들은 흥미로운 도구이지 미학적 가치의 기록이 아니다. 또 그들의 작업은 특정한 주제의 헤드 라인에 이용당하는 것을 피한다. 형태학적 시각에서 상호 유사성을 비교하여 표지화하려드는 비평적 판단에는 관심도 흥미도 없다. 이들은 연도가 없는(zero years) 세대이다.


선행 하는 아방가르드 미술가들과 달리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직접적 비판을 수행하지 않는다. 사회는 미쳐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가 규정하는 형태들을 빌려와 과장하는 것에 도리어 관심을 갖는다. 이제 통제 사회는 힘없는 구조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인조 작가들인 엠그린과 드락셋(Elmgreen & Dragset)은 폭발한 감옥의 부서진 시멘트 벽들을 보여주고 파올라 피비(Paolo Pivi)는 착란적인 타블로를, 알랭 데클럭(Alain Declercq)은 군사적 경찰의 자기 파열 단계를 고발한다.

스펙터클한 작업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크게 유발한 나빈 라완차이쿨(Navin Rawanchaikul)은 이번 전시 안에서 개인전을 했다. 미술과 미술 제도 그리고 사회라는 3자 관계를 반영하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단연코 가장 강력한 메시지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 작가일 것이다. 작가는 큐레이터맨Curatorman이라는 이름으로 전시 큐레이터를 자신의 작업 대상으로 삼았다. 이 큐레이터는 미래에 열리게 될 대규모 미술 이벤트 전시를 조직할 책임을 부여받은 자이다. 나빈라완차이쿨은 여행계획을 통해 과거와 미래 미술사에 관한 법썩대는 여행을 제공한다. 새로운 세대는 팝과 대중문화의 가장 우스꽝스런 측면들에 대해 특별히 콤플렉스(냉소의 뒷면)의 감정이 없다. 미셀 마제루스(Michel Majerus)는 기호들을 광고 패키지에 의해 고무된 거대한 벽화들에 뒤섞어 일종의 팝 초현실주의에 가깝게 세부들을 크게 확장한다. 술라시 쿨솔웡(Suraci Kusolwong)은 거대한 싸구려 일상용품 경매장을 만들어 거리낌없이 호객행위를 한다. 수보 굽타는 매일 같이 힌두교의 로고들을 모아 쌓는다. 과도하게 집착하는 차원이 보여지기도 한다.

멜리크 오헤니언은 그의 설치를 시간과 공간에서의 배열, 대립과 분열의 연속을 편집하는데 특히 주목하고 있다. '섬 속의 섬'에서 그는 세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1960년대 아이스랜드의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작은 화산섬을 탐험한다. 그리고 나서 이 그 영토(지역)은 어떠한 국가적 문화적 도용으로부터 자유롭고 과학 단체 (science community)만이 접근 가능한 이 순결한 흙과 땅으로부터 나오는 삶의 현상에 관한 연구의 장소가 된다. 멜릭 오하니언은 장소를 지각적으로 읽도록 하며 그것은 소리와 이미지를 통한 인스톨레이션을 통해서 이다. 두 번째 작업은 '주변의 공동체들(peripheral communities)'로서 상이하게 섞인 커뮤니티와 소수의 (마이노리티) 문화를 현대 코메디 뮤지칼을 통해 보여준다. 유럽은 대도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연속적인 영화의 인물들로 묘사하여 보여준다. 소리와 이미지들이 교차하고 사람들의 개별적인 문화들과 노래와 음악이 뒤섞여 있다. 매튜 리치(Mattew Ritchie) 역시 생태적 관심에서 자연계의 기원에 대한 무한한 탐색 의지를 보여주었고 크리스토프 베르다커(Christophe Berdaquer)와 마리 페주(Marie Pejus)은 약물 과용과 신경과민증의 결과하는 양상을, 나오미 피셔(Naomie Fisher)는 자신의 몸을 식물의 줄기 속으로 연결시키는 일련의 사진 작업을 보여준다.

모니카 본비시니의 작업은 보다 현실의 문제에 접근한다. 그녀는 여러 나라의 노동자들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는 삶의 감정적인 부분, 타자와의 관계, 일에 대한 태도에 관한 진실한 답변을 구했다. 이 프로젝트는 1999년부터 유럽의 특정지역과 미국에서 진행되었고 팔레드 토쿄의 건축 노동자들의 설문조사로 이어졌다. 기록된 설문 조사지들은 커다란 2층 방의 긴벽에 많은 수의 액자로 걸렸고 작품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책처럼 읽혀진다. 메샥 가바는 가상의 아프리카 뮤지엄을 홀란드, 벨지움 미국의 뮤지엄 안에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미 10개의 방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게임룸, 샵, 예술과 종교의 방 등으로 되어 있다. 르 살롱에서 그는 그의 11번째 방을 '라운지(거실)'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 뮤지움을 만들고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했다. 이 작업은 미술관에 관한 메카니즘과 역할에 관한 물음을 제시한다. 아프리카 현대미술과 서구의 인스티튜션의 대면은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의 기능으로서 재정의하도록 만든다. 아무런 콜렉션도 없는 가바의 뮤지움은 각각의 방이 다른 지점을 탐사하면서 미술 시스템을 통한 행로를 제공한다. 미술과 시장, 오락, 권력 등과의 관계를 통해. 들터있는 분위기를 넘어서서 Te Launge' 는 포스트콜로니얼 조건과 문화들 사이의 다이알로그가 종종 유머를 통해 드러난다.


텔레비전은 오늘날 모든 미디어를 제압했다. 미술가들이 이 도구를 활용하고 그 미스테리에 침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현대 예술 창작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 된다. 현대미술을 위한 장소인 도쿄 TV를 시작함에 있어서 큐 사인은 바로 TV 포맷과 코드로 작업을 하는 많은 작가들에 의해서였다. 팔레드 도쿄의 트레일러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위한 조종실이고 도쿄 TV 프로젝트의 형식은 작가들이 프로그램 편성표(뉴스, 토크쇼, 광고, 스포츠, 문화와 과학 방송...)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아나 로라 알레이즈Ana Laura Alaez, 왕두 Wang Du, 올라프 브로이닝 Olaf Breuning, 파스칼 마틴 타이유 등 25명의 작가들이 그들의 작업을 짧게 연속적으로 편집한 것(몇초에서 6분까지)으로 참여했다. 도쿄 TV는 작가들의 각각의 비디오를 나열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비디오와 시퀀스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다.

**** 니콜라 부리오 인터뷰 부분은 빼도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내용에서 함축되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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