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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나 사건 - 현대미술의 제도적 시스템에 대한 공격

이영철

오늘의 미술 형식들은 숫적으로 엄청나고 빠르게 변하지만 결코 충분하지 못하며 지겹게 여러 가지일 뿐이다. 그 많은 것들을 일일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스런 일이다. 세상은 매일 변하지만 또한 기대했던 것 보다는 적게 변한다. 그래서 미술비평가들은 어떤 것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몇가지 아이디어가 다른 것들을 지배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현대미술은 99퍼센트 무성생식cloning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표절 행위를 통해 개념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각자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전사 팔라딘Paladin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입에 자갈을 물리지 않는 미술art that wont shut up을 진정으로 지지해준 지안카를로 폴리티에게 감사한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당신들에게 여기서 아무 말도 못했을 테니까.(가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의 텍스트 중에서)

2001년 9월에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서 열렸던 티라나 비엔날레 안에 오늘날의 미술의 가치와 시스템을 공격하는 강력한 시도가 있었다는 소식을 금년 초 이태리에서 접했을 때, 그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 사건은 매우 냉정하고 치밀한 것이었다. 당시 9. 11 사건의 전세계적 동요로 인해 이태리 밖에서는 미술계의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지 않았고, 단지 플래시 아트의 이태리판에서 작게 취급했을 뿐이다. 플래시 아트는 티라나 비엔날레를 조직했기 때문에 스캔들에 더욱 신중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티라나 비엔날레에 30여명의 큐레이터들이 참가했지만 대부분은 그 내용을 몰랐다. 사건 내용은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가짜 큐레이터, 가짜 작가, 가짜 작품들이 진짜인 양 버젓이 비엔날레 전시에 들어왔고 두터운 비엔날레 도록에 지적이고 공격적인 내용의 텍스트가 실렸다는 점이다.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의 이미지가 새겨진 그림 엽서, 회교 근본주의의 영웅에 대한 언급이 국제비엔날레라는 거의 전문화된 미술영역의 행사 속에서 9.11 사태와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했다는 기묘한 일치로 인해 회교권 국가인 알바니아에서의 미술 행사가 다른 각도에서 주목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 뉴욕에서 발행되는 유명 미술지 <아트 포럼>에 프란체스코 보나미의 이름을 도용하여 티라나 비엔날레의 음모에 대한 소식이 전달되었다. 타라나 사건은 근자에 르 몽드 지에서 흥미롭게 취급했지만 티라나의 음모 자체를 악성 바이러스로 여기는 보수적 경향이 적지 않아 외국의 미술 저널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련의 파장과 관련해서 금년 10월 이 사건을 다룬 책이 이태리 내에서 발간될 예정인데, 안토니오 네그리와 같은 급진적이고 세련된 좌파의 입장을 주로 소개해온 편집인에 의해 준비되고 있다.

이 비엔날레는 유럽의 주요 미술 잡지인 플래쉬 아트의 발행인이자 편집인 지안카를로 폴리티(그는 보니토 올리바와 협력하여 1980년대에 이태리 트랜스 아방가르디즘을 국제적으로 선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가 티라나 시장과의 개인적 유대를 바탕으로 조직했다. 티라나 시장 에디 라마는 알바니아의 문화부장관을 지냈고 미술가로서 여러개의 전시에 참가했고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알바니아 국가관에 작품을 낸 인물이다. 따라서 티라나 비엔날레 오픈 식에는 20세기 마지막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광을 되찾아준 하랄드 제만을 위시해 상당히 유력한 미술인사들이 대거 참여했고 티라나 비엔날레의 출범을 축하해 주었다. 이 비엔날레는 국가-기업의 거대한 지원ultra sponsor을 바탕으로 권위와 힘을 형성하는 국제비엔날레들의 보편적 시스템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여러 국가의 큐레이터, 비평가 그리고 작가들이 직접 전시 큐레이팅에 참가하는 풀을 구성해냈다. 익히 알려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프란체스코 보나미, 니콜라 부리오 같은 잘 알려진 국제큐레이터들이 포함되어 있고 작가 마우리치오 카틀란, 바네사 비크로프트와 베네통의 광고 이미지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사진 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 같은 국제 스타들도 큐레이터로 초청되었다. 주최측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에게 티라나 비엔날레의 로고와 공식포스터 디자인을 의뢰했다. 전형적인 토스카니식의 도발적인 포스터가 만들어졌는데, 알바니아 국기를 변형하여 코소보와 마케도니아의 소수 민족이 얼마나 끔찍하게 생명의 위협를 받는가를 표현했다. 포스터에 그려진 붉은 바탕의 검은 색 쌍두 독수리는 1990년대에 코소보 등지에서 활약했던 자유 부대의 깃발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유럽의 주류 민족과 보수파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에디 라마는 그 이미지가 부적절하고 위험하다고 여겨 토스카니의 디자인을 거절했다. 그러나, 포스터를 디자인한 당사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고집했을 뿐 아니라 기획자이자 예술감독인 지안카를로 폴리티의 지지에 의해 포스터는 제작되었다. 처음부터 토스카니의 로고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해온 폴리티에 따르면, 티라나 비엔날레의 포스터는 유럽과 미국의 많은 이들에게 위대한 사진가의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되었다 한다.

2001년 여름 토스카니는 자신의 아들인 로코(이름 역시 도용했다)에게 티라나 비엔날레 홍보용 엽서를 제작하게 했다. 그 엽서는 어깨에 카메라를 짊어진 아랍 TV의 여기자와 정충에 휩싸딘 젊은 일본 여자 군악 대장, 일광욕을 하는 젊은 남녀들 그리고 기관총을 휘두르는 오사마 빈 라덴이 분명한 한 인물의 모습을 담고 있다. 문제는 비엔날레가 막을 올리자 진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나타나 자신의 이름이 도용되어 많은 일들이 벌어진 사태에 경악하면서 시작되었다. 사건의 내용을 확인한 후 진짜 토스카니의 변호사들은 서명 위조, 명예 훼손 그리고 사칭 혐의로 익명의 인물을 밀라노 법정에 제소했다. 비엔날레 주최측과 주고받은 수백통의 모든 서신들은 교묘한 가짜였음이 드러났고, 이름을 사칭한 인물은 형법상의 범죄 혐의가 인정되어 이태리 대검찰청의 반테러 담당 검사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토스카니의 이름을 사칭한 알수 없는 인물이 국제비엔날레의 큐레이팅에 참여한 것 보다 흥미롭고 위험스러운 것은 티라나 비엔날레의 신빙성을 위협하고 비엔날레 시스템 자체를 전복하는 매우 전문적이고 치밀한 계획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티라나의 음모의 주인공은 단순히 위작을 만들어 진품의 가치를 손상시켜온 불명예스런 가십거리의 차원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4명의 미술가를 만들어내 국제비엔날레에 출품시켰고, 젊은 이들의 스타 디미트리 비오이의 이름을 도용하여 미술가로 변조했고 그들과 가짜 인터뷰를 해서 도록에 싣게함으로써 현대미술의 가치와 시스템을 그 뿌리에서 공격했다. 이 음모의 주인공(그리고 공모자들)은 현대사에 있어 극심한 모순과 곤경을 겪어온 알바니아, 1차 세계 대전 이후 그리스, 세르비아,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차례로 점령당하다 48년간의 공산정권에서 벗어난지 10년 그리고 우리에게는 코소보 사태로 인해 발칸의 화약고로 기억되는 분쟁 지역에서의 국제적인 미술 행사를 통해 미술계에 만연한 진부함, 영악스럼, 냉소주의와 허구성을 정면으로 공격하며 전지구적 문화 교류의 흐름을 타고 티라나의 하수구에 까지 기어들어온 미술 시스템을 붕괴시키려고 시도했다. 폴리티의 말처럼 조르지 알마니가 2천만 달러의 기부금 형식으로 구겐하임을 정복하기 전에 미술 시스템은 이미 붕괴했다. <예술의 음모>에서 보들리야르는 '오늘날 미술은 미술시장의 재정적 관점에서 뿐 아니라 미적 가치의 관리 체제에 있어서도 전문가 범죄의 일반적 과정과 관련이 있다. 미술은 단지 연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가짜 토스카니는 장소를 불문하고 이슈가 될만하면 무차별적으로 밀고 들어가는 현대 미술의 무성생식 능력과 전문가 범죄의 양상을 가시화하려고 기도한 것이다. 베네통 광고 이미지를 전세계에 심는데 성공한 토스카니의 이름을 도용한 이 주인공은 이 비엔날레 행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에 대한 깍듯한 인사를 잊지 않았고, '오늘날은 세계의 거리가 곧 최상의 미술관이다. 수백만 사람들이 내 전시를 보지 않고서 나(토스카니)의 작품을 안다. 상식에 머물지 않지만 전혀 알려지지 않은 4명의 재능있는 인물들을 참여 작가로 정했고 그들을 찾기 위해 모로코에서 나이지리아로, 플로리다에서 피드몬드로 여행했다'고 큐레이터 흉내를 냈다. 가짜 토스카니는 명성fame의 허망함이 아니라 그것의 허구성을 공격하기 위해 알려지지 않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가공해 냈다. 그는 인터넷 공간에서 처럼 아바타 전사를 만들어냈고 계획은 장소의 위치, 발신자의 신원을 알 수 없는 정보통신 수단을 이용하여 목표를 달성했다. 20세기 현대미술이 구축해온 독단적인 담론 안에서의 탈장소의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담론의 장을 횡단, 교란시키며 시스템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방식으로서의 탈장소nowhere의 정치를 실험한 최초 사례이다.



전시 오픈 직전에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평면 이미지의 작품들을 운송해와서 걸었다. 토스카니는 디미트리 비오이의 가짜 작품으로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어린 여자애들의 발가벗은 사진들을 출품했는데, 미학적 요소들이 완전 제거된 기계적 이미지들이었다. 그는 이 사진들에 대해 어떤 평판있는 미국인 재판관이 단지 허접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 지적했다며 문화의 자기방어적 측면을 고발했다. 실제로 사법적 혹은 자기검열적 사례는 거리를 덮을 정도로 많지만 미술가들의 경우 미학적 판단 때문에 자주 상투적 혼란에 빠진다. 가짜 비오이는 그 소녀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어린애들은 자만심에 찬 미술가의 어떤 위반적 애착 행위가 아니라 그 자신의 생활(생명)기능vital fuction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도록에 실린 가짜 토스카니의 글은 그가 디미트리 비요이 Bioy와 가짜로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비요이는 '내가 하는 작업은 용서가 안된다. 어떤 미술도 나를 용서할 수 없다. 독창적으로 보일런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유치한 어린애 사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디미트리 비오이는 그 유명세로 인해 실제로 가짜 이력서, 가짜 토스카니의 글 그리고 비엔날레가 열리자 마자 그 누구보다 더 언론과 대중의 초점을 받으며 상징적 존재가 된 우스꽝스런 일화를 남겼다. 또다른 참가자인 카르멜로 가보타에 대해 말하자면, 공모자들은 가짜 토스카니가 자신의 아마추어 포르노 비디오를 상영하게끔 했다. 토스카니는 오늘날의 포르노는 녹화 도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속적인 훔쳐보기를 통한 미완의 걸작을 누구라도 실행할 수 있는 시대에 포르노그라피는 더이상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것들은 어디에나 흘러넘치며 모든 종류의 테크놀로지와 결합한다. 1998년 초 탄자니아와 케냐 주재 미국대사관을 기습한 사건을 미 첩보국이 조사한 결과, 사우디의 에미르와 연관된 단체들이 포르노 웹 사이트에 침투하여 오사마 빈 라덴과 정보, 문서 그리고 사진을 서로 교환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정보를 포르노 사이트의 채팅 방에 특수한 속기술을 통해 기록하여 정확한 비밀번호를 모르면 위장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1996년도 제작인 것으로 꾸며진 작품에서 하미드 피카르도는 1988년 12월 21일 팬엄기의 추락 장면과 그 앞에서 조종사의 복장을 한 알 수 없는 인물이 웃으면서 포즈를 취한 사진 이미지를 확대하여 캔버스에 프린트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 음모의 주인공은 자신의 텍스트에서 하미드 피카르도를 오사마 빈 라덴이 인정하는 미술계의 지하드(聖戰)의 대변인으로 만들었지만(자신인가 혹은 익명의 다른 사람인가), 토스카니는 미술계에 존재하지 않으므로써 3차원 세계와 분리되어 심연의 차원에 머문다. 이처럼 티라나 비엔날레에 침투된 가짜 미술가는 회교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검은 악마?)를 이용하여 알바니아 비엔날레, 그리고 늘 재코드화를 계산한 현대미술의 상투화된 비판 의식을 몰래 타락시킬 수 있었다. 서구 미술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보편 언어의 변신술이 발칸의 화약고인 알바니아의 한 도시의 하수구를 통해서까지 번성하는 양상에 대항의 총구를 들이댄 것이다. 이런 반제도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최근의 전지구적 문화 교류에서 야기된 갈등을 드러내고 현대미술이 강화시킨 가치에 대한 필사적인 공격의 두가치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2001년 초, 마우리지오 카탈란의 작품에서 운석에 맞고 쓰러져 괴로워하고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밀랍 초상이 해럴드 제만이 기획한 바르샤바 전시에서 선보였을 때 두명의 폴란드 국회의원이 작품을 걷어찼다. 캐틀란의 작품 파괴사건은 미술에 의해 자신들의 가치가 폄하되었다고 여기는 과도한 자기방어를 입증한다. 하미드 피카르도 같은 존재하지 않는 작가가 참여한 지적이며 잠재적이며 파괴적인 프로젝트에 비하면, 뒤샹 이래 케이지, 보이스 그리고 게릴라 걸의 행동주의적 개입 등의 사례들은 오히려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예로 느껴진다. 1974년 뮌헨 올림픽에서의 검은 9월의 테러 작전이나 1990년대 이스라엘에서의 가미가제식 테러는 제4의 전쟁으로 불리는 비대칭적 전쟁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세계무역센터 공격과 비교했을 때 초보적이라 할 수 있다. 토스카니는 인류의 기원이 이뤄진 땅이지만 유럽인의 발견 이후 절대빈곤과 죽음의 대륙이 되어버린 아프리카를 제외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볼라 에쿠아라는 작가를 만들었고, 이 작가에게 아프리카는 유럽보다 더욱 아름다웠으나, 결국 어디서나 무덤이었음을 보여주었다. 토스카니에 따르면, 그의 작품은 아시아나 미국에서처럼 아프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합법적 살인에 대한 명백한 증언이며, 화질이 좋지 않은 흑백 복사물은 칼라 사진보다 더욱 사형 선고받은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포착하는데 적절해 보였다. 이 작가는 아프로-키치로 퇴락한 조각, 회화 등 예술적 표현에 대한 상투화된 방법을 항상 거부했다는 것이다. 토스카니는 이 작가에 대해 모노톤 이미지의 위력으로 나이제리아 군사 정부의 범죄를 탄핵하는, 마치 요루바의 앤디 와홀처럼 진술의 수단으로 복사를 사용한 최초의 아프리카 작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가짜 토스카니는 자신의 텍스트에서 하미드 피카르도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하면서 피카르도가 입고 있는 수의(kafan)-묵시록에 관한 코란(경전) 구절이 새겨진- 는 순수한 종교적 행위이면서 충분히 개념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것은 지하드(聖戰)의 목소리를 미술로 들여온 것이라고 오사만 빈 라덴이 말했다Osama Bin-Laden has suggested that it carries the voice of the Jihad into art'고 하며 말을 맺는다.

9월 11일 직후에 윤곽이 드러난 이 사건에 대해 화가 마크 코스타비가 티라나 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에게 CIA나 FBI에 수사를 의뢰하라고 조언하면서 티라나의 음모가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 공격처럼 미술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고 주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운명적으로 미래로 돌아가야 하며 그 길은 부드럽지 않다.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징후들이 돌출되는 가운데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이 출간되었다. 그의 어조를 빌어오자면, 대항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조건의 국지적이고 특정한 구속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유형의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시도한다. 현대 세계의 온갖 시스템과 가치 체계를 돌파하는 것은 사법적 대응의 차원을 넘어 피할 수 없이 야만적 이행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하듯, 그것은 긍정적인 야만 행위barbarism이다. '우리는 야만 행위에 대한 새롭고 긍정적인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그것을 긍정한다. 경험의 부족이 야만인에게 요청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 시작하는 것이고, 새로운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렬함의 순간을 획득하는 것은 익명으로 사라지며 대항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말한다.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새로운 야만인은 어디에서나 길을 본다. 다른 사람들이 방벽이나 산을 만나는 곳에서도 새로운 야만인들은 하나의 길을 본다. 어디에서나 하나의 길을 보기 때문에, 그는 어디에서나 그 길을 깨끗이 해야 한다...... 어디에서나 길을 보기 때문에, 그는 항상 교차로에 서있다. 어느 순간에도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존재하는 것을 잡석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잡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잡석을 통과해가는 길을 위해서 그렇다.' 티라나 비엔날레의 음모는 문화의 방어 기제에서 보자면 야만적 폭력 행위의 일종이다. 그러나 새로운 야만인들은 긍정적인 폭력이라는 창조적 힘으로 파괴하며 그들 자신의 구체적인 실존을 통해 새 경로들을 따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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