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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대한 한국보자기, 그리고 세계화

김민정

이제는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되었다. 그런데 ‘세계화’라는 의미는 이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보통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는 것 같다. 첫째는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개방적으로 수용하여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자는 의미일진대, 십 수 년 전 고국을 떠나 그간 호주에서 살아온 필자로서는 이 세계화라는 말이 더없이 반갑고 나를 애틋하게 한다. 세계화를 통해 타국에서도 고국의 향수를 느끼며 살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하고도 감성적인 기대감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은 언제나 기대감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왜냐하면 한국 문화가 이곳에 널리 알려 진다해도 그것은 일회적인 것일 뿐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느끼면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이러한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게 한 예도 있었으니 그것이 한국의 전통 보자기, 곧 조각보였다. 호주 사회에 한국보자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98년 한국사전자수박물관의 호주 순회전시를 통해서였다. 처음 이곳에 한국의 자수와 조각보가 전시되었을 때 호주인 들은 많은 점에서 경이로 와했다. 첫째는 그 작품들이 현대 미술품이 아니라 오래 전에 만들어진 전승 공예품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두 번째는 미술교육이라든가 퀼트 길드와 같은 모임을 통해서가 아니라 과거 조선시대의 이름 없는 한국 여인들이 가정에서 여가로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특히 호주인 들을 감동시켰던 것은 전시회 끝에 가진 갤러리 토크 석상에서 허동화관장의 ‘어떤 한 조각보에 담긴 이야기’였다고 기억된다.

즉 한국의 조각보는 조형미나 색채미도 뛰어나지만 조각 천 하나하나에 사연이 스며 있기 때문에 한 장의 조각보를 보면서도 그 가정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사진앨범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조각은 나의 아버지 저고리 조각, 저 조각은 어머니의 치마 조각, 그리고 저 모퉁이의 조각은 내 동생의 돌잔치 옷을 만들고 남은 조각, 가운데 것은 할머니의 베갯모, 이렇게 회상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설명을 들은 호주 관람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각보의 참된 의미를 알기라도 했다는 표정들이었다. 나아가 ‘낯선 외래의 문화가 아닌 자신들의 친근한 문화처럼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전시회가 개최되던 당시 뉴사우스 웨일즈 주립 박물관인 파워하우스뮤지엄의 테런스 미솀관장은 개관식 만찬연회에서 ‘조선시대의 한국 의상과 보자기(Rapt in Colour: Korean Textiles and Costumes of the Choson Dynasty) 전시가 호주 디자인계에 불러일으킬 반향이 기대된다는 말을 했었다. 사실 그 이후 몇 년 동안 호주 미술계에 조각보 전시가 준 영향은 대단하였다. 이 무렵 전시 큐레이터를 담당했던 필자는 호주 미술 작가들로부터 그 들의 전시회 초대장을 종종 받았는데, 대개가 한국의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인사차 보내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전공하는 미술과 학생들의 졸업전시회에서도 조각보에서 디자인을 본뜬 작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작품 형태는 섬유공예, 그림, 판화, 유리공예 등 매우 다양하였다.




얼마 전에는 ‘보자기, 그 지평을 넘어’(Pojagi and Beyond)라는 전시회가 있었다. 한국의 이정희 섬유작가를 비롯하여 로잘리 더피엘드, 제니 에버린, 파밀라 핏치몬스 등 호주의 현역 작가 16명이 공동 출품한 것으로서 호주 국내 순회전시도 한 바 있다. 한국의 보자기와 매우 흡사한 디자인도 있었고, 보자기에서 영감을 얻어 창의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한국 보자기와 양식이 닮은 작품을 대할 때마다 나는 마치 한국의 전통 조각보들을 다시 만난 듯 한국적 정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것은 아마도 조선시대의 여인네들이 그러했듯이, ‘근검절약하는 마음으로 조각들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나 자신 이해하여서였는지 모르겠다.

호주인 들은 조각보를 호주의 퀼트 워가(wagga)에 비유한다. 1900년대 초 풍족하지 않던 시절, 황마포(黃麻布)의 밀가루포대를 조각조각 기워 만든 덮개이다. 또한 호주인 들은 원주민들이 보온을 위해 캥거루나 포썸 등 동물가죽으로 만든 원주민의 퀼트를 연상하며 보자기를 비유하곤 하는데, 어느 것이나 어머니들이 가족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한국과 호주와의 유사성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호주의 퀼트 워가 보다 훨씬 정교하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보자기를 적극적으로 소개 홍보하고 있다.

한국 보자기의 미에 대하여 세계인들이 호평을 하는 것은 어쩌면 거기에는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필자도 이제는 서양의 퀼트, 혹은 호주의 퀼트 워가를 보면서 한국의 조각보를 떠올리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조금은 달랠 수가 있게 되었다. 이제는 호주의 미술작가들도 이 세 가지 작품들의 특징을 살려서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아마도 진정한 세계화란 이처럼 상호 소통될 수 있는 보편적 특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한국 보자기는 ‘세계화’에 단단히 제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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