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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에게 듣는 음악이야기① 신동권

탁계석

베토벤과 말러가 꿈꾸던 낙원이었을까


내 생애 최고의 음악이 여기에
이것은 우주 교향곡이다. 우리가 꿈조차 꾸지 못했던 상상 밖의 장엄한 환타지다. 원초의 낙원에서 울려 퍼지는 창조의 화신 태양과 생명체를 소생시킨 대지의 뿌리가 빚어낸 위대한 하모니다.
고난과 좌절을 극복하고 인류가 한 형제가 되자고 외쳤던 베토벤, 죽음을 넘어 천국의 세계를 동경했던 말러가 꿈꾸던 낙원이었을까.
나는 이 그림에서 생애 최고의 音樂을 듣는다. 그것은 꼼짝할 수 없는 절대음악이요 神의 음악이다. 흔히 듣는 삶의 흔적이 묻어난 감정의 음악도, 가벼운 흥분에 취하는 감각성의 음악이 아니다. 태아의 어머니 나라에서 듣던 고요의 자장가요, 순수한 영혼만이 교감할 수 있는 우주의 절대시다.
언젠가, 생전의 조병화 시인은 내게 이런 시 구절을 들려 주셨다. '인간은 태양에서 나와 태양으로 돌아가는 그 짧은 여정을 살다가는 존재다'라고
그렇다. 바로 내가 떠나온 고향, 그 태양이 바로 머리 위 가까이서 생명을 주관한다. 잎을 감추고 무한한 잠재력을 잉태한 체, 인간사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군상들이 태양 아래 서있다.
누구도 여기에 곡을 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들려주고 들려 받는 음악이 아니다. 절대고독, (무아)無我의 세계에서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경배하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음악이다.
<현실 타협하지 않는 꿋꿋한 작가의 氣
2003년 세밑에 전시회를 알리는 팜플렛을 받았다. 나도 몰래 아!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인간이 가서는 안될 비밀의 문이 열렸구나.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군가.
나는 수소문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지극히 소박했다. 첫째 꿈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음악이 흐르는 낭만적인 카페를 하나 마련하는 것, 둘째 꿈은 도시 한복판의 좁은 화실이 아닌 강이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곳에서 작업장 하나를 마련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평생 전세를 살고 있다. 이번엔 나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 이 지독히도 슬픈 땅 . 땅 부자들만 땅땅거리는 땅, 예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천박의 땅. 추악한 비리와 권력이 난무하는 땅.
그는 70년대부터 사귀었던 오보이스트 이희선과 친구라 했다. 낙원동 근처에서 그림을 그릴 때 화실 한 켠에서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그는 연습을 했다. 가끔 그가 연주하는 KBS 교향악단의 연주를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전자 기타를 하면서도 클래식 연주를 하고 싶어하는 기타 그룹들 역시 한 켠에서 밤새 연습을 한 추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 나는 오보에의 이희선 선생이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소식조차 모르고 있었다. KBS 수석을 뒤로하고 그렇게 대학 교수가 되고 싶어했던 그는 몇 년씩 시간 강사를 하며 공력을 들인 끝에 교수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다음날 밤, 잠을 자다 그만 홀연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너무 강한 긴장에서 풀린 탓일까.
신동권 화백은 현실의 부조리에 타협하지 않는 꿋꿋한 전업작가다. 그래서인지 절대 세계와 호흡하는 화가의 기백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의 인간적 고통을 뒤로하고 눈에 펼쳐진 우주의 세계에서 무한한 氣를 느낀다.




태양을 훔친 화가 신동권
오늘날 참으로 다양한 색상의 음악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는 아편처럼 인간의 나약함을 부추기거나 넋을 잃게 하는 광란의 음악이 많다. 세상은 오염되고 휴식할 공간조차 점점 잃어가고 있다. 산소마저 희박해져 간다. 이기적이고 탐욕의 마음이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때에 신동권 화백의 태양 미학은 하나의 구원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나의 가슴에 뜨는 태양, 오늘의 참담한 현실. 그 침침한 일상에서 심장의 박동처럼 뛰는 원초적 리듬이 담긴 태양.
아프리카 초원에나 떴을 법한 태양이지만 신동권의 태양은 동해 日出이다. 이번 초대전에는 먼저 천국으로 간 친구 이희선의 오보에 선율도 울렸으면 한다. 우리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하루살이 유한의 존재다.
신동권 화백은 태양을 훔친 화가다. 가난한 이웃을 도우려 한 장발장 보다 더 간 큰 도둑이시다. 어쩌면 세상에서 이처럼 위대한 도둑이 또 있을까. 하늘의 태양을 훔쳐 거실로 옮기다니. 나는 그가 우리와 함께 동시대인으로 존재하는 것에서 위안을 느낀다.
태양을 보다, 태양을 꿈꾸다, 태양 속으로 사라진다면....
우리가 잊었던 태양이 다시 가슴에서 부활한다. 작가의 탁월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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