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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에게 듣는 음악이야기 ② 배정혜

탁계석

차 한 잔에 가득한 내면 공간의 풍요로움



음악적 가정 분위기에서 성장해
음악은 항시 물 흐르듯 듯 체내 화되어 있었다. 형제들과 함께 음악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지금은 의사가 된 다섯 살 위의 오빠는 대학 시절 피아노 독주회를 할 만큼 음악에 빠졌고 10살 위의 언니 역시 바이올린을 즐겨 한 탓이다. 물론 배정혜 화백 역시 중 1때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다. 대구시향 지휘자였던 이기영이란 분에게 배웠는데 새끼손가락이 짧아 고민하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림은 대학 갈 때 즈음 시작한 것이니 음악이 그림에 앞서 그의 내면을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기억이 앞으로 손자, 손녀가 한다면 뒷바라지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남아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그에게 음악은 내면의 감정을 조절하는 친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비가 오는 날이 좋았어요. 이런 날은 밖으로 나가고 싶고 거꾸로 햇볕이 창창한 날은 좀 어두컴컴한 실내가 좋았어요. 음악도 어둡고 장중한 말러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무엇보다 라흐마니노프를 즐겨들었어요. 이 음악을 들으면 늘 재 빛 어둠이 내리는 어스름한 저녁 풍경이 떠올랐어요. 말러가 90년 후반에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소개된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감상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고전음악 심취, 이젠 피아노 음악이 좋아요
그리고 음악은 늘 혼자 듣는 게 좋아요. 예전엔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하곤 했는데 요즈음은 그림에 빠지면 어느새 음악이 들리지 않아요. 두 가지 기능을 다 할 만큼 감각이 움직여 지지 않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악은 어느새 마음을 열어주고 위안을 준다고 했다.
우리 어린시절에 베토벤은 너무 흔했어요. 그래서 베토벤을 좋아하긴 했지만 때론 베토벤의 운명이나 월광을 듣는 것에 식상했지요. 그러나 요즈음 다시 월광을 들으면 한없이 좋아요.
실내악, 피아노, 오케스트라, 슈베르트, 모차르트 실로 여러 장르, 여러 작곡가의 음악을 듣지만 이제는 피아노 음악이 가장 편하게 들려요. 누구와 호흡을 맞추는 앙상블보다 혼자 작업에 익숙한 탓이 아닐까 해요. 최근에 TV에서 보았는데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좋아요. 그리고 요요마, 장한나의 연주가 기억에 남아요.
이화여대를 다녀서 학창 시절 세계적인 대가의 공연이 이화 여대 강당에서 많았지요. 그 때 로돌프 제르킨 등을 들었는데 요즈음 생각하면 연주 못지않게 작곡은 위대한 것 같아요.

한참 음악을 열심히 들을 땐 좋은 명곡을 릴 테이프에 담아 놓고 쉴 세 없이 들었어요. 이 곳 저 곳 이사를 하다보니 레코드는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고 일전엔 아예 중고 레코드 가게 사람을 불러 모두 주어버렸어요. 그 옛날 명동 가게에 나가 레코드판을 사던 추억은 아련한 향수가 되어 버렸네요.





평생 변하지 않는 공간에서의 변화
지난해 절친한 친구 두 사람이 내 곁을 떠났어요. 이후 가지려는 욕심 보다 하나라도 정리하는 마음이 들어요. 비우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지요. 그래서 음악도 그레고리안 찬트나 아카펠라를 즐겨 듣고 있어요. 요즈음은 기계음, 사람소리도 듣기가 불편해요.
나의 그림 구도 속에는 탁자 위의 악보, 편지, 피아노 등이 등장하는데 다른 작가와 달리 나에게서는 변하지 않은 ‘공간’이예요. 정병화 선생님은 늘 똑같은 소재나 대상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매번 보면 그림이 다르다며 신기하다고 말하셨어요. 똑같은 테이블, 커피 잔이 등장하는 ‘실내 공간’과 ‘정물’의 대상은 바뀌지 않지만 색감과 구도의 미세한 변화가 아마 다른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미국으로 갔을 땐 우리 것을 그려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 같은 것이었지요. 그래서 한국적인 것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교육이 달랐어요. 선생이 가르쳐 주면 무조건 열심히 그리는 우리와는 달리 이곳은 시간마다 토론이 벌어졌어요,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을 그리자. 내가 가장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그리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스테이지 즉 무대를 그렸어요, 무대 공간에 남사당도 그리고 빈 무대위에 소를 그리기도 했어요, 소는 한국이라 할 수 있으니까. 실내에 빈 의자를 그려놓기도 했고 기하학적인 분석이 이제는 자신의 심리적 공간으로 끌어 당겨졌지요.
미국은 75년에 갔어요. 이곳은 작업장이 커 100호 이상의 대작을 많이 그렸지만 81년 귀국해서는 이런 큰 그림은 그릴 수가 없었어요.





예술 표현은 다양한 장르 교감이 바탕 되어야
우리나라 사람은 색을 쓰는데 용기가 부족한 것 같아요. 자동차를 보아도 검정, 도자기도 단조로운 색들이 전체를 지배해요. 색감은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하는데 꼭 필요하지요. 그래서 예술 하는 사람은 여러 장르에 친해야 해요. 글도 읽고 수학도 하고 다양한 것들을 섭취해야 이것들이 녹아서 표출되는 것 아닙니까. 테크닉만 배우는 것은 단조로움을 초래하지요.
여러 음악을 거쳤지만 역시 고전이 좋은 것 같아요. 교향곡을 들으면 편안해요. 베토벤이 물리지 않고 좋고요. 물론 가볍고 단순한 음악도 많이 듣지요.
음악을 들을 때 짜릿한 감동의 느낌이 음악을 좋아하게 만드나 봐요. 낮은 볼륨으로 듣기보다 풀 사운드로 듣는 편이예요.
그림은 오래 걸리는 그림도 있고 몇일에 완성되는 그림도 있어요. 그러나 어느 것이 낫다고 할 수 없듯 예전에 그린 그림과 지금 그림 어느 쪽이 낫다거나 발전했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림이란 모두 그때그때 생명으로 태어나는가 봐요. 그림이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IMF 전까지는 2년에 한번은 꼭 전시회를 했어요. 그러나 이후 가정사의 변화 등 사정이 전만 같지 않았어요. 작업실이 작아지니까 사물이 안으로 포인터가 잡혀 가고 인테리어 신으로 만들어져 색, 공간, 사물의 단순화가 더해져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요.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요즈음 밤 작업은 하지 않지만 출근하듯 작업실에 나와 그림을 그려요.
배정혜 작가는 일생 동일한 공간성에 천착한다. 그 내면에 삶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등장하는 소재는 늘 같지만 마음의 풍경은 시간을 따라, 음악을 따라 자신도 모르게 변한다.
탈랜트 강부자씨는 작은 소품 하나를 식탁 벽에 두었는데 그림을 보면 차 한 잔의 이야기가 떠오른다고 했다. 그의 공간에서는 늘 고요와 미세한 울림이 우리 마음을 끌어당긴다. 음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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