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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의 문화적 관심에 대한 의견 또는 전망

정준모

겉절이들의 묵은 지 흉내

패트론의 두 얼굴
더디 오는 봄과 연일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계에서 들려오는 소식 중 하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알 만한 대기업들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옷을 갖추어 입고 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부 대기업들은 회사 사옥이나 로비공간에 전시공간을 마련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이를 반겨야 할 미술동네가 잠잠한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일부 성미 급 한 사람들은 재벌가에서 다시 미술품을 구입하려는 조짐이 아니겠느냐면서 미술시장의 활황을 기대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무덤덤한 반응의 저변에는 지금까지 대기업이나 기업오너 일가가 미술관을 세우고, 갤러리를 만들어왔지만 미술동네에 기여한 바는 그리 없었던 기억 때문이다.

사실 미술관이란 유럽이나 미국 또는 일본의 대기업들이 미술품을 구입하고 이를 토대로 미술관을 건립해서 자신들의 고객이자 기업이 틀을 갖추도록 성원해준 국민들에게 문화적 자산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은 전통적인 기업의 사회적 공헌방법이었다. 물론 기업이나 기업가들이 미술품에 주목했던 것은 미술품의 고색(古色, look of age) 때문이기도 했다. 미술품이란 신분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인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거나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준다. 특히 미술품의 소유기간은 그 가족이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누린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미술관을 설립해서 대중에게 개방한다는 것은 자신의 현재의 사회적 위치가 매우 합당하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역사적으로 무조건적인 후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흔히 예술의 후원자를 일컫는 페트론(Patron)도 실은 미술친구, 후원자 그리고 이타적인 예술과 학문의 촉진자로 정의하고 있지만 사실 후원은 손에 넣은 부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항상 포함하고 있다. 또 최근 에는 후원이란 의도한 대로 여론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물론 기업이나 기업가들의 자선이나 봉사 또는 문화예술에 대한 기여나 지원은 순수한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날에는 고도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 경우 후원이란 사적인 이익을 공공의 이익이라는 주장으로 가리고자 할 경우 흔히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짝퉁?
물론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마케팅 방법과 기업의 이윤추구에 대해 비난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문화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의 기업들이 보이는 문화마케팅이라는 이름의 활동들은 명분은 없이 단순하게 ‘너도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이다. 백화점 매장 구석에 갤러리를 개설하고, 자사 제품에 명화를 인쇄하고, 광고에 유명미술관 소장품을 도입한다고 해서 문화적 또는 예술적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매우 천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자신의 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이란 고색 또는 첨단의 아우라와 결합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조건 그림이라고 음악이라고 모두 멋있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분위기와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모내기철, 들판에 틀 음악은 농요이지 모차르트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사옥 일부, 또는 사무용도의 건물을 개조해서 전시장을 마련하고 문화 예술에 엄청나게 기여한 듯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이들 전시장은 거개가 미술품을 전시할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미술품을 전시하기위해서는 일단 하론(Halon)이나 그 대체재인 NAFA-Ⅲ를 사용하는 방화시설을 갖추어야한다. 또 작품의 보존을 위한 기본적인 항온항습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조명도 작품의 재질에 따라 달라져야 하며 UV코팅이 된 조명기구를 사용해야 한다. 즉 전시장으로서 그것이 미술관이던 소장기능이 없는 전시장이건 간에 말이다. 그리고 전시에 필요한 작품이 도착하면 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임시수장고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향후 국제적인 교류를 위해서라면 이런 시설은 더욱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시설을 갖춘 곳은 얼마나 될까. 문화예술을 지원함으로서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한다며 얼마나 즉흥적으로 기본적인 사전 조사나 연구 없이 덤벼들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속원들에게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권하고 혁신을 외치면서 세계적인 기업, 일류기업을 외치지만 자신의 문화 예술 활동은 여전히 ‘족보사서 양반흉내 내는 수준’이다.

아마추어는 위대(?)하다
기본적인 시설이나 규모도 문제지만 기업들이 설립 운영하는 미술관이나 전시관의 기본적인 운영인력 또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대개 이런 시설이나 기관의 대내외적인 책임자이자 최종 결정권자는 그 분야에서는 아마추어인 오너이거나 오너의 부인인 사모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사모님의 전공이 미술 분야인 경우도 있지만 이들의 미술사적인 지식이나 미술에 대한 이해는 3~40년 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거개가 실기전공자들이란 점에서 프로라고 하기에는 무리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전문 인력들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도 이들의 전문성이 아무추어인 오너나 사모님의 벽을 넘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이란 그렇게 아마추어 손에서 놀아나고 결정될 만큼 녹록한 것이 아니다. 고도의 전문적인 미술사적인 지식과 철학, 미학이 필요하다. 또 현대미술을 다루는 경우 문화인류학, 문화사회학, 문화심리학적인 판단과 지식을 추가로 필요로 한다. 단순하게 취미활동이 아닌 것이다. 물론 개인이 취미로 자신의 개인재산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면 누구도 탓 할 바 없다.

하지만 주식시장에 상장된 공개된 기업의 경우 기업차원에서 문화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자한다면 보다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 있다. 공적인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사는 주주들의 것이지 대주주 또는 오너들의 것이 아닌 때문이다. 한국의 공익법인, 장학재단, 문화재단 중 개인재산을 출연한 것은 극소수이다. 대개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들이 출자한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또 어떤 재단의 경우 대주주는 물론 친인척들의 사재는 한 푼도 들어가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취미활동과 고색을 강화하기를 위해 재단을 지배하며 활용한다.

또 한국의 기업오너들은 대부분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취미와 기호 아니면 친분관계 또는 학연이나 지연 그리고 유명세를 중심으로 작품의 구입과 전시등 대부분의 것을 결정하고 판단한다. 그 만큼 문화예술 특히 미술문화에 대해서는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만만하게 취급한다.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 메카로 일컬어지는 MoMA도 아마추어 미술품 애호가였던 3인의 사모님들의 수집열과 전문가인 프로 알프레드 바(Alfred Hamilton Barr, Jr., 1902 ~1981)의 혜안과 미술사적 지식이 결합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미술품이란 것이 보이는 것 이상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행동은 마치 자신이 구단주라고 해서 가 감독과 코치 그리고 투수에 타자까지 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욱 빛나는 작은 기업, 큰 미술관
사실 묵은 지와 겉절이는 재료부터 다르다. 우선 신선하고 있어 입맛을 돋우는 것은 겉절이지만 그 깊은 맛은 묵은 지의 그것에 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문화예술을 통한 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명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단기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인내심과 재정적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만약 시류에 따라 문화예술지원을 고려한다면 이는 철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사적인 기회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 할 것이다. 회사 돈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품을 구입하는 일은 공금횡령에 속하는 일이다. 오너나 오너일가가 자신들의 개인재산은 출연하지 않고 주인행세를 해서도 아니 될 노릇이다.
물론 결국 문화란 누가 소유하던 간에 시민의 것, 국민의 것이며 민족의 것이자 인류의 것이다. 그런데 회사 돈으로 미술품을 사서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고 자신의 밀폐된 저택에 걸어놓고 혼자 즐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 될 노릇이다. 요즘 기업들의 전과 다른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무턱대고 반가워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껏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져온 기업과 기업오너들의 잘못된 문화예술 사랑을 따라서 할까봐 겁이 나는 때문이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이 배워야 할 미술관 박물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림동에 본관을 두고 얼마 전 강남구 신사동에 분관을 마련한 호림박물관이나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요즘 증축과 보수공사가 한창인 화정박물관이 그것이다. 호림박물관은 1982년 현 성보화학, 과거의 서울농약의 창립자인 개성상인 윤장섭 선생이 설립한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3천 여 점의 토기와 4천여점의 도자기, 고려불화와 조선시대의 그림과 글씨 이천 여 점 등 1만 여 점을 소장한 미술박물관이다. 그리고 이중 44점의 작품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꾸준히 여전하게 중요한 미술품을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연구하고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화정박물관의 경우 농약회사였던 삼공화학을 세우고 한국베링거 인겔하임 제약의 명예회장인 한광호 선생이 설립한 미술관이다. 서울 종로3가 화공약품 원료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그는 티벳 불교의 정수인 탕가 수집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세계적인 탕가 컬렉션을 자랑한다. 이외에도 지난 50 여 년 동안 동양의 미술품 2만 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미술관의 공통된 특징은 소리 없이 드러내지 않고 꾸준하게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서 그들의 수집품을 진정으로 사회와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자산규모가 이들의 수 백 배에 달하는 대기업들의 요즘 행태를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장면 하나. 자신의 문화적 소양을 과시할 목적으로 모차르트를 고용한 영주가 악보를 들여다보며 모차르트에게 묻는다. “음표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이에 모차르트는 “아니요. 꼭 필요한 만큼만 썼는데요.” 라고 답한다. 이는 마치 파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면서 “왜 이리 회색이 많소?”라고 묻는 것과 같다. 요즘 들어 기업들이 문화예술을 지원한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돈 들여 그들의 문화적 부박함만 들어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겉절이 재료로는 아무리 오래 묵혀도 묵은 지 맛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는 겔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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