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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내 안에 H.보스가 있다

이진성

문화 에세이(2)

내 안에 H.보스가 있다

지난 9월8일부터 10월 6일까지 약 한 달간 필자는 유럽 10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런 장기여행은 대학 때 배낭여행이후 처음이었다. 직접적으로 전공과 관련된 이유도 있고, 관련 직종에서 종사하다보니 유럽은 필수적으로 봐야하고 경험해야 하는 곳이긴 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전공에 필요해서거나 혹은 보고 와야 하는 아트페어가 있어서 이거나, 연구해야할 그림을 실견하기 위한 목적 없이 떠난 순수한 여행이었다. 한 달간 있었던 하루하루 매순간의 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다소 개인적인 경험을 일부 소개하고자 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와의 만남

9월29일 화요일, 여행 22일째, 스페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서 야간열차로 마드리드에 오전 7시경 도착, 기차역과 바로 인접한 숙소에 가방을 맡기고 마드리드 일정을 시작했다. 9시, 프라도미술관 오픈시간에 맞춰 기다리는 번거로움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프라도미술관에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성모 대관식>, 고야의 <1808년 5월3일> <옷을 입은 마야> <옷을 벗은 마야>, 루벤스의 <삼미신> <파리스의 심판>, 뒤러의 <아담과 이브>, 프라안젤리코의 <수태고지> 등을 비롯해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이번에 소개할 작가는 미술관 지층 한 전시실에 <쾌락의 정원> <바보 치료>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 <여행자> <건초수레> <동방박사의 경배> 등이 전시 중이었던 히에르니무스 보스(Hiernymus Bosch)이다.

이야기 하나. 보스라는 이름보다는 보쉬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을 처음 본건 대학교 1학년 때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에서 이다(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서점 이름을 적고 보니 나도 어느 정도의 연배가 되어 버린 건가 하는 다소 의기소침한 생각이 든다. 마치 어느 책의“… 지금은 없어진 명동의 000클래식 다방에서 …”라는 글귀에서 읽혀지는 옛스러움, 내지는 간혹 하얀 새치를 볼 때 느끼는 일종의 서글픔이라고 해두자). 미술 원서들 사이에서 겉표지의 이미지를 보고 호기심에 빼어 본 화집을 통해서였다. 그림을 전공하던 내 눈에 보스의 기괴하고 이상한 괴물이라 통칭할 수 있는 것들이 잔뜩 등장하는 그림들은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서서 작품들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익히 알고 있던 작가들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뭔지 모를 야릇한 감정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런데 이 화집, 한손으로 들기엔 곤란할 정도로 크고, 무겁고, 두껍고, 게다가 온통 외국어로 쓰여 있었다). 이후 종로서적에 갈 때면 반드시 그 서적코너로 가 맨 밑 서가에서 마치 책 임자가 나 인양 꺼내 보곤 했다(그즈음 난 진로에 대한 너무나 많은 고민으로 학교보다는 학교 밖 세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있었으며, 보스 화집은 마치 공개된 장소에서 나만이 즐기는 은밀한 비밀처럼 일종의 작은 희열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책이 묵직하게 지키고 있던 제 자리에 없어 주변 서가를 찬찬히 찾아야만 했다. 그러고도 찾질 못해 직원에게 물으니 판매되었다고 알려 주는 게 아닌가(한동안의 나의 유희는 그렇게 끝났다). 그의 작품을 보고 가졌던 ‘이건 뭐지, 왜 이렇게 그렸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하는 일련의 호기심들은 이후 내가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많은 이유 중에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이야기 둘. 대학원 2학기 북구르네상스 수업시간에 작가별 작품 연구 발표를 하면서 보스의 <쾌락의 정원>을 연구해 볼 기회가 생겼다. 보스 작품에 매력을 지닌 나의 취향이 독특한 것인지에 대한 약간의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작품 연구에 대한 아티클을 찾아보니 이미 많은 연구가 이뤄져 있었고 당시에도 매력적인 연구대상이었다. 그림을 보는 나의 시선에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안심했던 기억, 너무 좋은 아티클들이 많아 발표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난 발표 준비를 하면서 보스 화집을 구입했으며(크고, 무겁고, 두꺼운 독일어 원서인데 익숙한 표지를 지녔다), 다른 몇 권의 참고 서적들도 구입해 읽었다.

이야기 셋. 2009년 9월, 프라도 미술관 116개의 전시실 가운데 보스의 작품들이 있는 전시실 입구에 섰다. 드디어 나는 살아있는 그를 만난 것이다. 손․발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심줄을 타고 파리하게 진동을 준다. 진동이 머리끝까지 닿아서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다(만화 머털도사에 보면 요술을 부리기 전에 주문을 외우면 주인공 머털이의 머리카락이 전부 공중부양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 오른편엔 보스의 <바보치료>가 왼편엔 <쾌락의 정원> 세 폭 제단화가 양 패널을 15。 정도 펼침 형식으로 걸려 있다는 게 인지되면서는 심장이 두근두근,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선 심정이다.
이날 난 보스의 전시실에서만 2시간가량을 보냈다(드라마 제목마냥 ‘보고 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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