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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으로 본 민족적 색채

이현경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각은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에 노출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이미지들은 다양한 주제와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고 소멸되며, 그 중에서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작품들은 몇몇 되지 않는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쏟아지는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생성되는 수 많은 정보들은 작가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이는 즉시 매체에 대한 실험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은‘무엇이, 한 작가의 작품을 다른 이와 차별되게 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각인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환원적 모티브를 공통으로 두고 작업하였던 세명의 작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번째 작가인 피에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은 주지하다시피, 신조형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서 그는 환원의 정도를 두고 입체파(특히 분석적 큐비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엄격한 수직·수평의 사각형들을 구현해냈다. 아무런 구체적인 진술을 하지 않고 있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 유달리 기억되는 것은, 사각형들 사이에 배치된 화려한 삼원색(빨강, 노랑, 파랑)이다. 실제로 그의 44년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화려한 불빛들을 연상시키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미국의 상업적이고 팝(pop)적인 가벼움을 느끼지 않는다. 몬드리안의 색채는 보다 문화적 깊이를 일깨우는 고흐의 강렬한 표현주의적 색채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의 렘브란트의 빛에 대한 탐구와 절제성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몬드리안을 통해 네덜란드라는 나라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묵직한 문화적 원천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60년대부터 뉴욕에서 작업 활동을 하던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1929~ )의 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등장 하는 무한 점(Infinity dot)들은 그 크고 작음의 화려한 반복을 통해 무한한 장식성을 느끼게 한다. 이는 일본의 모모야마 시대(1568~1598)의 장식 미술을 연상케 하는데, 모모야마 시대의‘꾸밈’의 유희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권력의 하극상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무한한 삶의 가능성이 냉혹한 죽음과 맞닿는 상황에서‘꾸밈’에의 정열을 꽃피웠던‘괴이함’의 산물이었다. 야요이 쿠사마의 무한 점들의 소용돌이는 이러한 삶과 죽음의 이질성에서 오는 괴이함과도 맞닿아 있으며, 이는 굳이 정신분석이라는 해석의 잣대를 들이대기 이전에 문화적 차이에서 감지되는 것들이다. 일본미술의 장식적 전통은 모모야마 이전에는 헤이안의 귀족문화에서, 이후에는 전통판화인 우키요에에서 보여지며, 이들에게서 보여지는 크고 작음의 극렬한 대비, 선명한 색채는 일본의 디자인이 이러한 요소들을 십분 잘 활용함으로써 발전하게된 원동력이기도 하다. 야요이 쿠사마의 작업활동은 대부분 미국에서 행해졌지만 그녀의 작품에서 일본적 꾸밈의 숨결이 느껴 지는것은 그녀라는 존재의 회귀점이 바로 일본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비슷한 시기, 같은 장소에서 작업 활동을 했던 우리나라 작가를 언급하자면 수화 김환기(1913~1974)를 들 수 있다. 뉴욕에서의 김환기의 작품들은 야요이 쿠사마와 비슷한 무수한 점들로 환원적 형태를 구축하였으나, 김환기의 점들은 그가 평상시에 늘상 두고 보아왔던 우리나라의 고동기물(古董器物)속에 잠재된 예지(藝智)의 산물이며, 이는 17세기 이후 문인화가들이 행했던 고동기물 취미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될 수 있다. 뉴욕에서의 김환기는 민족적인 것이 곧 세계적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했으며, 이는 21세기를 살아하는 우리들에게 절실히 해당되는 말이다. 포스트모던 시대, 미디어시대 등 다양한 정보와 매체의 범람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많은 것을 수용하되, 자신의 출발과 귀착점을 알고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거대한 민족적 문화자산을 갖고 있는 중국의 현대 미술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우리도 우리의 정위(Orientation)관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현경씨는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미술비평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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