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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된 사회에 일갈 사군자전

윤철규

ART ISSUE(7)

미술이 곧 정치라고 하면 지난 시대의 과격한 구호를 연상시키고 또 철지난 말이기도해 삼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주고받는 말이나 행동이 말하는 사람이나 행동 주체의 어떤 목적이나 의도 아래 행해진다고 보면 ‘정치적이다’라는 말에 그렇게 민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평범해 보이는 미술 활동 역시 정치적으로 해석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최근 타이완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일본의 아사히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유물의 일본 전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얘기했다. 아마도 순조롭게 실무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2013년쯤은 실현되지 않을까라고 전망까지 덧붙였다. 전 세계 블록버스터 전시의 최대 소비국인 일본으로서는 정말 듣고 싶은 얘기를 최고지도자 입을 통해 들은 것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타이페이 고궁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역대 황실유물을 소개하고 싶어 했다. 1972년 일중국교정상화 이후, 신(新)중국에서 발견된 고고학 유물들은 수도 없이 일본에 소개됐다. 그러나 그것은 근래 발굴된 것들일 뿐 5천년 유구한 중국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국제법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각각 하나뿐이라고 서명했다. 말할 것도 없이 중국 대표는 중화인민공화국이다. 따라서 국제법상 지위가 불분명한 타이완 정부가 중국 대륙에서 싣고 간 중국황실 유물은 보기에 따라 법적 귀속권 문제가 아주 애매해질 수 있다. 경제는 타이완과 경제협력기본협정을 맺어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지고 있지만 중국은 이 문제를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그저 ‘중국은 하나이므로 교류를 많이 하자’는 선에서 타이완을 끌어들이고 있는 정도이다.



오는 6월 1일부터 3달간 타이페이 고궁박물원에서는 대륙과 타이완이 서로 나뉘어져 있던 원나라 황공망(黃公望)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의 합벽(合壁)전시가 열린다. 이는 중국이 수년전부터 공을 들인 끝에 마침내 이루어진 상징적 사건이다. 중국은 연초부터 이 감격스러운 전시에 대해 수도 없이 많고 자세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이런 묘한 시기에 마잉주 총통이 고궁 유물의 일본전시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미술품국가보상법이 일본 국회를 통과한 것도 한 가지 이유는 된다. 미술품국가보상법의 골자는 빌려온 미술품이 훼손당했을때 일정 금액 내에서 국가가 보상해준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상의 이유이고 실은 다분히 타이완의 중국유물을 겨냥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유물이 일본에 건너왔을 때 중국이 나서게 되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 법이 있기 때문에 소유권 분쟁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자동 개입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된 것이다.

정치인의 눈은 앞을 보면서 동시에 뒤를 보기도 하고 또 한 입으로 동시에 두 가지 뜻을 말한다고 한다. 저장성박물관에 있던 황공망 그림의 앞부분이 바다를 건너 타이페이로와 고궁박물원의 뒷부분과 역사적으로 합체(合體)되는 전시를 앞두고 마잉주 총통이 고궁 유물의 일본 전시를 ‘개인적으로 열망한다’고 한 말은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이 혹은 미술 전시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는 이렇게 아주 많다. 비단 이런 일은 해외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지난 29일 끝난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올봄 전시 테마는 사군자(四君子)전이었다. 화창한 봄날에 조선시대 화가들이 그린, 선비의 꽃이라는 매화나 난초 그리고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국화, 세한지우(歲寒之友)의 대나무를 그린 이른바 사군자를 소개하는 전시였다. 계절로 보면 사군자는 이른 봄이나 늦가을 또는 겨울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그래서 꽃피는 5월에 사군자를 테마로 정한 일을 두고 ‘정치적인 해석’을 하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다. ‘돈돈돈’하는 사회에, 전관예우·맛있는 집·비뇨기과 광고·어린 소녀애들의 교태 등등이 범람하는 세태를 향해 산중군자(山中君子)의 일갈(一喝)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싶은 전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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