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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흥분하지 않고 절차를 거치는 방법도 있다

윤철규

좋아라 하고 박수 치며 웃는 것을 보면서 ‘거, 참’ 정도로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있다. 옆에서 보면 분명 그게 아니어도 할 수 없다. 몇 년 전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죽고 그의 소장품이 경매에 나왔을 때다. 당시 경매에 나온 물건 중에 청동으로 만든 쥐와 토끼 상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 내력을 보면 중국이 근대 초 열강의 이익 각축장이 되었을 때 청나라 원명원에서 약탈당해 유럽으로 흘러들어 간 물건이라고 했다. 

이들의 등장에 대해 중국 여론은 반환을 거론하며 들끓었다. 당시 용감한 한 중국인이 나서서 이를 낙찰 받았다. 그리고 이내 얼굴을 돌려 대금지급을 거부했다. 일종의 고의 유찰을 유도한 셈이다. 중국에서는 환호작약했는데 경매회사는 난감하게 됐다. 규정 위반의 한 개인이 아니라 이상하게 중국 전체를 상대하듯 돼버린 것이다. 이 일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프랑스 기업인이 이를 대신 인수해 중국에 기증함으로써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를 지켜본 인국(隣國)의 시민은 ‘거, 참’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거, 참’ 정도는 약과이고 얼굴이 벌게지는 일도 있다. 유홍준 前문화재청장이 여러 글에서 소개해 어느 정도 알려진 일이지만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는 커다랗고 잘 생긴, ‘깨진’ 달항아리 하나가 전시돼있다. 이 항아리는 필자와도 인연이 있다. 중앙일보에서 일하던 1994년 여름, 필자는 도다이지절의 주지 스님이 기거하는 암자에서 이 항아리를 처음 보았다.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 항아리에 대해 당시 동행의 윤용이 前명지대교수는 흥분했고 기자였던 필자는 그 자세한 내용을 취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10월경 지면을 통해 소개됐다. 

 

그런데 기사가 나간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이곳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한밤중에 이를 가져가려다 주지 스님의 인기척에 그만 항아리를 내동댕이치고 달아난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취재와 지면의 기사와 도둑의 소행 사이에 인과 관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깨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놓은 것이 바로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항아리다. 

그리고 96년 연말 도야마대학 조선어전공의 후지모토 유키오 교수를 만나 이번에는 정식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서울대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는 한국통으로 전공은 판본 연구로 일본에 있는 조선 서적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연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때 그는 ‘이키섬 안코쿠지절을 아느냐’면서 이곳의 고려시대 대장경이 도난을 당해 한국으로 건너간 듯하다고 했다. 어두운 술자리라 아마 붉어지는 얼굴을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1억 원이나 하던 고려시대 초조대장경 한 부는 당시 서울에서 2-3,000만 원대로 급락하고 있었다. 

 

지금 안코쿠지절에 대한 일본 자료를 보면 1994년 7월 23일 591첩 있던 대반야경 중 493첩을 도난당했고 이듬해 도난당한 것과 흡사한 3점이 한국에서 발견돼 그중 하나가 국보로 지정됐으며 1998년 일본 외무성이 한국정부에 정식으로 조사를 요청했으나 개인 소유라서 응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돼 있다. 이쯤 되면 뻘게지는 게 아니라 숨 막히지 않을 수 없다.  

 

문화재의 활용과 환수

2000년대 초의 일인데 이번에는 도쿄의 고미술상 S씨 일이다. 그는 한국미술 전문이라 가끔 들러 차를 얻어 마시는 사이였다. 그의 도자기 안목은 일본에서 몇 손에 꼽힐 정도였고 아울러 좋은 물건들도 상당수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집에 강도가 들어 흉기로 위협하면서 수십 점의 물건을 강탈해간 일이 일어났다. 평소 명랑하던 그는 이후 말수가 적어졌고 또 몇 번이나 ‘한국 경찰에 신고하면 물건을 되찾을 수 있냐’라고 물었다. 서울에 돌아와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이때 도난당한 일본 그림 등 일부는 용케 돈을 주고 되사갔다고 한다.

 

얼마전 아시히 신문에 한국 경찰 당국의 말이라며 쓰시마의 가진 신사와 간논지절에서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동조여래입상과 현지정 유형문화재 관세음보살좌상을 훔친 일당 8명 중 5명을 검거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아울러 압수한 불상 2점은 한국문화재청이 보관 중이라고 전했다. 내셔널리즘이 발동하면 쉽게 감정적이고 흥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이미 외국에 있는 한국 문화재의 활용과 환수 등을 맡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돼 있다. 큰소리치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천천히 절차를 찾아 해결할 전담 기구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아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당신의 집이 일본이든 한국이든 아마 크게 개의치 않고 그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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