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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박주현 / 손은 쥐면 펼 수밖에 없다

강선학

이 작가를 추천한다(28)

“예술의 많은 역설들 중의 하나는 만드는 행위가 어떻게 만들어 지지 않은 것의 모습을 띠울 수 있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테리 이글턴 (Terry Eagleton)

박주현의 망치를 손 대신 잡아본다. 잡으니 손도 망치도 아닌 일상이 묵직하고 끈적끈적하게 묻어난다. 손 안에 가득 잡히는 것은 조각이 아니라 노동의 곤고함과 삶에 대한 되새김이다. 손 안의 아름다운 세계가 손 밖의 가혹한 의미로 방출된다. 그저 해석의 다양함을 염두에 두면 될 말이지만 박주현의 작품을 볼 때 이 말이 새롭게 새겨지는 이유다.

망치나 장도리의 손잡이에 노동자 자신의 모습, <낚시 하는 김씨>이거나 <실업자>를 새겨놓았다. 때로는 계단참에서 <기다림>에 설레거나 <세발자전거>를 타거나 <별>을 쥐어보겠다고 <사다리>를 오르는 인물을 새겼다. 망치를 쥔 손 안에 노동의 일상과 꿈이 새겨진다. 한 손에 쥐이는 그 작은 공간에서 그가 구현하는 것은 마치 연극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정황이다.



“돈은 그 어떤 가치도 더 이상 자신과 상대가 되지 않도록 한다. 다른 가치들은 지불 행위를 위한 우연적인 근거들로 격하된다.”1) 그러나 노동의 가치는 무소불위의 시장폭력에도 불구하고 돈으로만 계산되지 않는다. 박주현의 손잡이 조각은 그것을 보여준다. 망치나 장도리, 톱이나 호미, 혹은 일상에 필요한 도구들은 손잡이를 필요로 하고 그 손잡이를 매개로 쇠의 날카롭고 무거움이 노동의 정교함으로 이어진다. 손잡이는 나와 노동, 도구를 잇는 매개자이자 한 몸이다. 그것은 돈의 창출이 아니라 꿈의 창출이다.

그 작은 공간. 하필이면 손잡는 부분에다 조각할 생각을 했을까. 모든 것을 손에 쥐려하지만 쥐고 있을 수만 없다. 그 순리는 노동으로서 손의 생산이 우리를 떠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상품이 되고 노동 당사자인 자신을 소외시키듯, 그의 손잡이는 쥐고 있은 그 시간만큼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꾸고 있지 않은가. 그 꿈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는 충족감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위화시킨다.

우리의 노동을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미디어로서 망치와 장도리와 호미와 톱을 선택하고, 그 곳, 손잡이를 새로운 형상을 구상하는 터전으로 바라보는 의미는 그저 조각한 형상의 재미나 신기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선에 있다. 그의 시선이 형상화의 결과물보다 더 많은 의미와 해석을 안겨준다. ‘만들어지지 않은 것’의 모습이 거기 있다.

조각된 손잡이는 이제 손잡이 역할을 못한다. 그 자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를, 그 꿈이 우리의 손 안에 있음을 환기시킨다. 손으로 쥔 것은 그 손을 펴야 무엇이 잡혔는지 보인다. 일상은 펴 보일 때 비로소 보인다. 쥐고 있을 때 노동은 도구일 뿐이다
1) 『구텐베르그-은하계의 끝에서』, 노르베르트 볼츠, 윤종석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0, p.132<박주현(1975- )
부산 동아대 조각과 졸업, 동 대학원 조소과 재학, 개인전 4회, 단체전·기획전 80여회, 2011 부산 중앙공원 야외 작품 선정작가, 현재 또따또가 창작공간 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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