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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박성란 / 서로 다른 이야기

임창섭

이 작가를 추천한다(26)

지난 해 겨울, 못다 읽은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의 『장인(Craftsman)』이라는 책의 프롤로그 제목은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이다. 이 제목은 현대미술에서도 통하는 것은 아닐까. 현대미술이 손을 배제한, 적어도 손의 흔적을 애써 감추려는 일에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알기 때문이다. 기계를 이용하여 손의 노동을 의도적으로 감춘 것이나 혹은 지독한 그리기라고 말하는 극사실주의류의 그림도 기계처럼 인간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미술의 진정한 아이덴티티(Identity-그런 게 있다면)는 손과 머리가 하나로 작동하면서 생각이 동시에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는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가능성을 상정한다. 손의 능력 회복으로 자신의 사고와 주장이 드러나는 작품을 평가하고 들먹이는 소리들이 들리는 것을 보면 이런 소리도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박성란의 작품은 종이에 콘테로 그린 것이다.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렸다, 지웠다 그리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그것도 일반적인 작품 크기보다 크게 그린다. 그녀가 주로 다루는 소재는 꽃처럼 보이지만, 실은 꽃이 아니라 기계의 부속품을 조합하여 꽃처럼 형상화한 것이다. 언뜻 보면 그녀의 그림은 커다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검정색 꽃 그림처럼 보이는 박성란의 작품은 손으로 그린 흔적을 애써 지우거나, 기계의 부품을 물건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사고와 손이 일치되어 그대로 드러나게 만든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소박한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박성란은 강원도에서 공대를 졸업하고, 울산으로 시집을 오고, 대학에서 뒤늦게 다시 그림을 공부했다. 예전에 공대에서 공부하던 경험 때문인지 그녀가 선택한 소재가 기계부품인데, 이것이 썩 괜찮아 보인다. 결국 미술이란 물질에 대항하는 정신이고 또 하나의 물질로 드러나는 것이기에 나는 박성란을 추천한다.


남 추천은 이만하고 오늘 저녁에는 소주 한 잔 덜 먹고, 못 다 읽은 『장인』이라는 책을 다시 손에 잡아야 하겠다. 손에 잡아야 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꼭 머리가 먼저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박성란(1973- )

울산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Allegory-서로다른이야기(갤러리DOT, 2010), 갤러리 A&D 미술상 기념 초대개인전(창 갤러리, 2009), 단체전 CSP111 기획전(CSP111 아트스페이스, 2011)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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