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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김수철 / 느리게 유영하는 ‘빛나는 껌정’

김성호

이 작가를 추천한다(25)

그 많고 많은 작가 중에 한 명을 추천하라니...몇 작가의 이름이 순식간에 후루룩 지나간다. 미술동네의 잘 나가는 작가들 이름은 진작 접어둔 채, 손가락을 꼽아본다. 그래도 많다. 그렇지만 그리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힌 열정 가득한 S씨를 ‘지독한 그리기의 노동력’으로 칭송할 마음이 없고, 전시 끝나면 사라지는 무형의 미술에 온몸을 던지는 프로젝트형 작가 T군을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술가’로 추앙할 맘도 없다.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재기발랄한 O양도, 미술이 안 될 것 같은 재료로 미술을 만드는데 재주가 기가 막힌 ‘재료의 달인’ P형도 접어두기로 한다. 그래, 어제도 오늘도 그저 시꺼먼 그림을 그리는 김수철, 그를 추천한다.

‘빛나는 껌정’의 연금술

그는 시꺼먼 그림을 그린다. 색을 선별한 아크릴 물감과 석분을 한데 섞어 패널 위에 여러 겹으로 올려 바탕을 만든 후, 그 위에 흑연가루를 바인더와 섞어 올려 바른다. 최종적으로 외피를 이루는 꺼먼 흑연의 바다는 그의 회화를 벌이는 물질적 장이자 회화의 지층이 된다. 작가는 그 위에서 사랑과 미움, 애무와 폭력, 베풂과 갈취, 명상과 번민을 혼자서 반복하며 놀이한다. 때론 조각도로 흑연의 표피를 파서 들어 올려 수많은 부조의 비늘을 만들기도 하고, 때론 손가락에 헝겊을 감아 시커먼 표피를 연신 문질러 땡땡이 원형의 흑연광(光)들을 무수히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두 유형의 작업을 하나의 화면 위에 병치해서 다채로운 검정색 향연을 펼쳐놓기도 한다.

그는 ‘시꺼먼 그림’으로부터 볼록과 오목, 더하기와 빼기, 보임과 보이지 않음,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회화와 조각 등 양가적 속성을 매체의 물성과 한 덩어리로 뒤섞으면서 지난하면서도 신비로운 연금술에 탐닉한다. 연금술이란 끝내 실패했지만 황금으로 대별되는 ‘현자의 돌’을 발견하고자 했던 인류의 치열했던 실험과 노력들이다. ‘상상을 현실화시켜 내려는 프래그머티즘으로서의 연금술’은 이 시대가 이미 일상과 똑같아졌다며 내팽개치려는 미술을 붙드는 힘이다.

김수철에게서 그것은 검은 흑연의 표피를 무수히 문질러 ‘궁창 속에 잠재했던 빛’을 해방시키면서 드러난다. 그에게서 ‘빛나는 껌정’은 어둠으로부터 밝음을 실험하는 연금술이 된다. 그가 흑연의 껍질을 조심스럽게 걷어내 관객에게 드러낸 수많은 비늘들과 그 아래 물감층의 속살은 물질과 자신을 괴롭히면서 힘겹게 찾아가는 연금술의 값진 실험 결과들이다. 많은 미술들이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스펙터클로 아방가르드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 그의 ‘빛나는 껌정’은 스스로의 몸을 자꾸 찔려가며 미술의 내부로 잠입하면서 명상의 사유를 실천한다.



시대의 트렌드를 떨쳐내는 느린 유영

그런데, 일견 그의 작업은 오늘날 원로들께서 70년대에 유행처럼 매진했던 작업들의 맥을 잇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나쁘게 말하면 미술 내부로 안주한 채 맴돌 뿐이고, 좋게 말하면 미술의 존재론적 위상을 끊임없이 들쑤시며 고민하는 작업들 말이다. 젊은 사람이 이 시대에 너무 구태의 작품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럴 수 있다. 미술이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해야만 한다는 허망한 요구가 끝내 진리라면 말이다.

난 미술이 대중문화처럼 평범해지거나 반대로 스펙터클이 되어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어야 할 느리게 유영하는 미술’이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오늘도, 내일도 미술 내부에 코를 박고 고민하는 그의 ‘시꺼먼 그림’과 같은 진중한 작업들이 스멀스멀 자라나서 희망이 되어주길 바란다



김수철(1967- )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회화과 졸업. 다수의 개인전 및 시각예술 소그룹의 신 미술문화운동을 위한 포럼-독립작가연구회, 대안공간 눈, 서울현대미술제,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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