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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박경근 / <청계천 메들리>, 철의 순환을 통해 보는 근대의 아픔과 피곤

김백균

이 작가를 추천한다(24)

지난 9월10일 일민미술관에서‘당신과나의삶이이항할때’전이 열렸고, 이때 5채널 비디오작업 한 점, <청계천메들리>가 출품되었다. 이 작품은 영화감독 박경근 이 부산영화제에도 출품했던 청계천 공구상가의 종말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청계천메들리>를 영화가 지닌 형식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다시 편집하고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예술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영화 <청계천메들리>는 표면적으로는 이제 복원되어 다시 맑은물이흐르는 하천이 되어버린, 그러나 한때는 우리 근대화와 산업화의 표상이었던 청계천과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근대적 삶의 모습을 철을 둘러싼 산업화 속에서 파생된 갈등과 아픔으로 그려낸 영화였다.

하지만 비디오작품으로 재구성된 <청계천메들리>는 영화가 지닌 서사적 내러티브를 모두 빼버리고 영상 이미지만으로 우리를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내 눈에는 철광석에서 공구로 탄생하고 또 고철이 되어 그 공구로써의 생명을 다하고 다시 녹여져 다른 공구로 태어나는 철의순환과 일생이 단지 철에 얽힌 산업화에 관한 이야기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철을 다루어야 했던 근대인들의 삶의 모습으로 치환되어 보였다.

철은 근대화의 ‘상징’ 이자 ‘피곤’ 이다

철은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단단함의 대명사이고 우리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끈 산업화의 첨병이며, 경쟁사회에서 최대의 무기였다. 우리는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부족국가가 성립되고 중앙집권제가 이루어지고 힘의논리가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를 밟아왔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바로 그 철의 역사위에 서있다. 박경근감독의 <청계천메들리>는 자신과아버지, 할아버지로 이어지는 가족사적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조국 근대화의 집단적 경험, 일제시대 식민지 수탈을 위한 산업화, 그리고 철에 얽힌 불가사리신화를 통해 초역사적 철에 대한 의미를 묻는다.



철은 청동보다 단단하지만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도처에 깔린 반면 그보다 후기의 역사인 철기시대의 유물은 거의 발견하기 힘들다. 청동기는 어느정도 산화가 진행되어 한번 푸르스름한 산화물에 휩싸이면 더이상의녹이 쓸지 않으며 내부는 원래 그 금속이 지닌 성질을 지니게된다. 하지만 철의 녹은 멈추는 법이 없다.

단숨에 철의 모든성질을 변화시키고 급기야는 철의성질을 해체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게한다. 내가 박경근감독의 <청계천메들리>에서 본것은 강하지만 쉽게 산화되는 그래서 부서져내리는 철의본성이며, 그것이 근대를 살아온 우리의 삶과 겹쳐보여 작품을 보는내내 어떤 미묘한 감정상태에 휩싸여있었다. 그것은 철의피곤과 문명의 피곤, 한국 근대화에 있어서 남성의 피곤이었다. 철의 산화와 문명의 피곤이 겹쳐보이고, 그 타협할 줄 모르는 현대문명의 도발적 그리고 남성적 호전성이 겹쳐 보였다.

철에 녹이 슬듯이 이제 그 문명이 피곤하다. 그 청계천을 이끌던 세대가 피곤하다. 박경근 감독의 <청계천메들리>는 윙윙돌아가는 절삭기의 회전과 용광로의 열기, 쇠를 두드리는 망치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으로 오늘 우리현대문명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곤의 상태와 정도를 전한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묻는다

박경근(1978- )
캘리포니아 주립대 (UCLA), Design·Media Arts학사, 캘리포니아 아트인스티튜트(Cal Arts), Film·Video 석사 졸업. 아트와 영화를 넘나드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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