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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이만나 - 풍경의 깊이, 표면의 깊이

박영택

이 작가를 추천한다(17)

이만나(1971-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독일 브라운슈바익 조형예술대학교 디플롬 및 마이스터슐러 취득, 현재 서울에서 작품활동 중.




이만나는 도시의 야경과 그 안에 자리한 나무, 풀을 그렸다. 차분하고 적조하게 그려나갔다. 익숙하고 잘 알 것 같은 대상들이지만 볼수록 그것들은 낯설고 기이하다. 특히 초월적이고 신비스러움을 고양시키는 밤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관리된 자연의 본래의 생명력과 신비스러운 힘을 분출시킨다. 자신의 일상에서 매번 접하는 이 ‘아무것도 아닌’ 풍경들이 어느 날 그에게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왔다. 그림을 그려나가는 시간 동안 그는 알 수 없는 의문과 지속적으로 대면한다. 결국 그가 그린 것은 특정 대상의 외양이 아니라 그로부터 촉발된 자기 내부의 컴컴한 초상이다. 세계란 주체에게는 늘 수수께끼다. 그러니까 카뮈식으로 말하면 부조리하다. 그것은 우리가 배운 언어와 문자의 틀들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지식은 날 것의 세계, 대상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외계는 내 내부로 들어와 매순간 암전된다. 이만나의 그림은 분명 특정 대상의 재현이고 가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이면을, 세계의 내부를,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를 관습이 아닌 그것 자체로 생생하게 접촉할 때 생기는 생소함을 그리고자 한다. 그러니까 의미가 소멸된 사물 자체를 바라보게 되는 순간, 순전히 보고 있는 그 자체를 그리는 것이다. 기능과 의미가 지워진 자리에는 기묘하고 낯선 이미지만 남게 된다. 그것이 그의 회화의 특징이고 매력이다.



이런 생경한 이미지로부터 사물은 비로소 의미의 대상이 아닌 ‘의미의 주체’가 된다. 알려진 모든 선입견과 편견이 지워진 지점에서의 사물과의 우연한 만남, 맞닥뜨림, 그리고 이로부터 또 다른 가능한 세계와 대면하는 것이 그의 그림이다. 그것은 분명 여기, 이곳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이곳에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있는 묘한 풍경이다. 있으면서 부재한, ‘없지 않은’ 그런 풍경이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과 비현실, 시각과 비시각,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 위치한 모호한 풍경이 되었다. 그는 인간이 감지하는 이 세계 외에 어떤 것을 본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느닷없이, 불현듯 나타나는 것들을 만난다. 현실세계에 비이성적이고 신화적인 세계가 순간 침입한 것이다. 현실은 금이 가고 ‘이격 離隔’된다.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다. 그것을 담아내는 화면은 단지 피부가 아니라 ‘깊은 표면’이다.

낯설고 비현실적인 것을 느끼고 감지시키는 세계의 피부를 깊게 더듬고 있는 그의 그림은 결국 습관에 의해 가려진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유도한다. 여전히 회화를 통해 ‘우리의 일상적인 비전과의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회화는 다시 환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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