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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고(故)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1주기 뉴욕에서 추모전시 열려

이규현

이규현의 美국&美술(12)

“시카고에서 학교를 막 졸업하고 작품을 하고 있던 20대 때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장이시던 이경성 선생님이 해외 한국 작가들을 찾아오셨다가 제 조각을 보고 미술관 소장품으로 사주셨어요. 그 때 전 알려지지도 않았던 젊은 작가였죠. 그런 제 작품을 구입하니까 사람들이 당연히 이유를 물었는데, 이경성 관장님이 그러셨대요. 내 양심으로 샀다.”

지금은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중견 조각가인 안형남(55)씨는 20여 년전 일을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면서,“ 존경하는 이경성 선생님…… 그립습니다”라고 말을 잇는다. 관료들 영향력도 세고 작품 구매 로비도 많았던 1980년대였다. 고 석남(石南) 이경성(1919-2009)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국내에 연줄도 없지만 해외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우리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그 때 하고 있었다. 이미 1970년대부터 뉴욕·시카고·LA 등 한국 미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을 다니며 우리 젊은 작가들을 찾아내 국내에 소개했다. 특히 뉴욕은 이경성 전 관장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한인 작가들도 평생 잊지 못하는‘선생님’
지난해 11월 뉴저지에서 타계한 그의 1주기를 맞아 뉴욕의 한인 미술가들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뉴저지에 있는 리버사이드 갤러리(Riverside Gallery, 관장 윤경렬)에서는‘석남 회고전’(11.9 - 27)이 열렸다. 사람을 즐겨 그렸던 그의‘문자인(文字人)’시리즈 등 작품 140점으로 열린 이 전시 덕에 이경성 전 관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1세대 미술평론가’로 불리는 이경성 전 관장은 1950년대의 유일한 직업미술평론가였고 이후 25권의 저서와 수많은 평론으로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술 전문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냈고 인천 출신으로 1946년에 인천시립미술관을 설립해 초대관장을 지냈다. 2006년에 독녀인 은다씨가 사는 뉴저지로와 가족들과 마지막을 보냈다.

뉴욕에서 작업하는 조각가 한용진씨는 이경성 전 관장을 떠올리며“뛰어난점이수도없이 많은 분이죠”라고 말을 시작했다.“그림뿐 아니라 도자기든 뭐든 보는 눈이 워낙 뛰어나신 분이었어요.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우리 집에 모셔서 차를 대접하는데, 제가 핀란드에서 가져온 귀한 찻잔을 내었더니, 귀신 같이 알아보시고는 찻잔을 한참 만지작거리시며‘참 좋은 찻잔이네’하셨던 게 생각나요. 평생 조용하게 한국 현대미술의 옳은 길을 이끌어준 분이죠. 공무원이 아니라 미술이론가가 국립미술관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셨고, 미술자료수집의 중요성을 처음 일깨워 주셨고…….”



이경성 전 관장은 글 쓰는 것 만큼이나 그림을 즐겨 그렸다. 특히 말년에는 “눈이 어두워 글을 쓸 수 없으니 답답해서 그림을 그린다”며 빈 상자, 나뭇잎 등 붓을
댈 수 있는 곳에는 어디든 그림을 그리곤 했다. 뉴욕으로 오기 전 거처하던 서울 평창동 노인간호센터에서는 복도 한 편을 아예 화실로 만들어 버렸었다.
2006년 뉴욕으로 온 뒤에도 그는 거의 매일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 건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이 전시에는 그가 그리던 도중 먹을 쏟아 종이 중간에는 먹물이 번지고 종이 끝은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채 붓을 놓아버린 마지막 작품도 걸렸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그가 끝까지 얼마나 그림을 사랑하고 가까이 했는지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유족들은“글 쓰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신 것처럼, 그림 그리는 것도 무척 행복해하셨다”고 전했다. 늘 행복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글과 그림을 벗하고 살았기에, 누구나 그를‘로맨티스트’로 기억하고 있다. 그의 그림이 걸린 전시장에 모인 사람들은“관료들에 의해 운영되던 국립현대미술관을 미술 전문가로는 처음 맡았기에 헤쳐나갈 일이 많았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행복하게 일을 하셨다. 끝까지 낭만을 잃지 않고 미술 속에서 행복하게 살다 가신 분”이라고 그를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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