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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역사 속 팝아티스트들의 새로운 모습 부각

이규현

이규현의 美국&美술(7)

처음 만나는 앤디 워홀, 다시 보는 리히텐슈타인…. 뉴욕에서 팝아트를 재조명하고 있다. 팝아트는 ‘미국 현대미술’과 거의 동의어로 쓰여도 될 만큼 누구에게나 익숙한 미술이다. 그래서 뻔한 스타일 같고, 더 이상 파고들게 없는 것 같은 미술이다. 하지만 이 전시들을 보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이 작품 속에서 넌지시 들리는 듯하다. 먼저 브루클린 미술관에서는 ‘앤디 워홀: 마지막 10년(Andy Warhol: The Last Dacade, 6월 18일 - 9월 12일)’이라는 전시로 앤디 워홀(1928-1987)이 1970년대 말에서 죽기 직전까지 그렸던 회화 50여 점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 워홀의 후기 작품만으로 미술관 전시를 기획하기는 처음이다.



앤디 워홀의 후기 구상ㆍ추상화
캠벨 수프 깡통과 마릴린 먼로가 앤디 워홀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이 전시를 통해 확실히 볼 수 있다. 미국에서 팝아트의 인기가 시들해졌던 1970년대 이후 워홀은 오히려 더 다양하게 작품을 많이 했다. 1960년대의 전형적인 팝아트는 더 이상 아니었다. 특히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흔들었던 현대미술의 다른 스타일에서 워홀 역시 영향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장 미셀 바스키아와 합동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전시는 1977~1978년에 그가 그렸던 ‘산화 그림(Oxidation Series)’에서 시작한다. 철과 소변이 섞여 생기는 산화작용으로 독특한 광택과 빛깔이 나게 한 추상화다. 1950년대 미국 미술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를 앤디 워홀이라고 외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기법과 스타일로 그만의 추상화를 만들어냈다. 1982년 바스키아를 만난 뒤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워홀은 손으로 그리는 그림, 구상화에도 다시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후 군복 무늬에서 영감을 받은 추상화 ‘카모플라지(camouflage)’와 유명한 ‘자화상’ 시리즈를 통해 그는 ‘추상/구상’ ‘회화/판화’ ‘표면/내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다루는 재미를 즐긴다.

리히텐슈타인의 정물화 재조명
맨해튼 첼시에 있는 가고시언(Gagosian) 갤러리에서 하고 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 정물화(Roy Lichtenstein: Still Lifes, 7월 30일까지)’ 역시 팝아트 대표주자의 1970년대 이후 작품세계에 초점을 둔 전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의 정물화만 다룬 것으로는 사상초유의 전시다.
워홀처럼 리히텐슈타인 역시 1972년 이후부터 자신의 60년대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물화’에 빠졌다.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화가들처럼 정물화를 통해 사물의 구조를 뜯어서 평면적으로 형상화하는 실험을 했다. 17세기 유럽의 전통적 정물화, 20세기 초반의 입체파, 야수파, 순수파 등 미술사의 과거 거장들에게서 소재와 스타일을 빌리되, 그림에 자신만의 요소를 확실하게 넣어서 과거의 ‘정물화’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현대적인 장르로 만들었다.
미술시장 불황으로 현대미술, 특히 팝아트 같은 장르가 관심에서 잠시 벗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뉴욕에서 하는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는 미국 현대미술 대표 주자들의 새로운 면을 재조명해, 팝아트에 대한 관심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역사에 한 획을 대가들이 그 후에도 쉬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변화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게 곧 현대미술의 정신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전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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