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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남자를 사랑한 영원한 보헤미안

김상채

프란시스 베이컨-성(聖)과 속(俗) 2004. 4. 7 - 6. 30 파리 마이욜미술관


찬란한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거리를 활보하는 경쾌한 사람들의 표정, 요즘 파리의 풍경이다. 몇 일 사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덕에 곳곳의 공원과 세느강, 그리고 노상카페 등으로 쏟아져 나온 인파로 파리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곳 뉴스에서 연일 쏟아내는 이라크 전쟁과 중동의 폭력사태는 이 아름다운 도시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죽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문득 뉴스에서 보았던 이미지, 그것을 시내 지하철 광고판에서 다시 접하는 순간,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반대했던 프랑스였기에 혹시 의도된 광고포스터가 아닐까 하는 무리한 상상을 잠시 해 보았다. 피를 머금고 있는 육질 덩어리가 걸려진 검은 십자가와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 드문 드문 자동차와 사람들이 어슬렁 거리는 뒷배경의 포스터, 프란스시 베이컨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의 단편'이라는 전시회 선전 포스터는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보는 착각을 들게 한다.





지난 4월 7일부터 6월 30일까지 파리의 마이욜 미술관에서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1909-1992)-성(聖)과 속(俗)-전이 열리고 있다. 이미 1971년 그랑 빨레에서, 그리고 1996년 뽕피두 센터에서 열렸던 베이컨 전시회가 다시 파리에서 열리고 있다. 필자 역시 1996년 파리 배낭여행 중에 접하게 된 베이컨 전시회와 2002년 아를르의 고흐센타(고흐 관련 작품과 사진전 위주 전시)에서, 그리고 이번에 파리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 해 뽕피두 센터에서 보았던, 인간의 고통스런 절규와 뭉개진 얼굴, 뒤틀리고 기형적인 신체에서 품어져 나오는 강렬한 표현과 충격은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어떠한 정규 미술교육도 받지 않아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었던 베이컨은 기성의 권위와 관습에 대항하면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일치시켰던 몇 안되는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청소년 시절 이미 신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었던 그는 동성애자가 되면서 기독교의 신성에 정면 도전하게 된다. 이후 가족들로부터의 따돌림과 사회적 눈총을 받아가면서 그가 견디어야 했던 사회적 인습과 고통을 작품 속에 풀어 내면서 자유의 바다를 만난다. 성과 속의 부제처럼 베이컨의 작품에는 양 극점을 내포하고 있다. 성(聖)적 모티브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와 '교황',그리고 속(俗)의 이미지인 풀밭에서 섹스하는 등장인물의 불경스러운 모습, 새장 속에서 울부짖는 고립된 인간들, 베이컨은 불안정하고 예측불허의 대척점에 있는 성과 속의 전통적 개념을 조화로움으로 통일시킨다. 두 육체의 음탕한 행위가 피에타의 고통스런 시선을 나타내는 반면, 예수수난의 장면을 핏빛 고기덩어리나 위협 받는 동물들로 대치시켜 고통스런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베이컨의 예술은 인간존재의 표현에 몰두해 있지만 그것은 두려움과 익명의 무대 속에서 격렬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인간의 전통적인 품위가 제거된 혹독한 존재들이다.




특별한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던 베이컨은 초기에 아방가르드 가구를 만드는 일을 했으며 간간히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후 베를린과 파리로의 여행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기회가 되었다. 당시 사회에서 신의 섭리에 반했던 동성연애는 베를린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고, 1929년 파리에서의 피카소 전시회는 다시 그를 회화작업에 몰두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이후 파리의 그랑빨레에서의 전시는 그를 세계적 대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성장하고 활동했으며 파리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19세기 터너 이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국작가로 추앙받았던 베이컨은 결국 자신이 작품 주제로 차용했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작가 벨라스케스의 스페인에서 갑작스런 심장병으로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베이컨 작품의 주제가 되었던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작품과 한때 존경해 마지 않았던 고흐를 그린 작품, 그리고 주로 50년대 자신이 천착했던 교황 시리즈와 예수수난 시리즈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42점이 출품되었으며 30여넌 동안 베이컨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마이클 페피에트(Michael Peppiatt)가 이번 기획을 담당하였다. 끊임없는 테러와 보복으로 얼룩진 21세기, 전시장을 나오면서 베이컨의 작품과 이라크 전장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야만적인 포로 학대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것은 너무 과민한 반응 때문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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