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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박고석의 <범일동 풍경> (1952)

이석우

전화(戰火)의 불안 속에 피어오른 휴머니티(Humanity)


전쟁이란 잊어버리고 싶은 삶의 주제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자 현재이다. 지금도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곳곳에서 죽음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6.25 전쟁은 우리민족사의 최대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잊어가고 있다. 어쩌면 잊고 싶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의 진행국면은 네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일국면은 6월25일 북의 군이 남으로 공격하여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다. 9월에 이르러서는 부산 방어권만을 남기고 모두 그들의 손아래 떨어졌다. 제 2국면은 유엔군의 참전과 반격으로 인천 상륙(1950.9.15)이 이루어지고 전세는 거꾸로 뒤 바뀌었다. 보름 후에 국군은 38도선을 넘어 서더니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 하였다. 제 3국면은 중공군의 참전(1950.10월 25일) 으로 전세는 바뀌어 남으로 밀렷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내어놓고(12.4) 물러났다. 51년 1월 4일에는 다시 서울에서 까지 철수해야 했으니 이름 하여 1.4 후퇴이다. 유엔군과 국군이 38선을 넘자 소련이 유엔을 통해 휴전을 제의(51.6.23) 했다. 제 4국면은 휴전회담과 그 성립과정이다 (1952.7월-1953.7월27일 )

화가 박고석은 서울이 첫 점령 당 했을 때는 피난을 가지 못했다. 그가 범일동 풍경을 그린 부산에 몸을 의탁한 것은 1.4 후퇴와 함께였다. 박고석의 부산 시절은 국제시장 도떼기시장 거리의 시계 노점상, 문현동에 하꼬방짛기 , 광안리 해변의 밥집내기 등으로 친숙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호물자인 밀가루로 끼니가 이어 지지 않을 때는 영도 바다에 나가 해초를 주어 다가 수제비( 밀가루 죽)와 더불어 끓일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 같은 황량함 속에서도 예술인들의 창조열정은 생명의 불꽃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석도 비록 판자집‘ 아틀리에’에서 그린 그림이지만 그 벽을 꽉 채웠다. 그것들 중에는 아마< 소년과 말>(1951), <영도>, <부산적기부두>, <기차역>,<부산 남포동>(1952)) 등이 들어 있었을 터이다. 역설 적이게도 박고석의 예술인생중 가장 작품을 많이 한 시기 (그의 미술대학 ,동경 시절 의 것은 남아 있지 않아 무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가 아닌가 싶다. 1951년 ‘ 현대한국회화전 ’에 참가 했고 ‘종군화가전’에도 출품했다. 1952년 12월 부산 르네상스다방에서 (지금의 개념과는 달리 그 시절 다방은 문인과 예술인들이 어울려 만나는 문화 공간이자 전시장이기도 했다) 그가 참여한 ‘기조전 창립동인전’이 열린 것도 이 무렵.

1952년 같은 해 부산 피가로 다방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범일동 풍경>이 이때 출품 되었다. 고석의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 중 가장 오래된 아우라 이자 6.25의 황량한 시대상을 담고 있는 전쟁화이다. 그의 그림의 지속적 특성이기도한 두껍고 거칠고 짙은 윤곽선으로 인간군과 집 풍광들의 형상을 잡았다. 범일동의 우울한 얼굴과 풍경. 석양이 내려 비끼는 저녁 으스름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상. 가장이 끼니거리를 벌어서 올 것인지 빈손으로 올 런지 그것은 그렇게 중요 하지 않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보고 싶은 간절함으로 그곳에 섰다. 굵은 선으로 엇갈리게 그어댄 전봇대들이 전체 분위기에 광야 같은 황량함을 더 한다. 내일이 없는 전화의 불안 속에서도 이들에게는 서로가 기대는 사랑의 휴머니티가 있다.

박고석이 서울로 올라 온 것이 1953년 무렵이니 부산에 2년여 이상 머무른 셈이다. 1957년 한묵을 중심으로 함께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한 것은 우리 현대미술의 한 전기를 여는 이포크라 보겠다. 비극은 전쟁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체험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 비극은 더 어두운 그림자가 되거나 창조적 파괴로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박고석은 이 <범일동의 풍경>에서 그런 희망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는 듯하다. 삶과 역사에서 어쩌면 부정의 부정은 끝내 긍정으로 이어 질지 모르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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