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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제와 추천제 무엇이 문제인가

탁계석

‘공모제’와 ‘추천제’, 서로 이름은 달라도 사람이 뽑는 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널리 알려 인재를 구한다는 사실상의 좋은 제도가 간판을 내린 데는 실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급기야 구하고 싶은 인재는 서류 내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원치 않는 사람만 응모해 공모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게 되자 ‘추천제’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관가의 寶刀로 사용해 온 공모제가 용도 페기된 것은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공모제’ 뒤엔 언제나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가 있었고 그 영향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공모제= 짜고 치기” 로 굳어진 현실에서 공모제는 결국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말았다.

그럼 과연 추천제는 공정할까. 문화부가 추천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너무 안이했다. 이번 경우처럼 예술의전당 사장 추천인 6인 가운데 내부에서 2인이 추천되는 해프닝을 보여준 것은 추천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실패 원인이다. 예술계의 인물을 뽑을 경우 우리가 각종 심사, 교수 임용, 콩쿠르 선발 등의 인선작업 경험이 말해주듯 객관성 확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출신 학교는 기초 학교 과정에서부터 선후배 등에 뿌리 깊게 연고가 얽혀 있어 이를 차단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추천제의 경우 勢가 넓은 쪽의 입김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파워 그룹의 몫으로 돌아갈 확률이 크다. 심사위원 중 한 두 사람만 뜻이 맞으면 배제시키고 싶은 사람 얼마든지 탈락을 유도할 수 있는 위험도 추천제는 안고 있다. 추천 전 과정이 실명 기록되어야 하고 의의를 제기 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카더라’ 칼에 소리 없이 억울함을 당할 수 있는 것도 추천제의 함정이다.

그렇다고 무게감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추천 대상에 올려 달라고 나서기도 쉽지 않을 것이어서 인물 선택 입지가 좁아 질수 있는 한계도 추천제가 안고 있는 단점이다. 추천제와 병행해 ‘자천’의 길도 열어 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추천위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는 측면도 있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전문성을 잃을 위험도 있다. 이번의 경우가 그러했다. 예술의전당에 지금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가. 국립오페라단에 지금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가.우선 해당 기관이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방향을 정하는 것이 우선 할 일이다.

이번처럼 성악가만 오페라단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과 시각을 바꿔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이견이 있을 경우도 방향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 하나 궁금해지는 게 있다. 그래도 가장 현장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는 평론가를 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객관성과 종합 정보를 통해 ‘평가’하는 게 직업인 평론가가 배제되는 것은 비판의 수용에 넉넉하지 못한 후진성의 한계는 아닐런지.





금융감독원, 법원, 등 법이 정한 사회 평가기관이 즐비하고 그 기능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것에 비해 법으로 정할 수 없는 예술평가의 권위를 우리사회가 받아들일 날은 언제쯤 일까. ‘비판’이 곧 ‘안티’로 작용하는 사회에서 평론가가 각종 평가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정도 한번쯤 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문화 인물 DB 조차 구축되지 않은 후진성을 설명하는 것만큼 공허한 일이 한 둘이겠는가 . 일 할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정치성, 이미지성을 걸러내는 추천제는 지난날 공모제의 권위 실추란 전철을 다시 밟지 않아야 한다. 추천제가 기득권의 파워 게임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불필요한 권위를 벗고 실용적인 토론 등 새롭고 혁신적인 인재 등용 기법이 도입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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