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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예술의 매력

탁계석

근자에 새롭게 나타난 문화 현상으로 피부에 와 닿는 것이 퓨전(fusion)이다. 기업이 살기 위해 인수합병하는 것을 가르치는 경제 용어이기도 하지만 문화에서는 서로 개성을 허물고 뒤섞여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고 지역의 경계가 사라진 인터넷의 보급으로 가속화하기에 이르렀다. 강한 문화적 호기심이 현실에 적응되면서 한편으론 평등에 대한 욕구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종교적 갈등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들이 있지만 남의 것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혼합의 정신’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본다. 서로 갖지 않은 것. 동경하던 것을 나의 노력에 의해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우리 비빔밥이 인기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참선이나 불교에도 관심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장금이 한류 문화의 홍보 사절 역할을 하는가 하면 반대로 중국의 실용음악이 밀려오면서 우리 국악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춤과 명상음악이 밀려온다. 또 바흐의 음악을 아프리카 리듬에 실어내는 음악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도 이처럼 활발한 문화의 교류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를 우리 예술 현장도 예술 장르 간에 더욱 긴밀한 교감이 필요하다. 경계 허물기를 통해 서로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충실하게 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고 오늘의 세대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부에서는 아직도 자기 영역 지키기에 급급해 문을 걸어 잠그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지역과 지역이 텃세를 내세우는 것은 네트워크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 내부를 살펴보면 더욱 교감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무용 공연은 많지만 무용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무용가들은 이곳저곳에서 음악 창고를 뒤져 필요한 것들을 채집해 쓴다. 통일성이 생길리 없다. 또 요즈음 창작 오페라가 만들어지고 있긴 하지만 베르디나 푸치니가 소설이나 연극 대본을 각색했던 것과 달리 문학적 바탕이 덜한 설익은 대본에 의한 오페라가 급조되고 있다. 특히 지자체의 기금을 타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오페라의 경우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문학이 죽어가는 원인 중의 하나도 시대 흐름을 읽지 않고 안주했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따라서 음식에서처럼 우리가 다양한 요리법을 가지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시장의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공연장이나 미술관의 관객들도 이제 세대가 변했다. 그들의 눈높이와 문화 욕구를 읽고 만들어 내야 한다.

퓨전이 한때 젊은이들의 푸닥거리로 식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체험과 능숙함이 요구될 것이다. 융합의 시대에도 지켜야 할 전통은 전통대로 지키고 그런 한편으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내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서양예술에서 바로크 시대의 춤 음악이 기악음악의 출발점이었던 것처럼 오늘의 교향악단은 또 어떻게 존재하고 변해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늘 기념사진 찍듯한. 판에 박은 합창단들의 무대 모습도 변해야 한다.
<문학. 연극. 미술. 음악은 어떻게 서로 문을 열고 살길을 찾을 것인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 옛날 명동 시절엔 예술가들이 찻집에 모여 서로의 개성을 호흡하면서 예술의 생명력을 꽃피울 수 있었다. 지금 뮤지컬 등 거대한 상업화의 물결이 공공극장의 기능을 위축시키고 있다.

장기 공연이 주민의 감상을 획일화하고 예술가들이 무대를 잃어가고 있다. 갈등과 반목을 씻고 서로 비빔밥 정신으로 무장할 때 거세게 밀려오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우리를 재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다시 세계 시장에 우리 것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연말이면 소개되는 동창회 모임 ‘우리 한번 만나요’가 곳곳에서 일어나 문화의 융합으로 새 문화가 창조되기를 바란다. 큰 것만 지향하던 거대주의나 포장주의에서 벗어나 예술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길만이 우리의 살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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