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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오히려 군사독재정권 시절이 그리운 문화마인드

탁계석

한 달 전쯤인가, 신문에 예체능 과목 내신 성적 제외란 기사가 나자 여론이 들끓었다. 이 일은 서둘러 없었던 일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조삼모사로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하나로 예능교육의 평가를 내신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과외비가 학부모의 부담을 주고 평가를 둘러싼 잡음도 있어 평가방식을 달리 하겠다는 것이다. 평가를 현행의 점수제에서 학습의 패스(pass) 여부만 따지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 그러나 이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지 않아도 벼랑 끝에 몰린 예능교육이 더욱 참담한 상황을 맞을 것이기 뻔하기 때문이다.
맹렬한 우리의 현행 입시교육 풍토에서 점수화되지 않을 평가가 몰고 올 결과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는 사실상의 예능과목 퇴출과 다를 바 없다. 그러지 않아도 제 7차 교육 과정으로 인해 예체능이 벼랑 끝에 몰렸다. 교사의 절반가량이 타 과목으로 전출되는 딱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비교육, 비인도적이기까지 한 교사의 타 과목 전출은 예고된 교사의 자격 박탈을 의미한다. 전공을 해도 가르치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타 과목을, 그것도 고작 몇 달간의 강습을 받아 가르친다는 것이 가능한가. 이는 교권을 유린하는 것이고 학생들의 학습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결국 수업 받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발에 떠밀려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악, 미술, 체육선생님의 슬픈 현실이다. 교사 되는 게 몇 백 대 1도 넘는데...왜 예술이 끝없이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이 힘의 논리다. 눈에 보이는 것만 결실로 여기는 상업 논리가 팽배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을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제7차 교육과정도 상설적인 연구가 바탕이 되지 않았고 고작 4∼5개월의 속성 연구로 처리되었다는 불만이 가득한 마당에 예체능이 또다시 사교육비 경감의 속죄양이 된다면 장차 이 나라 문화는 누가 책임 질 것인가. 그 폐해는 10∼20년 후에 나타날 것이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문화에 관한한 오히려 군사독재정권 시절이 그립다. 이들 군장교들은 그래도 미국 등 상류층 문화를 접해 받아 나름대로 문화마인드가 있었다. 자신들의 독재를 호도하기 위해 문화를 이용할 줄 알았다.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산하 예술단체 창단, 문예진흥원, 예총, 예술의 전당이 만들어진 배경이다.<새마을 운동 여파로 학교는 물론 직장 합창단, 어머니합창단 활동이 절정에 달했다. 한번은 박통이 산하단체의 월급을 100% 인상해 준적도 있었는데 이 후로는 누구도 월급에 관심을 두지 않아 지금은 일반기업 사원의 초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단체들이 즐비하다. 예체능 과목이 내신에서 제외되면 학생들의 정서교육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전인 교육을 통해 21세기 국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상반된다. 말로는 문화 시대가 왔다지만 문화 위기감은 그 어느 때 보다 고조되고 있다. 예술가들의 삶이 팍팍하다. 예술 감상 능력 배양의 최적기가 청소년기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이 감수성의 시기가 암기식 교육에 자리를 물려 줄 수밖에 없다면 창의적 문화 경쟁력은 찾기 힘들다. 국제 사교 모임에 가면 우리와 어울릴 수 있는 나라가 아프리카 정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교양이 없어 문학, 예술 등 대화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게 우리 외교계 현실이라 한다. 이게 웃어넘길 일인가. 부끄러운 우리 지식인, 정치가, 경제인, 사회 지도층 문화교양의 현주소다. 언젠가 교수 신문이 설문 조사를 해 보니 대개의 교수들조차 문화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학창 시절 감상교육을 받지 않으면 후일 틈을 내어 접근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 김영삼, DJ 정부에서 문화는 계속해 내리막길이다. 참여정부에서 조차교육과 문화정책이 어긋난다면 문화의 미래가 암울하다. 동구권이 개방 이후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동요 없이 버티는 것은 모두 문화의 저력 때문이라고 한다. 택시 기사조차 저녁이면 콘서트를 보는 수준이 한없이 부럽다. 국제적인 스타 예술가 몇 몇 나왔다고 문화국가 된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앞으로의 문화는 국민복지와 연계된다. 삶의 질이 확보되려면 긴 안목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한다. 명퇴가 빨라지는 사회에서 문화가 없다면 단조롭고 무료한 사회가 될 것이다.<우리 청소년들은 걸어 다니는‘암기사전’이 아니다. 어려운 때에도 사색과 낭만을 잃지 않고 꿋꿋이 성장하는 탄탄한 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문화 없는 어른들의 대물림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제도가 학부모 인기에 편승한 또 하나의 포퓰리즘이 되지 않기 바란다. 사교육비 경감이란 노대통령의 선거공약에 왜 문화가 속죄양이 되어야 하는가. 학부모 사교육비 경감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그 이유 또한 명쾌하지 않다. 사교육비가 들면 국영수 과목이지 예능 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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