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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관객 개발론

탁계석

연구발표회는 대학에서 하라

몇 해 전 예술대학원에서 ‘관객 개발론’을 강의 한 적이 있다. 학문적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그 필요성이라도 인식 시켜야 한다는 뜻에서 테마를 정했다.
공연이나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에만 의존할 뿐 너무나 소중한 관객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것 같다. 현장 평론가 입장에서는 관객의 반응을 누구보다 잘 살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누구나 한번쯤 ‘OO귀국 독주회’나 ‘OO발표회’에 초대된 적이 있을 것이다. 원어로 프로그램에 지루한 곡목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긴장한 연주가가 애처롭게 느껴진다. 나는 이를 주저 없이 ‘음악 예식’이라 부른다. 예식장이 갖추는 형식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가친척, 동료들의 하례다. 연주가는 무대 뒤의 신부, 신랑 대기 하듯 하고 있을 때 부모들은 하객(청중)을 정중하게 맞는다. 국회의원, 정, 관, 경제, 종교계, 실로 유명 인사들의 화환이 즐비하다. 눈도장만 찍고 가버리는 하객들처럼 중간 휴식 시간에 줄행랑치는 청중들이 적지 않다. 리셉션 장면을 배경으로 기념사진과 비디오를 열심히 찍어 기록으로 남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소중한 관객 개발 기회의 대부분이 천연덕스럽게 관객 모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표회의 성격을 조금만 바꾼다면 관객개발에 한 획을 긋는 변화가 올 텐데 이 벽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솝의 두루미의 식사초대처럼 청중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강사 채용을 위한 제출용 근거 자료 만들기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이런 청중의 체험은 평생, 음악회에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관객 개발이 아니라 돈 들여 ‘관객 내몰기’인 것이다. 앞으로 연구 발표회는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출신 학교 콘서트홀에서 하는 것이 제격이 아닐까 한다. 그간 애써 공부한 유학의 결실을 장려, 아티스트 육성 차원에서 대접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관객 개발이 더 시급한 과제다. 공간이 일회성 잔치에 사용되기보다 관객의 극장 친화력을 확보하는 쪽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철저한 관객중심의 극장운영은 ‘호암아트홀’과 ‘LG아트센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에 대해 극장이 품질에 책임을 지고 이런 신용을 바탕으로 고정관객을 늘려간다는 전략이다.
사실 현장성 없는 문화정책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돈으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인식 오류다. 관객개발을 위해서 바뀌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이는 곧 우리 예술의 방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배운 것을 발표하더라도 관객 배려와 절충하는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대학 강사 체용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프로그램 제출은 폐지되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오디션들 통해 선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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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들의 치열한 경쟁에서 배워야 할 생존전략

양평 집 앞마당 잔디에 풀을 뽑다 생존경쟁의 치열함에 깜짝 놀랐다. 와! 프로 선수들이 다 모였네. 잔디의 번식력을 아는 입장에서 토끼풀, 또 질경이는, 민들레는 어떤가. 민들레 허리는 약하지만 비장의 무기를 가졌다. 공중파다. 조금만 건드리면 그대로 씨를 날려 버린다. 육자회담도 필요 없다. 여기에 히로시마 핵이 터지고 맨 먼저 살아났다게 ‘쑥’이 아닌가. 이름 없는 풀은 자존심도 뭣도 없이 누우면 제 집인 노숙자처럼 뻗어 나간다. 이른 봄 언 땅 에서 맨 먼저 솟는 냉이는 유난히 뿌리가 깊다. 이처럼 야전군들이 득실한 프로세계에서 지하철 한번 타보지 않고 초등학교 때부터 기사가 등하교로 모셔온 왕자, 공주 표 온실의 화초들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생존율이 극히 희박하다. 단지 뭘 모르고 예능을 시키고 그런 가수요가 순환 고리로 돌아갈 뿐이다. 투자비용과 고사 율을 안다면 그리 쉽게는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길이 막히자 이런 현장성을 파악하고 도전하는 그룹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기 길을 찾겠다는 젊은 아티스트들이다.
지하철 공간에서 오페라를 올리며 무대가 없는 음악회를 목표로 하는 ‘삐우 앤 삐우(Piu & Piu 대표:홍상의)’다. 이태리에서 갓 귀국한 ‘바리톤 임준식’도 라이브하게 관객 확보 전선에 뛰어 들었다. 커피숍과 살롱을 가리지 않고 무대 없는 무대에서 노래하며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아가고 있다. ‘내 마음의 노래’, ‘노래의 날개 위에’가곡 사이트에 3,4만 명의 회원이 있는 동호인들의 살롱 음악회 자원 봉사 진행자로 각광받고 있는데 스스로 언더그라운드 성악가를 자처 하는 동안 자기 관객과 연주 기회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의 해설이 있는 가창과 가곡 배우기에 참여한 회원들은 ‘우리들은 완전히 여기에 중독 되어 이제 큰 연주장에는 못 갈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예술의 깊은 맛을 나누는 형식 파괴가 확실한 관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분명 길은 있다. 갤러리 운영을 해보면 결코 갤러리가 드라마 속의 차 한 잔의 풍경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문화’는 멀리서 보면 모두 좋아 보인다. 잔디밭에 그런 전쟁이 있는 줄 잔디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이치다. 평론가를 잡초 내팽개치듯 하는 풍토도 알고 보면 깊은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성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도 사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 ‘잡초 선생’을 모시고. 그래서 때론 마구 뽑힌 ‘잡초’에게 미안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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