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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작은 공간 생명 불어 넣는 살롱콘서트 열자

탁계석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현실
예술계에 깊은 침체의 늪이 드리워지고 있다. 갤러리가 썰렁하고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매일 저녁 수 십 군데서 열리는 공연물들도 매한가지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투자할 돈이 넘치고 공연 티켓도 불티나게 팔린다. 50억 -100억을 들인 블록버스터 수입 뮤지컬이 그것이다. 물론 대박을 터트린 영화의 경우도 흥행성이 보장되는 한 투자가 넘치고 있다.
수입 뮤지컬 맘마미아는 100억원을 들여 4개월 만에 20만의 관중을 동원해 30억원의 흑자를 내었다.
지난번 월드컵 상암 경기장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이어 올봄 ‘카르멘’ 가을에 다시 ‘아이다’가 올라가고 여름엔 디즈니 뮤지컬 ‘미녀와 야수’, 또 내년 여름엔 토니 상 수상작인 ‘프로듀서’와 브로드웨이 팀의 ‘오페라의 유령’이 장기 공연에 돌입할 것이라 한다.
이런 가운데 뮤지컬의 결정판이라 할 ‘라이언 킹’이 제작비만 200억원에 러닝코스트(공연기간에 드는)를 포함해 350억원, 적어도 120만의 관객을 동원할 것이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런 공룡식 투자가 순수 예술엔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차비가 없어 외출을 못하거나 쌀팔 돈이 없어 한숨쉬고 있는 작가들에 가슴에 불만 지르는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것은 대부분의 순수 공연장이나 화랑, 미술관일 것이다. 거대 자본의 흐름에 따라 문화가 요동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순수 작가들의 의욕을 꺾는 일이다.


자업자득의 한계 상황 벗어나 길 모색해야
관객을 울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배우가 수 천 명을 놓고 연기 한다면, 관객의 눈은 걸음마 단계인데 실험성만 강조한 미술경향이 전체를 지배한다면, 자신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세련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독어 혹은 프랑스 원어로 써 놓은 음악회 팜플렛이나 ‘음악논문’같은 ‘연주회 프로그램’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한 것이라야 교수평가에 높은 점수를 준다니 이 웃지 못 할 후진국 형 관행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여기에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거품 심리를 이용한 한탕주의도 시장 왜곡의 원인이다. 야외 오페라는 물론 실내 오페라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하루 저녁 오페라 한편에 40-50만원 실내 오페라도 어느새 20만원으로 강남 집값 뛰듯 올랐다. 문화비 지출 소득세 감면 혜택주면 뭣하나, 결국 있는 사람만 더 이익 주는 꼴 아닌가.
누구누구 그림값이 호당 몇 천, 몇 억이니 하는 것은 쉽게 기사화하면서도 그림 대중화에 포커스를 둔 기사를 얼마나 본적이 있는가. 안 팔려도 좋으니, 아니 이왕 안 팔 릴 것이라면 호당 가격으로 체면이라도 유지하자. 연주회 티켓도 마찬 가지다. 이런 체면치례와 허위의식을 안고 관객이 오지 않는다, 그림이 안팔린다 하면 도대체 누가 잘못인가. 스스로 거리감을 만들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자업자득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시 시작하는 마음, 살롱 콘서트도 대안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살롱콘서트다. 지난해 11월부터 가일미술관을 시작으로 갤러리 코리아, 갤러리 아지오에서 살롱 콘서트를 추진하면서 관객의 뜨거운 호응에 놀랐다. 필자는 평소에 잘 지은 공간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것은 죄악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공간을 작정하고 만들 때는 예술행위를 예상하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영을 못해 놀린다면 소요된 막대한 투자와 열정, 숨은 노력들을 유기하거나 폐기시키는 결과가 된다. 이는 심하게 말해 운영자의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언가. 나는 갤러리, 미술관, 작은 연주 홀 운영하는 사람 모두 숨은 애국자라 생각한다.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어 기쁨 주자는 것이지 때 돈 벌려고 시작한 사람 한사람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실제 그러하다.
나는 공간을 가질 경제적 능력이 없다. 그래서‘소유’보다 ‘활용’을 선택한다. 어떤 공간이든 주인 의식이 발동하는 것은 공간이 활용되어 모두가 기쁨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정신적 공유 의지는 명쾌하게 적중해 가고 있다.
우연히 차를 마시다 발견한 영동전화국 옆 북 카페 ‘에클레시아’나 지난 5월 오픈 한 ‘진 뮤직갤러리’도 그래서 내 수중(?)에 들어왔다.
진 갤러리는 화랑이 아니라 오디오 감상할 수 있는 30명 정도의 작은 콘서트홀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교수의 부친이신 이수진 선생이 만든 것이다.
‘TaKS Salon Concert가 알려지며 이곳저곳에서 공간 활용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닌가. 갤러리가 살아야 화가가 살고 화가가 살아야 문화가 산다. 이런 당연한 논리를 탁상행정이 아닌 현장에서 방법들을 찾고 개발해 가는 것이 평론가의 의무라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의 평론가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으니 무슨 불안한 징조인가. 비평이 꺼지면 신호등이 고장 난 것인데,,, 물론 오작동한 비평의 불신도 씻어야 하고...


그림 음악 잘 팔릴 수 있다
그림이 안 팔리는 것은 고객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에는 있는 팬클럽이 클래식엔 없다. 그 잘난 체면의식과 대학을 의식한 엄숙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시와 그림과 음악을 한꺼번에 전달하려는 나의 욕심이 뭐 그리 잘못되었는가. 시간도 부족한데 한자리에서 세 장르를 동시에 감상한다면 문화 소비자로서는 장르간의 생소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생각을 바꾸자. 소비자의 눈높이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길이다. 국가 정책 기대하지 말라. 기업 지원 기대 말라. 배고픈 사람 뛰고, 목마른 사람 샘 파라. 그래서 나는 나의 시간을 유랑극단처럼 작은 공간을 떠돌며 살고 싶다. 저녁이면 늘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예술의 무한정의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봉사와 나눔의 기쁨이 억누를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땔감 보다 값지다. 내가 탈 때 누가 곁에 있기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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