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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한국의 猝富(졸부)문화 어디까지 왔나

탁계석


2003 화랑미술제에서 만난 사람들
7일간의 화랑미술제가 끝났다. 마지막 날 오후 1시 내가 끊은 티켓 넘버가 01913번이니 2,000명 남짓의 관객들이 온 것 같다. 성황을 이룬 예술의전당 콘서트 하루 저녁 분에 못 미치는 관객이다. 3층 공간의 전시를 보면서 나는 홀로 창작 작업실에서 세상의 혼탁을 벗어나 심혈을 기울인 작가들에게 뜨거운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림과 조각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한껏 몸이 달아오르게 했다. 시간 예술인 음악과 달리 그림 감상은 내가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부분 부분을 반복하기도 하며 때론 건너 뛸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림 산책을 하며 만난 사람과의 대화도 즐거움이다. 문제는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말을 건넬 수 있는가. 말이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말이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 대표들은 한결같이 고통스런 작가의 현실을 토로했다. 내가 음악이야기로 말을 건네면 그 분들은 자신이 아는 음악가나 친구들, 자신의 취미를 말해 정작 미술과 음악이 먼 거리에 있지 않음을 실감케 한다. 캐나다에서 온 작가 ‘석강’이란 분은 부부가 부스를 지키며 열린 마음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원로 평론가 박용구 선생의 오래된 명곡 해설서를 구할 수 없느냐 했다. 마산 동서화랑의 송헌식 회장은 내가 잘 아는 작곡가 김봉천 선생과 조카 바리톤 김휘준을 말해 이내 친숙해졌다. 표 갤러리의 표미선 대표와 박성태 작가의 알류미눔 철망에 대해, 갤러 현대 유영국 전에 대해, 인사갤러리의 정일 작가와도 화랑 콘서트 이야기를, 선화랑의 김창실 대표와 작가 양상훈, 갤러리 서종의 강대철의 ‘틈새’도 인상 깊게 보았다. 몇 해 전 어느 가을, 클래식 강좌 여성회원 열 댓 분을 데리고 작가의 전시장을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앞마당의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자작시 한 편을 건진 기억이 새롭다.
동원화랑의 손동환 대표는 대구에서 작가 장두일, 김창태와 함께 서울 나들이를 했다. 갤러리 썬앤문의 대구 조각가 김종필과도 명함을 받으며 화랑을 다시 들리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런 만큼 이내 오랜 교분이라도 확인한 듯 즐거움에 빠졌다.




졸부들의 방황 눈 먼 돈의 스트레스
그러나 어찌 이것이 나만의 즐거움에 그쳐야 하는가. 화랑미술제가 전 국민의 즐거움이 될 수는 없을까. 아파트 청약을 위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월드컵 티켓을 살 때의 열기는 아니어도 렘브란트나 로댕 전시의 반쯤이라도 관심을 끌 수는 없었을까. 얼마나 홍보되었고 마케팅이 되었나. 가짜, 진짜 분별력도 없는 사람들이 名品에 집착한다.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그래도 미술교과서에서 자기가 들은 적이 있는 작가에 대해 전시 내용과 상관없이 묻지 마 감상 대열에 서려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전체 사회 분위기가 작가의 은유나, 형상화가 먹혀들지 않는 퍽퍽한 현실이다. 일전 신문 1면을 장식한 ‘빌라의 돈더미’같은 직설이 존재하는 것이 오늘의 부패한 정치권력의 현주소니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새로 지은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멀쩡한 바닥을 뜯고 인테리어를 바꾸며 억대를 날리는 풍토에서 최고의 인테리어가 그림을 걸고 조각을 배치하는 것이란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안정된 유럽처럼 중년의 부부가 그림을 감상하고 마음에 들면 남의 도움 없이 그림을 가볍게 살수 있는 분위기는 어제쯤일까. 그림 아는 사람은 돈 없고 돈 있는 사람은 그림 모르니 어느 시인의 말대로 선천성 그리움이다. 결국 교육으로 돌아간다. 예술 감상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그림 대중화는 방법이 없는가. 다시 머리가 무거워진다.

미술관 갤러리 음악회를 열며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반복하면 잔소리가 된다. 아무리 그림 전을 외쳐도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 화랑에 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식이 탄로날까봐, 그림 사라고 할까봐, 전시장하면 손 사례를 친다. 나 그림 몰라. 나 클래식 몰라, 특히 한국의 아버지들, 지위가 높은 분 일수록 자랑처럼 말한다. 그럼 잘 아는 건 여자뿐인가! 좋아하는 건 술 뿐인가! 잘 가는 곳은 노래방인가! 이래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 너나없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늘상 오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그래도 관객 집중력을 가진 음악이 미술보다 한 걸음 앞선 것 같아 음악을 미끼로 한국형 私交(사교) 문화의 새 틀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한편 문화계는 지금 세대교체 중이다. 전 세대는 명동시절이 있어 문화계 얼굴들이 서로가 서로에 익숙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누군지 모른다, 알아도 이름이나 아는 정도다. 우선 만나야 한다. 우리부터 먼저 놀아야 한다. 우리가 노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장르 간 교류가 시급하다. 거창한 예술의 국제 경쟁력은 좀 뒤로 미루더라도 목에 힘 빼고, 함께 팔 걷고, 거품 걷어 내야 한다. 우리 세대가 할 일이다. 후배들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지난 11월 25일 저녁엔 사비나 미술관에서 첼로 4중주가 이곳 후원의 밤에 연주를 했다. 12월부터는 가평의‘가일미술관’과 시청 옆 파이낸스 빌딩 지하에 있는 ‘갤러리코리아’에서 정기적인 음악회를 연다. 제주의 성형외과 김세엽 원장 역시 갤러리 겸 ‘베토베니아 음악감상실’을 차렸다. 또 분당에 문화 리더스 클럽을 만들어 제대로의 상류층 문화를 형성해 보려고 한다. 내년이면 말썽 많았던 파크뷰 등 수 만 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들 집에 대형 이발소 그림이 걸리는 것을. 그래서 문화전도사가 되려고 한다. “누구라도 해야 할일이면 내가 먼저 하자, 언제라도 해야 할일이면 지금 하자. 이왕 하는 일이라면 제대로 하자”라는 어느 분의 인생 메시지를 그대로 받고 싶다. 세상엔 자기를 죽이지 않고 되는 일이 별로 없는 듯 하다. 좀 밀어 주시라. 좋은 의견과 정보를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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