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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이중섭·박수근 위작 누가 그렸는지도 밝혀내야

정중헌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가짜 그림 2,827점을 경매에 내놓아 팔거나 작품 전시회를 열어 수익을 챙기려 한 혐의 등으로 한국고서연구회 고문 김용수씨가 지난 10월 25일 구속됐다. 아직 검찰이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검찰 수사를 근거로 희대의‘이중섭•박수근 위작 사기사건’의 전모도 드러났다. 검찰은 2년여 동안의 다양한 검증 작업을 통해 위작 가능성이 제기된 그림 2,827점과 추가로 압수된 그림 모두가 가짜임을 밝혀냈다. 검찰의 검증 작업은 각계 전문가 10여 명의 감정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경찰과학수사대 등에 의뢰하는 등 철저를 기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그림도 알고 화학도 아는 전문가가 없어 고전하다가 이사건의 피고소인인 명지대 최명윤 교수(문화재보존관리학과)의 적극적인 협조로 사건 해결이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최 교수는 사재를 털어 대학원 석•박사 10여 명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수천 점의 작품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정밀 검증했다. 최 교수는 안목감정을 배제하고 서체 분석(서명과 sign), 종이 산화도 측정, 물감의 개발 연도 대입, 도상 분석 등을 통해 가짜라는 확증을 도출해 냈다. 처음에는 감정협회, 화랑 대표들도 위작 규명에 나섰으나 모두 떨어져 나가고 결국 최 교수 혼자 고군분투해 이번 사건의 실체를 밝혀낸 것이다.

최 교수야 말로 이 희대의 사기사건을 규명해낸 검찰 수사의 일등공신이다. 최 교수 같은 전문가의 집념이 있기에 구렁텅이에 빠질 뻔했던 한국 미술시장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 대한 미진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구속된 김용수씨에게는 사기 미수. 서명 위조, 무고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로 판명된 이중섭의 그림‘물고기와 아이’를 2005년 2월 미술품 전문 경매회사인 S옥션을 통해 경매 입찰이 아닌 방식으로 팔았고 ‘두아이와 개구리’등 모두 5점을 진품으로 속여 팔아 9억 1,9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 소장 그림에 대한 위작 논란은 2005년 3월에 제기됐다. 당시 이중섭 화백의 차남 이태성(일본 거주)씨가 S옥션 경매에 부친의 작품이라며 그림 8점을 내놓았다. 그러자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이를 위작이라고 판정하고 배후 인물로 이태성씨를 지목하자 이씨가 최명윤씨 등을 검찰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사건이 확대됐다.

이중섭 위작 사건의 이면에는 김용수, 이태성씨 뿐 아니라 대학 교수, 방송사, 경매회사까지 관련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가짜로 밝혀진 이중섭 그림으로 전시도 열고 프로그램도 만들고 일부는 옥션과 화랑 등에 유통시켜 대규모 이중섭 기념사업을 하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박수근 화백의 가짜 그림 1,700여 점이 압수된 것이다.

그렇다면 김용수 한 사람 구속으로 마무리 지을 사건은 결코 아니다. 위작 사기사건에 직접 가담한 이태성씨는 일본인이라 구속이 어렵다면 사과라도 받아야 한다. 직간접 관련자들도 수천 점 모두가 가짜로 판정된 만큼 응분의 대가를 치르거나 반성하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예술을 빙자한 이 같은 위작 사건은 일벌백계 해야만 재발을 줄일 수 있다.


위작의 범인은 찾아내야 한다
또 하나의 의문은 2천 점이 넘는 이중섭•박수근 위작들을 김용수씨 혼자 만들어냈겠느냐는 점이다. 검찰 수사 결과 먹지를 대고 사인을 위조하거나 밑그림을 베낀 작품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대량 작업을 70세 가까운 김씨 혼자 해냈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대로 국내에는 가짜 그림 전문 위조범들이 수십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 그림들을 인사동 등에서 구입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검찰수사 결과 위작 중 20여점이 약 50년 전 여중생이 그린 것으로 판명됐다. 이 그림의 뒷면에는 태안중학교 제이학년 李來蘭(이래란)이라고 적혀 있었다. 검찰은 서울 인사동의 골동품을 수집하는 가게에서 이씨의 또 다른 스케치북을 찾아내기도 했다.
<경위가 이렇다면 이 대량의 가짜 그림을 생산한 장본인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검찰은 김용수씨가 서명을 위조하고 옛날 종이에 80년대 이후에 나온 물감으로 가짜를 그린 용의자로 김씨를 지목하고 배후는 추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이 기회에 이중섭•박수근 가짜 그림 위조과정을 철저하게 수사해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아울러 최근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일부 인기 작가들의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가짜 또한 성행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이들 조직을 찾아내 근절 시켜야 한다.

또한 미술품 위작 수사의 비전문성도 드러났다. 미술품 위조는 일반범죄와 구별되는 특수성을 지녔는데 검찰이나 법조계에 이를 처리할 전문 인력이 없는데다 과학적 분석으로 진위를 밝힐 수 있는 전문가외 부족도 드러냈다. 미술품 범죄만을 다룰 전담 인력 양성과 책임 있는 감정기구의 설치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위작 사기는 미술계 공신력을 송두리째 흔들고 시장 질서를 위협하는 대형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화랑이나 옥션 등 피해 당사자일 수 있는 미술계 관계자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 사건의 해결사를 자처한 최명윤교수가 외롭고 괴롭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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