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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쇼를 하라는 광고처럼 예술도 끊임없이 도발하라

정중헌

요즘 TV 광고 중에‘쇼를 하라’가 인기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지만 그 중에도 시골집 부모가 나오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 편이 특히 눈길을 끈다. 연속극은 옆집 가서 보면 된다는 쇼를 하자 TV와 냉장고가 고향집에 배달된다는 내용인데 톡톡 튀는 역발상에 소구력도 강하다.

휴대전화로 화상통화를 하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게임도 하는 세상이니 변화를 따라잡기가 벅차다. 그 와중에서 예술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그런데 공연예술이나 창작미술에서 광고 같은 기발한 역발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새로운 주제, 새로운 접근 방식, 새로운 표현 방법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해석과 실험이 시도되어야 새로운 창작, 새로운 작품이 나오는데 우리 실정은 그렇지가 않다. 새롭지 않으면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대인데도 예술계는 광고만큼의 아이디어 개발이나 과감한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2007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9월 하순에서 10월 중순까지 열렸다. 올해 7회째인 이 연극-무용 페스티벌에는 16개국 38개 작품이 공연되었다. 이중 개막작 ‘집’ (정복근 작, 한태숙 연출)과 해외 연극 3편을 보았는데 우리 공연계가 참고할 점이 적지 않았다.
<라트비아 뉴 리가 극단의‘롱 라이프’는 노인들의 일상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사회 변화에 밀려나 공동주택에서 삶을 영위하는 다섯 노인들의 하루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데도 잠시도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끈끈하면서도 서글픈 잔영을 남겼다. 오래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마치 자신의 내일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싸했다. 이 무의미할 것 같은 노인들의 일상을 연출가 알바스 헤르마니스는 동작 하나 소품 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유의미하게 창조해 냈다. 특히 그들과 평생 살았을 것 같은 가구며 가재도구들이 세월의 빛깔을 생생히 드러내도록 공들인 제작이 돋보였다.

이 연극은 입장할 때부터 관객에게 세월의 궤적을 체험케 해준다. 아르코대극장의 객석을 폐쇄하고 무대에 객석을 만들었는데 관객들은 무대 세트로 지은 공동 주택의 복도를 지나야 객석에 앉을수 있다. 그 복도에도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가재도구들이 놓여있어 관객들은 배우들과 동질감을 갖게 된다. 대사가 거의 없이 마임형식으로 진행되는데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노인들의 연기가 리얼하기 때문이다. 진짜 노인 배우인 줄 알았는데 무대에 불이 켜진 후 본 그들의 맨 얼굴은 30~40대여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작품을 유럽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프루스트 식 리얼리티 쇼’, ‘ 노년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고 극찬한 평이 과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에도 쇼가 필요하다
독일의 베를린 샤우뷔네 극단이 공연한 미국 작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도 무대부터가 고정관념을 깼다. 드라마센터의 큰 무대 절반을 나뭇잎 무성한 화분으로 채웠다. 2층으로 묘사되어 온 무대 세트는 아예 없애고 쇼파 2개와 TV 수상기 한 대만 덩그마니 놓였다. 연출가 루크 퍼시빌은 무대의 나무숲을 현대의 정글로, 정체성의 혼돈으로 묘사했다. 배우들의 캐릭터도 답답할 정도의 뚱뚱한 배우를 쓰는 등 과장하는가 하면 현실의 중압감에 시달리면서도 주인공 로먼이 휘파람을 부는 돌파구를 열어 놓은 점도 이 공연의 특징이다. 하나의 원작이 지역이나 해석에 따라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공연이었다.

일본이 제작을 지원하고 우즈베키스탄, 이란, 인도의 연출가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연출한‘비극의 여인들’은 희랍 비극에 나오는 메데아, 요커스타, 헬렌은 이슬람 시각으로 해석한 실험극이라는 점에서 이제껏 보아오던 공연과 다른 체험을 안겨 주었다. 이제는 국경이 따로 없는 시대다. 아시아의 눈, 아시아적 전통으로 그리스 신화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신선했고, 예술제의 다양성도 넓혔다고 본다. 그런데 대학로 연극 공연장에는 관객이 없어 썰렁하다. 공연예술제 김철리 예술감독의 표현처럼 예술의 기본은 도전인데 ‘쇼’광고같은 기발하고 당돌한 도발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관객을 끌지 못하는 것이다. 미술계도 다르지 않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올해 화랑미술제는 국내작가 위주로 최근 경향을 보였는데 새롭다, 기발하다, 충격적이다 라고 할 만한 작가나 작품은 찾기 어려웠다. ‘쇼를 하라’가 아닌‘끊임없이 도발하라’는 화두가 지금 우리 예술계에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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