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55)김수현 불륜드라마의 반칙과 재미

정중헌

요즘 SBS TV가 방영하는 월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세간의 화제다. 김수현이 쓰는 24부작 이 미니시리즈는 첫 회부터 불륜의 현장을 거침없이 화끈하게 그려내 시청자를 잡아 끌었다. 이종격투기를 뺨치는 여자끼리의 난투극에 욕설까지 난무해 액션 불륜극 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시청률 20%대에 매스컴의 집중 조명까지 받고 있으니 흥행으로 치면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이 드라마의 주 시청 층은 주부들이다. 필자의 아내도 탄성을 지르며 몰입하는 열렬 팬이다. 우리 주위에 있음직한 일을 주저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니 흥미진진하고, 그들이 속으로만 삭였던 감정과 언어들을 직설적으로 쏟아내니 재미가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시청률이 20%대에 머무는 것은 이상하다. 과거 인기 있는 홈드라마나 사극은 시청률 50%를 상회했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와 남성 층을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김수현식 시각에 공감할 수 없다는 젊은 네티즌들의 비판이 적지 않다. 중장년 남성들은 대놓고 말은 않지만 술좌석에 모여 앉으면 불평을 넘어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도 보았다.

신문기자로 일하며 40년 가까이 방송을 취재하고 비평해온 필자가 보기에 이 드라마는 정상이 아니다. 아무리 재미있고 시청률이 높다해도 지상파에서 해야 할 소재가 있고 표현해야 할 수위가 있다. 그런데 김수현 드라마는 이런 관행과 게임의 룰을 깬 반칙을 하고 골을 넣었다고 큰소리치는 격이다. 지상파의 한계를 뛰어넘고 금기를 깸으로써 방송의 공공성과 시청자의 의식을 흔들어 놓았다. 또 시청률에 목을 매는 방송사의 상업성에 시청자가 우롱당한 측면도 없지 않다.

90년대 중반 이후 케이블과 위성방송이 등장하면서 섹스와 폭력의 수위는 걷잡을 수없이 높아졌다. 케이블에는 온갖 요상한 짝짓기와 엿보기 프로가 성행하고, 위성에는 포르노 채널까지 버젓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파 채널은 온 가족이 시청하는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다.

국민 전 계층을 대상으로 종합편성을 하면서 방송심의 규정을 마지못해나마 지키며 체면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상업방송 SBS와 김수현 사단이 느닷없는 뒤통수를 치며 지상파마저 불륜으로 오염시켜 버렸다. 이것은 분명 공공방송의 정도를 벗어난 반칙이다. 아무리 불륜이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지상파에까지 불륜을 노골화했다는 자체가 상궤를 벗어난 위험한 독선이다.

물론 불륜은 다른 드라마에서도 수없이 다뤄온 소재다. 그때마다 논란이 일었지만 이번처럼 적나라한 표현과 대사는 하고 싶고 할 수도 있었지만 자제해온 상태였다. 이 드라마는 첫 회부터 선정적인 노출에 과감한 성적 행동을 묘사하는가 하면 원색적인 육탄전을 서슴지 않았다. 불륜의 당사자인 주인공이 한술 더 떠“뭐가 어때”라는 식으로 도발적인 대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 지상파 불륜, 이대로 둘 것인가
이런 소재나 표현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문제 삼을 게 없다. 케이블과 위성이라면 또 모른다. 그런데 지상파를 통해 전 계층에게 노출하는 것은 아직 이르고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 우선 시부모나 남편과 함께 보기가 민망스럽다. 방영시간대가 밤 10시대지만 요즘은 심야가 아니라 골든아워라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도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어 주부들이 마음 편하게 시청하기도 어렵다. 그렇잖아도 청소년들에게 껄끄러운 장면들이 많은데 요즘은 아이까지 등장시켜 불륜과 가정위기를 당연시하는 대목에선 기가 질릴 정도다. 중장년 가장들이 이 드라마를 못 마땅히 여기는 것은 불륜을 일반화하고 있기 때문이고, 20대 남녀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해법이 진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당당하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불륜을 하나의 사건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불륜 자체를 쓰고 있다'고 했다. 불륜을 미화하거나 매도하려는 게 아니라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성 담론, 그 중에서도 섹스가 결부된 불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나 성이 개방된 나라의 지상파에서 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 터부를 그리면 시청률이 오르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작가는 남이 시도하지 않는 선정성이나 감정적 폭력과 욕설을 원색적으로 쏟아내는 것을 차별성이라고 주장한다.

김수현이 구사하는 독침 같은 대사들은 일부에겐 후련할지 몰라도 성차별적 성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남자에게 퍼붓는 대사에 적대감과 포한이 묻어나 섬뜩하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지상파 드라마의 표현이나 대사는 매체 수준에 맞게 신중히 선택하
고 걸러야 한다.

과거에도 불륜드라마는 틈새만 보이면 비집고 나왔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힘으로 이런 드라마를 규제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방송프로그램 심의를 맡은 방송위원회의 기능은 마비된지 오래다. 완충역할을 하던 저널리즘 비평마저 사그러 들었다. 비판의 목소리도 다뤄야 할 매스컴들은 오히려 작가의 용기(?)를 부추기고 시시콜콜 화제 만들기에 치우쳐 있다. 정말 독이 있어도 가려낼 방법이 없는 지경이다.

<내 남자의 여자>는 회를 거듭하면서 누그러들긴 했지만 불륜의 행태와 여파를 지상파에 몇 달씩 보여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요즘 미국 드라마가 인기라지만 케이블을 통해서고 표현 역시 세련됐기때문에 별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원한다고 다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지상파 방송의 숙명이고 한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