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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문화예술 활동 마비시키는 월드컵 쏠림현상 이제는 극복해야

정중헌


2002 한ㆍ일 월드컵에서 한국은 기적 같은 4강 신화를 일궈냈다. 붉은 악마가 발화시킨 전 국민 응원전은 서울 시청 앞을 붉은 바다처럼 출렁이게 했으며 모두 하나 되어 짜릿한 흥분과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월드컵이 열리기 한 달 전만 해도 국민들의 관심은 냉랭했다. 32개국 깃발이 나부낀 거리의 분위기도 무덤덤했다. ‘지구촌 축제’라는 수사가 무색할 정도였다. 한쪽에선 월드컵을 동네축구쯤으로 여겼고, 또 한쪽에서는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축구 쇼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첫 대결에서 한국 팀이 폴란드를 누르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우리는 해냈다는 자신감에 불타올랐고 응원의 열기는 전 국토를 달굴 만큼 뜨거웠다. 한국은 16강 진출이라는 국민적 염원을 달성했고 파죽지세로 8강에 올랐으며 믿기지 않을 4강 기적을 이뤄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
<4년이 지난 요즘 독일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다시 월드컵 열기가 달궈지고 있다. 4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고 축제에 열광하고 싶은 국민적 염원이 자연스레 응집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자발적이어야 하는데 한편에선 국민의 순수한 애국심을 상업주의에 이용하고 있다. 광고가 대표적이다. 요즘 TV를 켜면 온통 붉은 물결이다. 태극기를 심볼로 삼아 애국가로 분위기를 고취하는 월드컵 소재 광고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주제도 좋고 제작 기법도 빼어나지만 컨셉이 너무 직설적이고 자극적이며 상업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애국심에 기댄 광고계의 이런 쏠림 현상은 일시적일 것이다. 문제는 그 현상이 광고나 TV 편성의 선을 넘어 문화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6월의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문화계는 5~6월 스케줄이 텅 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화와 TV 드라마를 비롯해 연극 음악 무용 등의 공연계 전반에 월드컵 피해 가기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월드컵기간 문화계는 직격탄
6월 한 달 지구촌을 달굴 월드컵 시즌을 영화나 공연 기획자들이 기피하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5월도 피하려는 것은 이미 그때부터 국민적 관심이 월드컵에 쏠리게 되면 화제 만들기나 홍보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중 몇 편은 월드컵 특수를 역이용하겠다는 발상으로 6월 개봉을 감행할 태세나 대다수는 4월이나 5월초로 앞당기거나 7월 이후로 미루는 추세다.

드라마 외주제작 역시 월드컵을 피하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6월 초에서 7월 초까지 월드컵이 개최되는 시기에 지상파 TV의 편성은 한국 대표 팀 경기는 물론이고 빅게임 생중계에 치중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밤 10시대 미니시리즈들은 월드컵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본선 경기가 우리 시간으로 밤 10시~ 새벽 4시대에 열려 이 시간대 드라마들은 결방되거나 타사 월드컵 중계와 맞물려 고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작진의 판단이다. 특히 방송사에 미니시리즈를 납품하는 외주 제작사들은 6, 7월은 무조건 피하자는 전략이다.
<공연예술계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그렇지 않아도 관객이 오지 않아 썰렁한 소극장 공연들은 6월 한 달을 포기해야 할 형편이다. 대형 뮤지컬들도 이 시기를 피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고, 국공립 대극장의 기획자들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월드컵이 열리는 6월 한 달 온 국민이 한국 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월드컵에 열광하는 현상을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부작용이 일듯이 월드컵 쏠림 현상 역시 너무 지나치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획일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4강 신화로 축구팬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인구도 엄청날 것이다. 4년 전에도 TV가 축구 열풍에 휩싸여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층들은 볼 프로그램이 없다는 불평을 쏟아냈다. 요즘 넘쳐나는 월드컵 주제 TV 광고를 곱게 안보는 층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쏠림 현상이 좀 과한 나라다. 인구 5000만 명이 안 되는데 10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한국영화가 3편이나 된다. 그걸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다양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월드컵 기간 중에 축구경기 관전이나 응원에 열광할 사람들은 그렇게 하되 축구에 흥미가 덜 한 사람들을 위해 문화예술 활동이 중단되지 않아야 하며 그렇게 되어야 한국은 조화로운 나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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