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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만물상] 클레이아크(Clayarch)

정중헌

중국 한(漢)나라 때 가형 명기(家形 明器)는 당시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망자(亡者)가 살던 집을 흙 모형으로 만들어 무덤에 넣어준 부장품(副葬品)인데 주택을 비롯해 방앗간, 축사, 정원, 누각까지 갖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박물관에도 조상들이 흙으로 빚은 다양한 생활도구가 전시돼 있다.

▶흙은 예부터 건축자재로 요긴하게 쓰였다. 고구려의 수막새, 백제의 산수(山水)무늬 벽돌, 통일신라의 짐승얼굴무늬 기와 등은 조형미가 뛰어나다. 서양에서도 벽돌과 타일이 발달했고 최근엔 세라믹이 건축재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철근 콘크리트가 휩쓸고 신소재가 개발되면서 흙은 사용처가 줄어들어 건축과 멀어지는 추세였다.

▶흙(Clay)을 건축(Architecture)에 다시 접목시키는 시도가 경남 김해에서 시동을 걸었다. 지난 주말 개관한 클레이아크(도자와 건축의 합성어)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인 데다 그 발상과 가능성이 현대 건축과 디자인에 혁명을 일으킨 바우하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바우하우스가 공업기술과 예술의 통합이라면 클레이아크는 건축과 예술의 결합이다. 기술에 내맡겼던 흙에 인간 감성이 깃든 예술혼을 불어넣어 ‘예술건축’의 시대를 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이 운동의 주도자는 도예작가 신상호 관장(홍익대 교수)이다. 1970년대 분청사기로 이름을 날린 그는 도자(陶磁)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조(陶彫)를 시도해오다 ‘구운 그림(Fried Painting)’을 건축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로 발전시켰다. 흙판에 다양한 빛깔의 유약으로 원시문양을 그린 뒤 1300도 고온 가마에서 구워낸 불그림으로 건물 외벽을 장식했다. 타일처럼 붙이지 않고 알루미늄 틀에 끼워넣는 방식이어서 싫증나면 건물의 옷을 갈아입힐 수도 있다.

▶흙과 건축의 결합은 서구에서 연구되던 과제였다. 그런데 김해시가 신상호 관장을 영입해 클레이아크라는 세계적 미술관과 기념탑을 만듦으로써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됐다. ‘불그림’도 새로운 것은 아니나 기법에서 신 관장이 특허를 따내 ‘건축도자’라는 광활한 지평을 열었다. 머지않아 건물 전체를 세계 유명 상표로 디자인한 건축물도 나올 전망이다. 흙이라는 풍부한 자원과 예술을 통합한 친환경 클레이아크야말로 창의력의 개가가 아닐 수 없다.


- 조선일보 2006.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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