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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환경조형과 건축미술에 새 바람 일으킨 광화문 금호아시아나 사옥

정중헌

서울 광화문 오피스 거리에 신축된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가 서울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새문안길 쪽에서 보면 낮에는 빌딩 뒷면 외관에 건축도자 아티스트 신상호의‘구운 그림’으로 장식한 건축미술‘책가도’가 시민들의 눈길을 끈다. 밤에는 빌딩 뒷면에 설치한 LED 조명이 빛을 발하는 전광판에 특수영상 기법으로 연출한 컬러 이미지들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휘황한 빛의 향연을 펼친다.
2006년 경남 김해에 건축과 도자의 접목을 시도한 클레아크 미술관을 태동시킨 신상호 관장(전 홍익대 미대 학장)은 새로운 건축도자 소재로‘구운 그림’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대형 규격의 도판에 원시성인 강렬한 기하하적 문양을 그려 넣어 고화도(高化度)에서 구워내‘구운 그림’이라고 이름 붙인 이 도화(陶畵)는 독립적으로 또는 군집으로 벽에 걸거나 천장 또는 바닥에 설치하면 예술작품이 된다.
신 관장은‘구운 그림’을 건축용으로 개발하여 규격화했다. 건축물 외관에 알루미늄 틀을 부착해 도판을 끼워 넣어 외벽을 장식하는 공법은 특허까지 냈다. 이미 클레이아크의 상징탑과 미술관 외벽에 시공된‘구운 그림’은 세련된 문양과 불이 빚어낸 독창적인 색채로, 도자와 건축 양면에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특히 도자를 통해 재료의 다양성과 예술성 뿐 아니라 인간이 옷을 갈아입듯이 건축의 외관을 바꿀 수 있는 노하우로 현대 건축문화에 획기적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신소재‘구운 그림’이 서울 도심의 대형 건물 외벽과 실내로 진출 했다. 서울 광화문에 신축된 금호아시아나 본사 건물과 강남역 인근 서초동에 신축 중인 삼성 본사 빌딩 내부에 신상호의 도자건축 작품이 완성돼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광화문의 건축미술은 우리 전통 민화의 책거리를 현대적 색채로 조형화시켜 친근감을 더하고 있다.
밤의 벽면 갤러리는 홍익대 디자인학부 이정교 교수가‘디지털 아트 캔버스’라는 개념으로 만들어‘MoKA(the Museum of Kumho Asiana)’라는 이름을 붙였다. LED를 이용한 영상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로 가로 23m, 세로 91.9m(5~27층)이다. 요즘 매일 밤 7~11시 시험 가동 중인데, 서울의 영문 알파벳에 단청 색깔을 입힌 <퓰립 S.E.O.U.L>등 26개의 미디어 아트 영상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대형 건축물에 환경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미술 장식을 한 지 오래다. 강남의 테헤란로의 대형 빌딩 숲에는 각양각색의 조형물들이 줄지어 있을 정도다. 1995년에 완공된 대치동의 포스코 본사는 초현대식 유리 건물과 예술품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건물 전면에 프랑크 스텔라가 고철로 만든 <아마벨>이 놓였으며,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으로 꾸민 1층 로비 아트리움은 공연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상암 DMC(Digital Media City)에도 신개념의 모뉴먼트가 세워져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왕십리역에 건설 중인 민자 역사(民資驛舍) 비트프렉스는 역사 한가운데에 자리한 상징탑(높이 88m) 정면 벽에 높이 80m, 폭 8m의 아트 월(art wall)을 설치하고 있다. 신용산 개발에도 새로운 장르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가 관건이 되고 있다. <새문안길 새 볼거리

이 같은 추세에서 금호 아시아나 본사의 미술 장식이 주목을 받는 것은 수동형이 아니라 능동형이고, 매체 혁명에 따른 미디어 아트, 클레이아크 등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건물설계 단계부터 클라이언트가 건축과 미술의 접목에 참여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이 신상호 작가와 이정교 교수를 만나 특별히 주문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 교수에게는 뉴욕의 타임스퀘어 전광판처럼 서울의 삭막한 야간 환경을 예술적으로 바꿀 수 있는 랜드마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술 장식을 한 빌딩들이 들어선 새문안길 남쪽에 새로운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이 일대에는 번듯한 길이 없었는데 건축주들이 내놓은 조각 땅들을 이어 4차선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시티은행 진입로부터 흥국생명, 금호아시아나, 세안빌딩, 오피시아를 지나 광화문빌딩 뒤 편까지 도로가 생긴 것이다. 서울시는 이 길은 청계천 광장으로 이어 새로운 문화지대를 조성할 계획이다.
새문안길에는 이미 새로운 볼거리, 먹거리와 지적 호기심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인근에 덕수궁과 서울시립미술관이 있고, 흥국생명 빌딩에는 시네큐브와 일주아트하우스 그리고 서울의 명물인 대형 움직이는 조각 <망치질 하는 사람>(키 22m, 무게 50t. 미국의 설치미술가 조너던 보로브스키 작품)이 있다. 건너편에는 서울 역사박물관과 금호아트홀 등이 세종문화회관과 연결된다. 이 길이 청계천 쪽으로 이어지면 교보문고, 파이낸스센터도 이용할 수 있는 도심의 문화지대가 될 수 있다. 조성 중인 광화문 광장을 거쳐 인사동, 삼청동, 대학로와도 소통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에는 지금 디자인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콘크리트에 색칠을 한다고 도시의 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공공미술을 통한 시민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자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현행 환경 조형물 정책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금호아시아나의 사례는 지금 같은 환경물이 더 늘어날 필요가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서울시나 문화관광체육부도 세금을 투입해 흉물을 만들지 않으려면 관 주도가 아닌 시민 중심의 디자인 소통 정책을 펴야 한다.
건축에 세라믹 신소재가 등장하고, 시각예술에도 디지털아트, 멀티미디어 아트가 대세를 이루는 만큼 환경조형물과 건축물 미술장식의 영역도 대폭 확대 개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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