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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항률 / 최저 형상으로 최다 감상 주기

강철

'나에게 그림이란 언제나 바깥세상으로 내닫는 문을 굳게 잠그고 지루하게 가면놀이에 몰입하게 되는 독백의 방이다. 번잡한 생각들이 서로 대끼며 소용돌이 칠 때면 자발적인 심상(心象)의 소재들이 너울너울 날아와 모양새와 빛깔을 짐작하게 하고, 되레 그것들은 무어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속삭여대곤 한다. 공허한 질책과 메아리로 가득한 나의 밀실에 스스로 윤곽을 매몰시키는 새벽 안개처럼 침묵이 고여들면 확실한 물음표 대신 포괄적인 상징과 은유로 메워지고, 이에 기꺼이 혼자말로 되뇌다 보면 어렴풋이 결정지어진 형상들이 제자리에 찾아들게 된다. 정작 내가 삶을 향해 솔직한 마음으로 보려했던 것은, 아련한 추억속에 갇힌 낡은 상념의 찌꺼기도 아니며, 서로 상반된 모순의 아이러니로 뭉쳐진 수수께끼 같은 자아도 아니다. 결국 그림은 화려한 치장을 벗겨내고 삶의 원형으로 환원되기 위한 도구일 따름이며, 질척거리는 세상살이 주변을 배회하다 뜻하지 않게 들여다 본 꿈같은 삶의 초상일 뿐이다.' - 작가의 생각




<박항률 그림에서 빡빡머리 소년은 1990년대 이후부터 등장하였습니다. 그의 그림에선 소녀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녀 또한 새·나비·잠자리·말·물고기·꽃·나무·배·탑·구름·항아리·탁자·거울·칼·부채·베개·등잔불·화롯불 등 서정적 소재와 함께 등장합니다. 무표정한 인물은 침묵과 명상으로 일관하고, 아무것도 없는 풍경은 오직 색감으로 인물과 오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신화적이고 동화적이며 영혼의 갈증을 풀어준다고 평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의 진정한 가치는 어느 그림보다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불어 일으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고 단순한 형상의 구상화가 어느 추상화보다 여러 감상들을 끌어옵니다. 그것은 뇌리를 스치는 찰나의 무엇도 아니고, 엄청나게 강렬한 충격도 아닌 듯 합니다.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치밀한 유도장치가 아닌, 마치 뭉개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적막·기억·느낌·상상 등등. 최저 형상으로 풍부한 깊이를 주는 효과적인 그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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