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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천제연폭포 칠선녀 알몸, 허수아비 엿보기

최열

천지연이 열려 큰 폭포 흐르니        天池淵開大瀑流

옮겨 온 돌무더기로 깊은 못을 둘렀네     移來叢石壁深湫

공중에선 화살 진 허수아비 걸어가니      空中負箭芻人步

가장 기이한 볼거리는 바로 활쏘기라지     第一奇觀此射侯


- 임관주(任觀周, 1732-1784 이후), <화살 진 허수아비[芻人]>

  


1973년 한국관광공사가 서귀포시 중문동 주민에게 계속 버틴다면 토지를 강제수용 하겠다고 윽박하여 일대 93만 평을 헐값에 사들이고 개발에 착수했다. 오늘날 중문관광단지의 기원이다. 제주여행 때면 신라 또는 롯데호텔에 머무는데 처음엔 그렇게 개발한 관광지대인줄 몰랐다. 알았다고 한들 피해가진 않았겠지만 그 역사나마 떠올리며 터전을 빼앗긴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나마 빌곤 했다. 중문천과 색달천이 합쳐 흐르다가 이곳 중문관광단지 입구쯤에 이르러 쏟아지는 폭포, 천제연(天帝淵)을 지나칠 때면 꼭 그 생각을 했다. 


성천포(星川浦)에서 베릿내를 따라 거슬러 오르다 보면 커다란 삼단폭포가 눈앞에 휘황하다. 상단은 높이 25m의 거대함을 자랑하는데 천제란 말 그대로 하늘의 제왕이라 아마도 옥황상제(玉皇上帝)의 폭포란 뜻이 아닌가 싶다. 둘레가 50m에 이르는 못이 맑고 푸른 옥과 같아 옛날 옥황상제의 일곱 딸이 깊은 밤에 내려와 목욕을 하곤 했는데 감히 뉘라서 볼 수 있을까만 칠선녀(七仙女)의 알몸 훔쳐보고 견딜 수 없어 자살한 총각이 저절로 되살아나곤 했다는데 정작 선녀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 선녀의 전설이 아니더라도 더욱 신기한 것은 이 폭포가 속과 겉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장마 때는 두 겹 짜리가 되었다가 장마가 걷히면 겉이 마른 채 속폭포만 쏟아진다. 이 때 겉폭포는 벼랑에 가려지는데 문득 바위 틈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기묘하다. 이것도 계절따라 바뀌는 풍경이라 사람마다 다른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또한 예부터 신경통이며 피부병에 좋다고 소문이 나 찾아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하단폭포에는 은어(銀魚)가 무리를 지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장면이 장관이라지만 때를 맞춰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김남길이 그린 이 그림 <현폭사후(懸瀑射帿)>에 잘 나타나 있듯이 계곡엔 숲이 울창했다. 담팔수나무를 비롯한 일백 여종의 난대림 식물이 우거져 있거니와 담팔수나무는 그 나이 100년도 넘었다. 숲은 온통 신비롭다. 갖은 식물 이름도 기이하다. 희귀한 송엽란(松葉蘭)과 더불어 상록수(常綠樹)로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참식나무, 가시나무, 빗죽이나무, 감탕나무 그리고 푸조나무, 팽나무가 섞여있고 덩굴식물로 바람등칡, 마삭줄, 남오미자, 왕모람이 자라나며 관목류(灌木類)로 자금우, 돈나무, 박량금이 있고, 반치식물(半齒植物)로는 석위, 세뿔석위, 일엽, 바위손이 있는데 모두 기묘하여 웃음 지을 만하다. 


그림 <현폭사후>는 윗쪽과 아래쪽 두 개의 폭포를 중앙에 연이어 배치하고 양 옆을 나무숲과 더불어 검은 색면으로 가득 채워두었다. 특히 화폭 상단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내고서 폭포 입구로 휘어들어 천제연으로 빨려들게 해서 실감난다. 특히 도로가 삼각지로 갈리는 곳에 ‘지경(地境) 대정(大靜)’이라는 글자를 써 넣어 방향 감각을 주었다. 


천제연을 그린 그림이 또 한 점 있다. 붓이 아닌 손가락에 먹을 묻혀 그리는 지두화(指頭畵)의 명가이자 사족 문인화가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 1764-1845 이후)의 작품이다. 윤제홍은 천제연폭포에 이르러 쏟아지는 물줄기와 거대한 절벽을 보고서 그 끝없는 장관을 일러 기관(奇觀)이라 표현했다. 감흥이 치솟았던지 흥건한 먹으로 쓱쓱 그어 내린 다음,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에 짙은 먹을 이곳저곳 찍어 활기를 불어 넣었다. 힘들이거나 꾸미지 않으려는 윤제홍 특유의 형식을 보여주는 이 <천제연도(天帝淵圖)>는 문인화의 절정이라 윤제홍이란 화가가 천제연을 그릴 수 있음이 행운인지, 거꾸로 천제연이 윤제홍을 만난 것이 행운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폭포보다 활쏘기 행사가 훨씬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유배를 왔다가 천제연을 유람한 임관주(任觀周, 1732-1784 이후)가 활쏘기를 읊조리자 그 시를 바위에 새겨두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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