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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동빙고와 서빙고,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

최열

물이 줄고 흐르지 않아 얼음이 꽁꽁 언다오                    水渴不流氷大至于是

많은 인부들이 떠낸 얼음 짝 강 위에 산같이 쌓이니                斬氷萬夫出鑿之如山江上

강 위에 놓인 두 빙고의 얼음더미가 십리만큼 서로 바라다 보이는구나       置江上兩氷庫相望十許里


- 김창흡, <벌빙가(伐氷歌)>, 『삼연집(三淵集)』


강세황, <서빙고>, 1784, 종이, 49 × 64 ㎝,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지금 서빙고동 옆 동빙고동은 서빙고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그렇게 불렀을 뿐, 실제의 동빙고는 옥수동에 있었다. 동빙고(東氷庫), 서빙고(西氷庫)는 모두 관청에서 운영하는 관설빙고였고 이에 대응하여 민간에서도 얼음 창고를 운영하였다. 별도의 기록이 없지만 많을 때는 30여 개의 사설빙고가 즐비하였고 아마도 이게 지금의 동빙고동에 몰려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1786년 얼음 창고 업자들의 조합인 빙계중(氷契中)에서 사설빙고를 모두 없애고 8개만을 남겨두었다. 이에 따라 장안의 얼음 값이 폭등하여 창고업자들은 폭리를 취하였고 얼음이 필요한 어물(魚物) 상인들은 재앙을 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유사 이래 최초의 빙고사건이라 이를만한 사건이었다.


동빙고의 얼음은 종묘와 사직의 제사 때만 사용했으므로 규모도 매우 작았지만 서빙고의 얼음은 궁궐부터 주요 관청에 공급했기 때문에 동빙고 규모의 8배 가량이 컸고 저장하는 얼음의 규모는 무려 13배나 많았다. 관리하는 관원의 숫자도 동빙고는 10명이었지만 서빙고에는 40명을 배치해 두었다. 하지만 그 의미로는 종묘와 사직의 제사가 훨씬 중요했으므로 동빙고 쪽에 사한단(司寒壇)을 설치해 두고 얼음과 관련한 제사(祭祀)를 올렸다. 그러나 동빙고건 서빙고건 그 일대에 부군당(符君堂)을 설치하고 귀중한 얼음 창고를 지키려 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해동 강서시파의 한 사람인 성현(成俔, 1439-1504)은 『용재총화(傭齋叢話)』에서 얼음 창고 운영에 대해 자세히 써 두었는데 한강 물이 네 치의 두께로 얼면 대규모 군인들이 파견을 나와 얼음을 채취하였다. 이미 여름에 오리섬[鴨島*난지도 또는 저자도]의 갈대를 수도 없이 베어다 창고 안 바닥과 천정, 사방 벽을 온통 막아두는데 볏짚과 솔가지를 포함하여 저 갈대는 창고 안의 온도를 유지시켜 녹지 않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강변에 장작불을 여기저기 피워놓고 침몰과 동상에 대비하였고 의약품과 의원들도 갖추어놓았다. 얼음 채취를 말하는 벌빙(伐氷)은 칡으로 꼰 새끼줄을 얼음 위에 깔아 두고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도 하고 또 끌어당기기도 하며 이뤄졌는데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라고 해도 쉽지 않았으므로 인근 익숙한 민간인들이 캐낸 얼음을 구입해서 할당량을 채우기조차 했다. 얼음 채취 기간은 아주 짧았다. 녹아버리기 때문이었는데 그 짧은 몇일 동안의 저 풍경은 얼음판 위로 펼쳐지는 기이한 장관이었다. 


서빙고 땅은 세조가 대군시절 꿈을 키운 요람이었다. 나루터 위쪽 강변에 창회정(蒼檜亭)이 있는데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이곳에 자주 놀러와 머물곤 했다. 어느 때인가 여기서 권람(權擥, 1416-1465)이란 인물을 만나 신임하였는데 권람이 한명회(韓明澮, 1415-1487)를 소개하여 이들의 지략으로 끝내 왕위에 등극할 수 있었으니 이곳 서빙고는 세조에게 특별한 땅이었다. 그래서 왕이 된 뒤 창고 앞쪽 강변 모래사장이 펼쳐진 곳에서 군대의 훈련 상태를 점검하는 열병(閱兵)을 여러 번 되풀이 하였다. 빙고사건이 일어나기 두 해 전인 1784년 3월 어느 날 강세황이 그린 <서빙고>는 서빙고 앞 나루에서 있었던 모임을 그린 작품이다. 험준한 모습의 남산을 빼고는 모두 편안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언덕의 기와집이며 분지에 옹기종기 모인 초가지붕들, 그 사이에 너울대는 버드나무가 평화롭다. <벌빙가(伐氷歌)>를 지어 그 모습을 노래한 시인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시대에도 얼음 채취의 장관은 그처럼 평화로웠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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