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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독락정, 혼자만의 즐거움

최열

우리 집은 백악산 아래 궁벽한 곳에 자리해 있어서 시끄러운 저자거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 집 뒤로 수십 걸음을 가면 마을이 깊고 고요하다. 산골짜기에는 물이 맑고 시원하여 매번 관청에서 물러나 밥을 먹고 난 여가에 짚신 신고 지팡이 짚으며 물과 돌 사이를 소요하면서 울적한 기운을 풀어 버렸다. 우거진 숲의 무성함이 없어지면 노닐며 쉴 곳도 없어서 흥이 나면 홀로 갔다가 시름없이 바라보다가 돌아오곤 했다. 이제 처음으로 한 채의 초가집을 지으니 돌을 뚫고 물줄기를 차지하여 바위 골짜기 위에 날개를 펼친 듯 자리하였으니 독락이라고 편액하였다.


- 김수흥, 「독락정기(獨樂亭記)」, 『퇴우당집(退憂堂集)』 제10권


장시흥, <독락정(獨樂亭)>, 40 × 33, 종이, 개인소장.


독락정(獨樂亭)은 지금 흔적조차 없다. 독락정은 김수흥(金壽興, 1626-1690)이 지은 정자인데 김수흥의 집과 매우 가까웠다. 김수흥의 집은 궁정동 2번지 무속헌(無俗軒) 터로 지금은 교황청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학조대사(學祖大師)가 조카 김번(金璠, 1479-1544)에게 이곳을 집터로 정해주었고『주역』의 이치에 맞게 집을 지어 후손들이 크게 번성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김수흥은 그 후손이다.


18세기 중엽에 제작한 지도 <한양도성도>를 보면 독락정의 위치를 또렷하게 알 수 있다. 독락정은 육상궁(毓祥宮)에서 북쪽 소나무 숲 쪽인데 그 북쪽에는 대은암(大隱岩)이 있고 또 독락정 바로 곁에 도화동(桃花洞), 청송당(聽松堂)이란 지명이 보이며 그로부터 약간 내려가면 유란동(幽蘭洞)이란 지명이 보인다. 유란동 지명이 자리한 곳에 냇가가 있는데 이 냇가는 청송대-독락정-대은암으로 이어지는 만리뢰(萬里瀨)란 이름의 계곡을 이르는 것이다. 먼저 청송당은 유란동 위쪽에 있던 정자 이름이다. 청송당 아래로 폭포가 있고 그 폭포 밑 마을이 유란동인데 유란동은 지금의 경기상업고등학교와 청운중학교 교정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니 유란동을 거쳐 청송당을 지나 저 만리뢰를 거슬러 오르면 거기 독락정이 있었던 것이다.


독락정을 세운 김수흥은 명성이 자자한 김상용, 김상헌 가문의 후손으로 장동 김문(將洞 金門)의 적자요, 서인당의 영수였다. 김수흥은 1674년 영의정에 올랐는데 탄핵당해 춘천유배를 살다가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서인당이 집권했을 때 또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두 차례나 영의정에 오른 그였지만 1689년 기사환국으로 집권에 실패하자 유배당했다가 유배지에서 별세하고 말았다. 아우 김수항도 자신과 마찬가지의 운명을 겪었는데 격동하는 시국에 따라 출사와 유배를 반복하였고 영의정에 올랐다가 또 다시 탄핵 당해 진도에서 사약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김수흥은 그와 같이 굴곡진 생애를 살아가면서 고단할 적이면 이곳 독락정에 올라 그윽함을 누리곤 했으며 또 가문 사람들로 하여금 누리게 했다. 1682년 어느 날 김수흥의 조카이자 김수항의 아들인 김창흡(金昌翕)과 김시보(金時保)가 어울려 작별의 회포를 나누었다는 기록은 그 사례라 할 것이다.


이런 독락정 풍경을 그린 세 점의 작품은 그 주인이 바뀐 뒤의 풍경이다. 1743년에는 독락정과 저 김수흥의 집은 심공량(沈公良)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승정원일기』 1743년의 기록에 따르면 그 해 11월 27일 눈이 내리던 날 밤, 이곳 독락정 집에 살고 있는 심공량의 집에 호랑이가 들어와 돼지 한 마리를 잡아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래 전부터 백악산 기슭에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곤 했다고 한다. 태종 이방원 때에도 호랑이가 경복궁에 들어오는 일이 있었던 것인데 191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금호방(禁虎榜)’이란 팻말을 붙여두어 출입할 때 경계하도록 하였으니까 말이다.


참, 그리고 이 독락정이 청와대 뒷산 기슭이니까 청와대의 주인들이 감상해 주었으면 좋겠다. 영의정 김수흥처럼 서인, 남인을 가르는 권력투쟁에 빠져들지 말고, 뒷산에 독락정을 복원한 다음,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한껏 누리는 거야 자유지만, 독락정에서 청와대로 내려올 적엔 힘없고 가난한 민인의 삶을 생각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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