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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27) 세계유산 조선왕릉 학술 심포지움

이현경

이현경 | 예술학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고즈넉한 고궁이 멋스러운 풍경을 빚어내던 지난 10월 16일(금),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왕릉(王陵)을 구성하는 여러 예술적 요소들을 미술사적 관점으로 조명해 보는 심포지움이 있었다. 심포지움은 지난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조선왕릉 40기가 등재되면서 이를 기념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 주관 하에 진행된 것이다. 조선왕릉 주변에 조성된 다양한 석의물(石儀物)들은 당시의 상설제도(象設制度)에 따라 제작·배치되었으며 의궤(儀軌)등을 통해 제작자와 제작시기, 규모 등의 풍부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왕과 왕비의 묘소를 그린 궁중기록화인 왕릉도(王陵圖)는 택지(擇地)와 더불어 뒷날의 유지와 보수를 위한 국정 자료이기에 당시의 회화, 조각에 관한 명확한 연관자료이며, 사적 연원관계 등의 비교연구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예술적 가치가 높은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문명대(동국대 명예교수)씨는 ‘조선초기(太·世宗: 15세기 1/4분기) 왕릉 문무관(文武官)석인상(石人像)의 성격과 도상(圖像)특징’에서 태조(太祖) 건원릉(建元陵), 정종(正宗) 후릉(厚陵), 태종(太宗) 헌릉(獻陵)의 3대에 걸친 석인상들은 당시의 신유학인 성리학의 미의식을 반영되어 충과 효의 정신이 깃든 고고하고 힘 있는 문무상으로 일정한 도상 특징을 가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관 도상 중 주목되는 것이 두손을 가슴에 모아 큰 소매 자락으로 휘감으면서 홀을 잡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조선 초기 불상 양식이 소매 자락으로 손을 감싸 옷 주름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면서 특히 운주사 석불좌상과 태조 건원릉의 문인상을 비교하였다. 왕릉의 문무상은 유교적 의례물이지만 삼국시대부터 전통을 갖는 불상과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언급하고자 한 것이다.


김은선(대전선사박물관 학예연구사)씨는‘조선왕릉 조각의 연원과 건국 양식의 의의’에서 조선왕릉의 조각은 통일신라, 고려의 왕릉석물을 기본으로 하되, 중국의 남송과 명 초기의 석조물의 요소를 받아들였지만 50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선의 문화 속에 융화되면서 우리만의 개성적이고 독자적인 조각 양식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발표자는 문무상뿐 아니라 석수(石獸), 망주석(望柱石), 석등(石燈), 족석(足石, 또는 鼓石) 등을 각 시대와 나라의 비교도판을 통해 꼼꼼하게 분석하여 특히 남송과 명 초기의 모티브에 그 연원을 둘 수 있으나 중국에비해 훨씬 풍부한 조성물을 보유한 우리의 왕릉 조각은 동양 장묘 문화의 꽃이라고 하였다.


이예성(한성대 강사)씨는‘조선시대 왕릉도’에서 산도(山圖), 혹은 산형도(山形圖)라고 불린 산릉도(山陵圖)는 여타의 궁중기록화와는 다르게 왕실이 주체가 되어 제작된 기록화의 일종으로 국장이 끝난 뒤 왕릉이 위치한 지역의 지형, 지물을 자세히 그리고 기록한 특수지도라고 설명하였다. 유교적 효와 예를 모범으로 보여야 하는 왕실의 릉을 그린 것이기에 산릉도는 중요하게 인식되어 보통 3본을 그려 보관하였으며 그 형식에서도 지극히 보수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다. 물론 기록화이기에 이러한 보수성이 보이기도 하지만 산릉도의 원형 구도와 같은 풍수도의 형식은 산릉도를 담은 세계관이 풍수지리 사상에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에 정형화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그 안에서도 시대적 추이를 가지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황정연(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씨는‘조선후기 왕실 능비(陵碑)의 건립과 어필비(御筆碑)의 유행’에서 왕릉에 조성된 석비(石碑)의 형태를 거북이가 받치고 위에는 용 두 마리가 얽혀 있는 귀부이수형의 신도비(神道碑)와 신도비 제작이 금지된 후 영조 대부터 성행한, 임금이 친히 쓴 어필비와 비 위에 팔작지붕의 형태를 보이는 표석(表石)을 구분하여 그 시대별 추이를 살펴보았다.


이종숙(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씨는 ‘조선왕릉 금석문 소고’를 통해 왕의 위업과 덕을 찬양하고 행적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고자 한 목적으로 제작된 능비에서 보다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전서(篆書)체를 글자 하나하나 형태를 비교하면서 왕/왕비의 차이,텍스트의 구성관 등을 설명하였다.


이상의 발표에 대해 김지연(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이분희(조계종 총무원 문화부 연구원), 김정숙(한성대 강사), 이민식(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송종관(동방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씨의 질의가 있었다. 이번 심포지움을 통해 조선왕릉은 유교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산물이지만 그 죽음의 문제를 예술로 승화시킴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유교가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메워줄 여러 종교적 모티브를 차용하고, 끊임없이 국가 양식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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